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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족보 한번 따져봅시다 (마 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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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한번 따져봅시다 (마 1:1-17)

여기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그의 세상이라는 말인 줄 알았어요. 신약성경의 첫 번째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의 선언이라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게 보이잖아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전후해서 신약시대와 구약시대가 나누어지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그 세계가 아니거든요. 저야 어렸을 때 그렇게 잘못 이해했으니까 용서를 받을 만도 합니다만, 어른들이 아직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용서를 받을 수가 없겠지요? 한번은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시는데, 이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세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세계라며 열변을 토하시는 거였어요. 모르는 사람이야 들으면서 큰 은혜를 체험할 수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은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물론 신약성경의 중심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의 연속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어요. 예수께서 마태복음의 마지막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만으로도 이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 나오는 세계라는 단어가 그 세계가 아니라는 데 있단 말이지요. 이 세계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족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번역을 한 사람들 책임도 크네요. 다들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를 그렇게 오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했다는 것이 큰 잘못 아니에요? 하긴 옛날에는 한자를 썼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네요.

여담이 되겠습니다만,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잘못된 성경 이해나 해석에 의해 듣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 은혜 받은 것은 효력이 있을까요? 아니면 원인무효가 되는 걸까요? 참 애매하지요? 사실 이것이 좀 확대되면 바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뭐 이단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그리고 확신이라기보다 몰라서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 종종 일어나는데, 그러니까 특히 가르치는 사람은 잘 배우고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잘 모르면 큰소리를 치지 말든가 말이지요.

어쨌든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신약성경의 첫 페이지를 펴면 재미도 없고 발음도 잘 안 되는 기나긴 족보가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요? 그러나 이 예수님의 족보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족보를 상당히 중요시합니다. 같은 성씨끼리 만나면 파를 묻고 항렬을 따지다가 금방 형님 동생이 되기도 하고 나이 어린 사람이 아저씨가 되기도 합니다. 족보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근원과 혈통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족보를 들먹이는 이유는 그 출신성분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양반이니 왕족이니 하는 사람들이 족보 따지지 상민이 족보 내세우는 것 보셨어요? 그러나 여기서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따지는 것은 그 혈통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밝혀주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장황하게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가 메시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의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구약의 예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마태는 여기서 예수님의 족보를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이 족보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도 있고 처음 들어본 이름도 있을 것입니다. 아주 위대한 사람도 있고 아주 못된 사람도 나옵니다. 유명한 왕도 있고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예수님의 족보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족보의 구성을 보면, 17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에서부터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때까지,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부터 예수님까지인데, 흥미 있는 것은 각 시대가 14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비교해 보면 정확한 숫자가 아닙니다. 마태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를 14대로 편집해서 구성한 것입니다.

14라는 숫자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편집을 하면서까지 14대씩으로 맞추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들은 그 숫자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족보를 기억하기 쉽도록 편집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14대라는 숫자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 시대로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의 아침입니다. 민족이 형성되고 애굽의 종살이를 탈출해서 가나안이라는 영토를 확보합니다. 혼란의 시기를 지나면서 질서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무한한 미래와 희망이 있습니다.

두 번째 시대는 이스라엘의 전성기입니다. 왕국 시대입니다. 혼란기를 지나 마침내 왕국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윗 왕가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왕국이 분열되기는 했지만, 다윗의 왕통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왕국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시대는 이스라엘의 황혼입니다. 망해버린,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몰락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를 갈망하게 됩니다. 오직 약속된 메시야만이 그들을 다시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시대의 마지막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의 구분과 예수님의 등장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태가 이 족보를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이 족보의 내용을 자세하게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의 시조가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라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최종적인 성취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2:2-3).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 백성을 통해서 메시야, 즉 세상의 구세주를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여기서 메시야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구약성경에서 다윗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큽니다. 하나님은 역시 다윗과도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내용은 그의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이 왕위를 이어갔습니다. 왕국이 남북으로 나뉘는 위기 속에서도 다윗의 왕가는 지속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쿠데타가 끊이지 않았고 3일만에, 7일만에 왕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던 반면, 남왕국 유다에서는 다윗 왕가에 대한 도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왕국도 결국 바벨론의 강력한 세력 앞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 먼 땅으로 잡혀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다윗의 왕위가 영원하리라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이지요. 결국 그들은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성취될 것이라는 신앙을 발전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 대망 사상입니다. 언젠가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구원할 것인데, 그는 다윗의 왕위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마태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겠지요? 말하자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를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이 너무 강했습니다. 자기들만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은 무조건 이방인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 민족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기 위해서란 말이죠. 그 메시야는 누구를 위해 오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야가 아니에요.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하나가 됩니다(갈 3:28).

그렇기 때문에 가장 폐쇄적 집단인 이스라엘이지만 예수님의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개방성이 발견됩니다. 족보에는 원래 여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강력한 부계사회였던 이스라엘의 전통에서도 여자는 족보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도 네 사람의 여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무슨 귀부인이나 이웃나라 공주가 아니에요. 우선 라합과 룻은 이방 여인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개방성입니까?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온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강한 암시가 벌써 거기서 발견되지 않습니까? 또 다말과 밧세바는 당시의 율법에 의하면 불에 태워 죽여야 할 부정한 행위를 한 여인들입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라는 강한 메시지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의 인생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해보면서 예수에 대하여 더 알아볼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정확해지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바이블넷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0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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