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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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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한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요한의 출생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후에 선지자의 모습을 한 세례 요한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지 않고 먼저 그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우선 마태는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묘사합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복장입니다. 선지자가 메뚜기와 꿀만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광야에서 메뚜기와 꿀을 먹고 사는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강한 선지자의 이미지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광야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가 광야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충족시키는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자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400년 동안이나 선지자가 끊어져버렸습니다. 말이 쉽게 400년이지 그 긴 세월은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바꾸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지자란 전설에나 나오는 존재가 되었을 거란 말이지요. 그러던 중에 광야에서 선지자가 나타났으니 백성들의 반응이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그런데 400년 만에 선지자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었고, 또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를 인용해서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의 존재를 설명합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시키는 사람으로서 온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입니다. 그 말라기의 예언서 맨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말 4:5).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그는 죽지 않고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그 엘리야를 다시 보내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젠가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더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대답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메시야가 오기 전에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는데도 왜 그 전에 엘리야가 오지 않았는지 제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엘리야가 분명히 왔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마 17:13).

그러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그가 선포한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무슨 소리입니까? 여러분,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천국이 가까이 올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해하는 천국은 어떤 것입니까? 여기서 세례 요한이 말하고 있는 천국은 어떤 것일 것 같습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천국의 개념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우리는 보통 예수 믿고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네요.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후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선포하셨던 메시지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바로 이 천국의 선포였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서의 핵심은 예수님에 의한 천국의 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오직 마태복음에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나 누가, 요한은 천국이라는 단어 대신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태도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천국(하늘나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 이유는 이 복음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너무 신성시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 대신 좀 더 편한 단어를 쓴 것이지요. 그러니까 천국, 즉 하늘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그러면 천국, 즉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에 가게 될 내세, 즉 부활한 몸으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그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천국이라면 그 천국을 떠올립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를 그러한 개념으로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세례 요한이 말하는 천국은 그 개념이 아니잖아요?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가까이 다가온 천국은 그러면 어떤 것일까요? 이 천국의 개념을 가장 알기 쉽게 말씀하신 것은 귀신 쫓아내는 것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 고쳐주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십니다. 천국은 이렇게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마치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들이닥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게 우리에게 들이닥치는 것이란 말이지요. 전에는 귀신이 왕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왕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 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왕이신 곳,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미치는 곳,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질문을 한 바리새인은 아마 혁명이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봅니다. 마치 모세나 여호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다윗 왕국의 회복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임했고, 또 제자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제자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천국은 지금 우리 안에도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나요? 하나님이 왕 되시고 다스리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연히 현재 진행형으로 천국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져오신 그 천국이 우리 안에 있어야지요.

요한이 천국이 가까웠다고 한 것은 물론 예수님의 오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가지고 오십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이루시려고 오십니다. 잃어버린 백성들을 되찾으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잃어버렸는가 하면 죄와 사망의 권세에게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잃어버린 백성들을 되찾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막힌 그 장벽을 허시고 우리를 다시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하신 일은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공짜로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 그 죄를 담당시키시고 그 값을 치르시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이 용서였다면, 그 죄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가로놓여 있는데, 그 죄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회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감추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지요. 죄를 부인하고 죄가 없다고 우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죄가 별 것 아니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뿐이지요. 우리가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것이 회개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시간적인 순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천국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죄의 회개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거리끼는 것을 품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가 제대로 나올 수 있던가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 천국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국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죄를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주님 앞에 내어놓고 용서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천국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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