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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결판승부 (마 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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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들도 마찬가지지요. 만약 그 시험, 또는 유혹에 지게 되면 그 결과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야 시험에 넘어지고 죄를 범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만, 예수님께 있어서 시험에 지고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왜 마귀는 기를 쓰고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려 죄를 짓게 만들려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구세주가 되셨는데, 여기서 구세주의 자격요건은 자신의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희생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흠 없는 어린양을 제물로 사용한 것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갑니다. 그 짐승의 피는 죽음을 상징하지요. 그런데 백성의 죄를 용서받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런 다음에야 백성의 죄를 위한 피를 가지고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데, 만약 그 예수님께 죄가 발견된다면 그 죄로 죽음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한 죽음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집요하게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이 시험에 넘어가 작은 죄라도 범하게 된다면 그 즉시 구세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 마귀는 마지막 세 번째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것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시험과는 달리 매우 노골적이고 도전적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 봐라’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시험은 아주 이판사판 본색을 드러내놓고 막판 결판승부를 겁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 마귀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세게 나옵니다. 이 마지막 시험에서도 실패하면 묵사발이 되어 쫓겨날 것이고, 운이 좋아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되겠지요. 이처럼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과 전략을 동원해서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을 한 번 이겼다고 안심하거나 자신만만해서는 안 됩니다.

고양이에게 쫓기던 쥐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돌아서서 고양이를 물려고 달려든다고 하지요? 다른 수가 없는 마귀는 이판사판으로 마지막 카드를 내놓습니다.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만약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시험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귀의 시험이 얼마나 위험하고 악랄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귀가 노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상의 영광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것은 고난과 죽음에로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영광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가서 죽어라고 하셨는데, 마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서 낮아지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높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서 섬기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다스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자기에게 절 한번 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의 약속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매력적입니까? 어느 것이 우리의 성품에 더 맞습니까?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 중 아주 강력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실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실 수 있어?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시는 거야?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며칠 전에 한 자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나 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절박하고 극단적인 환경에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고통과 불행을 당할 때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비난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에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순간, 그 순간을 누가 노리고 있겠어요? 그 섭섭한 마음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이처럼 마귀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섭섭하게 하시는 분인 반면에, 자기는 행복과 성취를 약속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십자가에서 죽으라고 하시지만, 왜 그렇게 해야 되지? 나에게 절하고 경배해 봐, 이 모든 천하만국의 영광이 너의 것이 되는 거야.

사실 이 마귀의 시험은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뭐 하러 밤새 시험공부를 하고 그 고생이야?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무슨 세금을 그렇게 많이 내려고 해? 안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 딱 한 번만 거짓말 하면 얼마나 큰 이익이 돌아오는데, 그걸 못한단 말이야? 딱 한번만 나에게 절해 봐. 이처럼 마귀는 단 한 번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미끼로 장밋빛 환상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지요.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한다고 말하면 무슨 사탄교, 사탄을 숭배하고 끔찍한 의식을 행하는 기괴망칙한 사람들 모습이 연상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얼마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많은지 몰라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실 마귀도 예수님이 이 시험에 패배하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록 인간을 입으시고 가장 연약하고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시기는 했지만,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마귀가 내려주는 영광을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겨냥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입니다. 어쩌면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혹은 대표해서 이 시험을 받으시는지도 모릅니다.

마귀의 시험이 매우 노골적이고 최악의 더러운 속셈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반응도 아주 단호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이 한 마디가 얼마나 능력 있는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한 마디를 내뱉지 못해서 사탄의 포로가 되는 수가 많거든요. 마귀의 시험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마귀가 장밋빛 약속을 우리 귓전에 감미롭게 속삭일 때, 우리는 “사탄아 물러가라!” 이 한 마디를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마귀의 은밀하고 교묘한 유혹 앞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외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의 속삭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담대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며 그 유혹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인가요?

물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 또 말로는 쉬운 일이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부닥치는 일 가운데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그만큼 연약하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갈팡질팡하다가 마음을 빼앗기고 끌려가는 것은 마귀에게 경배하고 그 수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직 주 우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요 살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마귀의 시험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는 갈팡질팡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자꾸 찾아와 시험하지만, 단호하게 대적하는 사람을 피하고 떠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시고 마귀를 물리치셨을 때, 마귀가 떠나고 누가 찾아왔는가 보세요. 천사들이 나아와서 주님을 수종듭니다. 40일이나 굶으신 주님을 천사들이 수종들었다면 어떻게 수종들었을까요? 주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가져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닭튀김인지 짜장면인지 모르지만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그 자리에 얼마나 큰 기쁨과 영광이 넘쳤을까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의지해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고 그 시험을 물리쳤을 때, 천사들이 나아와 함께 기뻐하며 우리를 돕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 하늘에서는 우리의 승리를 인하여 천군천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또한 하나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큰 시험이 닥쳤을 때만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는 시험 같지도 않은 시험으로 우리를 약하게 하고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시험에 무너지는 사람이 큰 시험을 이길 수가 없지요. 여러분의 매일의 삶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시험을 믿음으로 물리치고 승리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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