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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눅 0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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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눅 2:8-14)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많은 것이 있겠지요? 얘기할 추억거리가 너무 많습니까? 우선 크리스마스의 이미지 중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 중 하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입니다.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기를 바라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선물과 동의어입니다. 구세군 냄비나 백화점 세일이 떠오르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방법은 우선 크리스마스이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발표회를 갖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유치부 아이들의 율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학생부나 청년부 등 부서별로 모여서 선물교환을 하고 게임도 하면서 밤을 새우지요. 그리고 새벽이 되면 밤새 내린 눈을 밟으면서 새벽송을 나갑니다. 어둠과 적막으로 덮인 새벽, 눈을 맞으면서 대문 앞에서 캐롤을 부르며 그 집을 축복하면, 어떤 집에서는 나와서 먹을 것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새벽송을 마치고 돌아오면 얼었던 몸이 노곤해지면서 정신없이 잠에 빠지지요. 그렇게 한참 자고 있으면 예배시간 되었다고 깨웁니다. 그래서 비몽사몽간에 성탄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했던 크리스마스의 관습입니다. 말하자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 혹은 크리스마스와 동일시되는 관습들이 우리의 사고와 믿음을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고의 구조는 문화와 지리적 환경의 소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정없이 깨져버립니다. 제가 크리스마스의 혼란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게 되잖습니까?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전혀 마음이 설레지 않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퍼지지 않거든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커녕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래서 가만 생각해 보았어요. 도대체 날씨와 크리스마스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가슴이 설레던 크리스마스가 왜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남반구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가 추운 겨울과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관습에 오래 젖어있었기 때문에 한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에서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뙤약볕 아래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허상이 얼마나 강하게 우리의 사고를 장악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도 사실이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야 진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이 오지 않으면 기분이 잡친 크리스마스가 되고 맙니다. 그만큼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신화가 우리의 사고를 사로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던 밤은 결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실제로 몇 월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령 12월이라 해도 베들레헴에 눈이 내릴 확률은 아주 작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예루살렘의 오늘 날씨를 찾아보니까 최고 기온이 21도이고 최저 기온이 13도이더군요. 그날 밤의 상황을 기록한 성경말씀을 봐도 화이트 크리스마스와는 거리가 멉니다.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오늘 타우랑가의 기온이 최고 23도, 최저 17도니까 말하자면 요즘 같은 날씨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눈이 오지 않는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겪게 되는 또 하나의 혼란은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대체로 크리스마스 행사들이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정작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 휴가를 떠나버려서 심지어는 교회마저도 문을 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꼭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날을 크리스마스로 정해놓은 것은 그날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기뻐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그날 하기로 했던 일을 미리 해치워버리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타이밍의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 박스를 개봉합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기뻐하는 시간이지요.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 아닙니다. 가족의 의미와 친목을 위해서는 어린이날, 어머니날, 아버지날 등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라는 선전구호 역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왜곡하는 신화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선물 받는 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산타가 동일화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대목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일 년 중 소비량이 가장 늘어나는 때가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신나게 노는 날로, 그래서 밤늦도록 취하고 어울려 노는 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크리스마스와 휴가가 동의어입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크리스마스 때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입니다. 기뻐해야 할 이유가 많은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왜 기뻐하는지의 질문 앞에서 좀 심각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전혀 상관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환상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개념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과 전혀 상관없는 축제를 즐기며 기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는 기쁨입니다. 그날 밤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가져온 메시지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무엇이 기뻐해야 할 일이었는가 하면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여러분을 위한 구세주의 오심을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진실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산타가 선물을 가져오고 휴가철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행 중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산모가 아기를 낳은 곳은 시설이 좋은 병원이나 편안한 호텔이 아니라 외양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낮은 자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전우주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그 순간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진동하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두 가지 성격을 말해 주는데,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순간 온 우주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어 그분의 오시는 길을 에스코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의 사역이 섬김을 받고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분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처럼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시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의 탄생이 기뻐해야 할 사건일까요?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의 오심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위한 구주, 즉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크리스마스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예수께서 우리를 위한 구주로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모두 우리의 죄악 가운데 영원한 형벌을 감당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의 오심에 대하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라고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설명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이번 크리스마스가 당신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로 인해서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가장 축복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잘 아신다면, 이번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그 구주 예수님이 당신의 가슴 속으로 깊이 들어오셔서 당신의 삶을 온전히 사로잡으시도록 그분을 여러분의 가슴 속으로 초청하십시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이 삶 속에 늘 충만하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새 우리의 사고와 믿음을 지배하게 된 크리스마스의 관습과 신화에 속아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으로 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예수를 만남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삶이 다시 한 번 변화되고 새롭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이 크리스마스를 통해 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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