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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음성듣기 (마 04: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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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 모세 오경에 나타난 하나님말씀이나 모든 예언자를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경고와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구원이 있습니다. 심판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긍휼이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말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도래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예수를 예시한 구약의 말씀
예수, 그분의 오심을 위하여 모든 예언자들은 예언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합니다. 이러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1장 1-3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음성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 이방신에 자꾸 빠졌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꾸 곁눈질을 합니다. 세상도 보고 물질도 보고 성공도 보면서 자꾸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홍해의 기적과 광야의 기적을 알고 있건만 순간순간 타락하고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와 이방민족과 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에게서 먼 훗날 메시야가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이 백성의 자궁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강대국인 앗수르, 바벨론, 바사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고통속에 몰아놓고 괴롭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우상숭배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을 주는지, 왜 성전을 주고, 집을 훼파시키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메시아를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구약의 메시지를 신약시대에 선포한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언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또 높은 산을 낮게 만들고 낮은 골짜기를 높게 만들어 주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헤롯 왕에게 목이 잘려 죽고 말았습니다. 도덕적 부패와 종교적 타락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부도덕과 부패를 보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외친 것은 메시아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약의 예언자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장 1-3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요, 길이요, 진리입니다. 그는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그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시온성과 같이 우뚝 솟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말씀의 초점이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 분을 찬양하십시오. 그 분께 영광을 올려드리십시오. 그 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오셨습니다. 병들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빛이 되고 희망이 되셨습니다.

▶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결국 구약의 하나님의 음성이란 신약의 예수님의 음성듣기로 연결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구약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음성도 결국 예수님께로 집중됩니다. 성령님이 예수를 높이고 그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전하고 그분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들은 성령님의 음성은 예수님의 심정으로 듣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바울이 삼천층 체험을 말하지 않은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화려한 영적 세계를 말하면 사람들이 혼돈할까봐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기 시작하면 십자가를 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나를 위해 온 인류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리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성령님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첫째로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보면 ‘여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말은 있지만 남자를 통해 나셨다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령님과의 첫 관계입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에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예수님을 사생아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를 연애하는 관계로 만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에로스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사랑의 본질을 이해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나셨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음성과 성령님의 음성은 연결됩니다.
공생애의 시작도 성령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3장 13절을 보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십니다. 이 세례사건부터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머리 위에 임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늘에서 성령의 세례가 임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세례가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 예수님과 성령님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이 움직일 때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다른 말이 더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성령님의 음성의 절정은 이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런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위기와 절망, 고난, 억울함, 괴로움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프면 되고 망하면 됩니다.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런 음성을 여러분에게 임하길 축원합니다.
성경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권세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지 않아서 입니다. 매일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얼마나 머리가 나쁜지 성경은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고 자주 말합니다. 하나님이 ‘괜찮아. 내가 네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어’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별별 형용사를 다 쓰시면서까지 ‘잊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널 지킬거야. 널 보호할거야. 도와줄거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하나님의 음성은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 들을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듣는 귀가 없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세례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서 마귀에게 갑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마귀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마귀를 찾아가고 마귀의 유혹과 대결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을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찾아오는 모든 유혹과 어두움에 세력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온전히 치유되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4장 23-25절에 예수님의 삶을 요약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세 가지 나옵니다. 모든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또 병든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제시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죄인들의 언어와 행동은 언제나 이중적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의 특징은 언행이 하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은 신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생의 겨울이 오나 신실하게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나 모든 사람에게 말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행동 속에 언어가 있었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여 영광가운데 오시고 구름타고 승천한 모든 과정이 언어이며 메시지입니다. 단순히 말만 언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 ‘아버지와 나는 하나’
예수님의 메시지가 신약에 가득 차 있는데 몇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강조한 메시지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이요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이렇게 갈등 없이 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입니다. 이것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방언하고 열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성격을 가진 자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성격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은 곧 삶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타인에 대한 삶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비전과 목적, 사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예수님의 삶의 기준과 일치해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기준, 다른 사람을 위한 기준, 우리 인생의 목표, 내 구원과 하나님의 음성과 일치해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희생과 고난을 겪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병 낫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병을 고친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기준이 있으면 우리는 방황하지 않고 혼돈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 엄청난 감격과 충만함이 그대로 살아 날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복음서에서 발견하지 못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성령세례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세례는 사람마다 믿음의 성숙도와 성경지식에 따라 깊이와 무게가 다릅니다. 날마다 주님을 섬기고 성령 안에 살면서 성령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요.

▶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
요한복음 14-16장에 보면 예수님이 성령님에 대해서 자세하게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은 예수님이 가고 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미처 하지 않았던 일들을 우리가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할 것인데 그 이유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야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말을 이해한 사건이 바로 오순절사건이었습니다.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에야 이 말을 이해합니다. 성령에 대한 얘기는 말해줘도 모릅니다. 체험해야 압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이하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라고 합니다. 성령을 보내달라고 구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육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을 성령님입니다.
14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분이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입을 열어 찬양하게 하십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미움과 살인과 분노를 포기하게 하십니다. 사랑과 용서를 말하게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시고 불가능한 것을 하게 하십니다. 병을 이기게 하십니다. 이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그분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확인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 대신 말하고 듣고 보고 계십니다. 성령의 사람, 영의 사람은 성령이 가게 하시는 곳으로 가고, 말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찬양은 영으로, 이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영이 영원히 떠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잊혀지거나 버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귀중하고 보배로운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5절 이후에도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기억나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평안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26절-27절에서 성령님에 대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기적은 예수님을 높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의 특징은 인격적 변화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은사와 능력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닮는 성품과 인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증거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 성령님은 해답입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예수님이 성령님을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성령님의 역할과 속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제자가 되고 증인이 되고 그리스도인 답게 살고 사람을 사랑하려면 내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나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시대를 초월해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십니다.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만들고 온누리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허다한 무리가 모인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으로 이어지고 성령님의 음성으로 확정됩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도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 자신뿐 아니라 내 가족들, 정말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 나라와 세상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코드가 엉클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미래와 희망이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기는 현실입니다. 세계를 보십시오. 하루에 1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굶주리고 서로 죽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는 이세상의 빛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며 성령님은 이세상의 희망입니다. 오늘 나는 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함이 여러분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해답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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