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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관계의 회복 (마 22: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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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유대인 사회는 구약 시대에 국민을 다스리는 국법이 따로 없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헌법이며 민법이 되어서 율법에 의한 통제 사회, 그런 독특한 사회를 이루어 왔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로 구약의 율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모든 계명을 다 합치면 613종의 율법의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혼란스럽습니다. '이 많은 율법을 어떻게 다 지키며 살수가 있을까?' 그래서 생긴 문화가 율법주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니까 지키기는 지켜야 되겠는데 도저히 지킬 수는 없고 그래서 형식적으로 외형적 모습만 갖추게 되는 형식주의가 탄생케 되고, 말할 수 없는 양심의 이률 배
반적 자기 모순에 빠지는 그런 삶을 사람들이 살게 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을 보니까 꼭 회칠한 무덤 같다!' 그렇게 책망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유대 사회는 율법 사회이기 때문에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그 사회에서 율법사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법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라는 사람이 예수를 바라보니까 예수께서 이 율법을 어기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율법사가 율법 지식의 실력을 가지고 예수라는 사람을 1:1로 만나 율법 토론을 해서 예수를 한번 골탕 먹이려고 계획적 만남을 주선한 것이 오늘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35절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그랬습니다.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이런 자리를 그가 만든 것입니다. 질문을 합니다.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큽니까?' 사실 이것은 율법사가 이미 자기가 가장 잘 알
고 가르치는 그런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고 있는 실력을 가지고 예수의 무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를 골탕먹이려는 시험의 자리를 이렇게 일부러 만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야심스러운 사람들도 가끔 보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아주 성실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제일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실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최우선적 구원은 영혼 구원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된 자의 둘째 구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관계의 회복'이라고 오늘 주님이 아주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위치를 분명하게 정해주셨습니다. 그 위치란 뭐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런 위치에 인간을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간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마치 하나님을 만나듯 하라'는 뜻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이 무엇인가?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피차 미움과 원수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다는데 인간의 불행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는 대로 아담과 하와를 처음 바라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그런 말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사람들이 사랑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는 젊은 시절에 거의 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또 그런 말을 표현하면서 결혼을 하고 살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관계가 깨어지고 나니까 서로 하나님 앞에 상대방을 고소하기에 바빠지는 불행한 관계가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람은 하나님도 보기 싫고, 사람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아담은 도망을 가서 숨었습니다. 얼마나 깊이 숨었는지 성경에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하나 있다고 그래요. 아담이 어디 있는걸 모르셨대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 말씀은 그만큼 하나님이 보기 싫어져서 숨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사랑했던 관계는 그 관계가 깨어질 때 가장 미워집니다. 이것이 인간 관계입니다. 그러면 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 인간의 구원입니다. 얼마나 예뻤으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다!' 그런 표현을 아담이 했겠습니까?
60세가 가까운 어떤 영감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아직도 내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혹시 치매 걸린 거 아닙니까?' 그랬대요. 구원이란 뭐냐? 이 깨어져 가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 방법이 뭐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구원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아주 선명하게 선을 그으셨으니까 어쨌든 예수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가야 된단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두 번째 계명이 이것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른 길이 없단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길이 왜 어려운가? 우리 인간에게는 참으로 흉악스러운 질병이 하나 존재하는데 이기주의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이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구원이란 뭐냐? 이기주의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철학 중 변하지 아니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혼자 살고자 하면 자신도 죽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그렇게 많은 모든 독재자들은 왜 말로가 다 비참했는가? 혼자 살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는 대통령 가족만 행복합니다. 제가 갈보리교회에 와서 이 교회가 지금까지 사역해 온 여러 가지를 살폈을 때 이 교회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가 생각했을 때 선교인 것 같아요. 지금도 농어촌 교회 40군데 선교비 보내고, 세계 지도력 개발원에서 온 나라에 선교하고... 어쨌든 기초적인 우리 교회 경상비만 제외하고는 다 선교비로 지출한 것을 제가 목격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고난스러운 이웃을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먼저 있던 교회에서도 일년에 13억을 선교와 구제비로 지출했습니다. 함께 사는 노력입니다.
제가 이스라엘 갔다가 길거리에서 5불 주고 사진을 한 장 샀습니다. 굉장히 큰 두루마리로 된 사진인데 이 사진은 인공위성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한 사진입니다. 한 나라가 사진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무실에 지도를 걸어놓고 바라보면, 일자로 색깔별로 색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는 색깔이 있는데, 맨 위에 보면 북쪽에 눈이 하얗게 덮인 색이 하나 나타납니다. 그게 헐몬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그 헐몬산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갖는다고 성경에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 아열대 지방이라서 물이 귀하거든요. 그런데 헐몬산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으면 그것이 녹아 내릴 때를 기다리면서 희망을 갖는 겁니다. 그 물이 녹아 내리면 물 한 방울이 새로운 나라에서 그 물이 갈릴리 호수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갈릴리 호수에서는 그 물을 받아 가지고서 큰물에서 153종이나 되는 물고기를 생산해 내어 히브리 사람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 헐몬산과 갈릴리 호수는 사랑 받는 장소입니다.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 갈릴리 호수하고 헐몬산은 사람들이 아
주 사랑합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에서는 그 물은 다시 요단강이라는 남북을 세로 지르는 그 물줄기를 향해서 흘려 보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물줄기 하나를 보고 '생명의 젖줄'이라, '생명의 근원'이라 생각하면서 그 물을 막아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사랑 받는 헐몬산과 갈릴리 호수가 되는데, 그렇게 물이 귀한 나라에서 맨 아래를 보면 갈릴리 호수에 있는 물보다도 한 5배 정도는 더 많은 그런 시퍼런 물이 있습니다. 그게 사해 바다입니다. 그런데 그 물은 한 컵도 마실 수가 없고, 한 방울도 농업용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염분만 쌓여 가지고 너무 짜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곳을 죽음의 바다라고 해서 사해 바다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제 친구 목사는 이스라엘에 갔다가 그 사해 바다에 가서는 '이 사해 바다에 들어가면 사람이 넘어져서 둥둥 뜬다고
하는데 내가 한번 떠 봐야겠다!' 그래서 수영복만 입고 그 곳에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왜요? 이 신체에 아주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 물이 그 정도로 짭니다. 급격한 변화를 주니까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거둬지고 말았어요. 제가 그곳 사해 바다에 갔을 적에도 권사님 한 분이 그곳에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서 반신불수가 되셨어요.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라 하는 것입니다. 안내자들이 말을 합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니까 자신 있는 사람만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찍어서 맛만 보시고 가세요!' 그런데 호기심 때문에 들어갔다가 그런 변을 아주 수없이 당하더라구요. 여러분도 가시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왜 죽음의 바다가 되었는가? 이기주의 바다라서 그렇습니다. 받을 줄만 알지, 온갖 물이 그곳으로 다 들어가는데 흘려내 보내지를 않아요. 받을 줄만 아니까 이기주의가 되어서 그 바다는 사랑 받지 못하는 그렇게 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몸을 보십시오. 온 몸에 피가 흐르도록 혈관 조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힘이 필요할 때는 심장에서 그쪽으로 신속하게 피를 보내줌으로 우리가 활동이 가능한 거 아닙니까? 주먹을 쥐면, 벌써 이 심장에서 주먹으로 피를 쫙 보낸다 말입니다. 힘이 있잖아요? 피가 더디 오면 이 주먹이 빨리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활동하고 움직이고 살게 마련인데, 일단 왔던 피는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왔던 피가 거기 계속 머물러 있으면 그 부분이 굳어져 버리고 사람이 못쓰게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온 것은 빨리 흘려 보내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신체적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 관계에서의 회복과 구원은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훌륭한 것인가? 하는데 대한 4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인간관계의 정상화는 차별화에서 자유스러워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종이라든가 인간을 차별화 하지 말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외국인들이 많이 와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 문제를 잘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히브리 민족은 나그네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에게 주시는 끝없는 말씀이 '너희도 나그네가 되었었느니라. 너희 중에 우거하는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나그네에게 잘 하라.' 그러셨습니다. 인종을 차별화 하거나 인간을 차별하면 그 공동체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가 대한민국이 희망이라고 찾아온 불쌍한 노동자들이 본국의 노동자들과 똑같은 인격 대우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될 때 그런 것이 이 나라에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계명이 됩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여기 50대 이후의 분들은 기억이 나실 지도 모릅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우리 재일 교포 김종석군이 히다찌 회사에 입사 시험을 쳤는데 합격했어요. 그런데 인터뷰 과정에서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입사를 못하고 쫓겨났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는 KBS가 막 전국 활동을 하고, 이럴 수가 있냐고 막 땅을 치고, 데모를 했는데도 히다찌 사장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회사에서 내 마음대로 일꾼을 뽑는데! 내 마음대로 뽑고 안 뽑는 권리가 내게 있지, 한국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이것을 미국에서 알게 되었어요. 장로교 인권 위원회가 모여서 '과거에 일본이 한국을 그렇게 괴롭혔는데, 이 젊은 청년 하나를 세계적 대 회사 히다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일본의 양심이냐? 좋다!' 인권 위원회가 모여서 결의를 했어요. 편지 두 장을 썼어요. 한 장은 히다찌 사장에게, 한 장은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가 이런 일을 할테니 미국 대통령은 이 일에 절대적으로 협조하시오! 오늘부터 우리 미국의 PCUSA교단은 전 세계에 히다찌 물건 불매 운동에 벌이겠소!' 그 이튿날 모셔갔잖아요? '까불지 말란 말이야! 뭐, 물건이나 좀 잘 만들어서 세계에 돈 좀 번다고 인종 차별하지 말라!' 그래서 그 김종석군이 히다찌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 아닙니까? 인종 차별 하지 말아야 됩니다.
LA에도 중국집이 많은데, 저희 교회에서 아주 제일 잘 가는 중국집이 하나 있는데 그분은 한국에서 24년이나 살다가 미국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아주 잘해서 저하고 주인하고 우리 교인들이 많이 가서 그런지 친해졌습니다. 그 주인 영감님은 나만 보면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청년시절까지 살다가 한국 가서 부산에서 24년 자장면 장사를 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나더러 어느 나라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한국처럼 좋은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뭐하려고 미국에 이렇게 이민을 많이 와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한국을 버리고 왜 왔어?' '예, 제가 그 말하려고 말을 꺼낸 겁니다. 한국
다 좋은데 한가지 못 견딥니다. 인종 차별이 너무 심합니다.' 그러면 나는 또 화가 나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무슨 인종 차별을 한다고 그래요?' '목사님, 모르셔서 그래요. 나는 24년 동안 자장면 장사를 하면서 중학생, 고등학생들한테도 인격적 대우를 받은 적이 없어요. 항상 나를 보고 부르는 말은 '중국놈' 아니면 '떼놈' 이지요. 정부는 모든 물가 상승률이 항상 있는데 자장면 값은 10년이 지나도 한 푼도 안 올려 준다 말입니다. 우리 중국 사람들 어떻게 삽니까? 더군다나 우리들도 돈 버는 재미로 한국 가서 살았는데, 한국에서는 뭐, 우리 중국 사람들의 재산권 인정합니까? 하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돈 벌면 뭐합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중국 사람들 한국에서...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눈물을 머금고 미국으로 왔
습니다. 미국에는 그런 건 없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그립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해요. 이런 문제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될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 차별적 마음에서 자유스러워져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무시라고 해석합니다. 저는 뭐,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는 무슨 대표를 뽑는다고 하면 거의 여자들을 뽑아 내요. PCUSA 총회에 가봐도 2/3는 여인들이 와서 정책 결정을 합니다. 여자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가는 그 사회에서는 완전히 매장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똑같이 만드셨는데 여자라고 해서 성차별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양심이냐고 물었을 때에 거기에 대한 내 신앙적 양심의 대답이 무엇인가요?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웃을 막 무시하고 저주하고 짓밟으면서도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게 제도적으로 맞는 말인가 말입니까? 안 된다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시각의 정상화입니다. 제가 첫 목회를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했기 때문에 장애인 목회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미국의 4,000여개 한인교회 가운데 장애인 목회를 가장 열심히 하던 사람이 접니다. 그런데 첫 목회를 그런 곳에서 했기 때문에 지워지지 아니한 마음을 가지고 갈보리 교회에서도 목회 정착이 되면 그 분야를 힘을 쓸 것입니다. 제가 그때 우리 시각장애인이 다 맹인들 아닙니까? 교인의 100%가 다 맹인이니 눈 뜬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는데 어디 가려면 아침에 쭉 내 손을 붙잡고 버스를 타려면 말이죠, 아침에 버스를 안태워주는 거예요. 외국 같으면 그런 사람 우선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버스 차장들이 아침에 장님들 버스
를 태우면 재수 없다고 하며 문 닫아 버리고 안 태워준다 말입니다. 그 얼마나 울분이 터집니까? 요즘엔 그런 거 없어졌지만, 동네 아이들이 맹인들이 지나가면 저마다 돌을 던졌습니다. 이거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그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입니까? 그것이 하나님 믿는 사회입니까? 그러니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이것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생활 간섭의 금지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도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웃집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하면 옆집이 바빠집니다. 이거 빨리 알려야 되니까… 그저 여기 저기 전화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또 남의 무슨 집 이야기 나왔다 하면 그거 선전하기에 바쁘고… 뭐,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 한
번 여러분의 양심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하고 다녔을 때 내 마음이 어때요? 그러면 내가 하지 말아야 되어요. 나쁜 것을 알고 있어도 하지 말아야 되어요. 그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젊은 여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했어요.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난 못살겠습니다. 이혼하겠습니다. 목사님!' 그런데 한국 목사 상담하는 사람 치고 이혼하겠다는 사람에게 '아, 그렇습니까? 축하합니다!' 이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달래서 '그러지 말고 많이 기도해줄 테니까 참고 견디고 사세요!'
그런 말로 상담을 하지, '이혼하겠으면 하라!' 이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여기 와서 막 울면서 정말 못살겠다고 애원하는 그 여 집사를 목사님이 달래고 달래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래서 이혼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편이에요. 아내가 이혼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작업을 한게 뭐냐면 재산을 전부 몰래 빼돌렸습니다. 미국 같으면 이혼한다면 무조건 50%씩 나눠 가지니까 이 남자가 그걸 알고 한 3년 후에 이혼하자고 그랬습니다. '아, 그래? 이혼하려고 했으니까 합시다!' 그런데 이혼하고 보니까 자기 재산이 하나도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여 집사가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여 집사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3년 전에 내가 이혼하려고 했을 때 목사님이 가만히만 계셨으면 (내가 그래도 재산을 가지고 살수가 있었는데 목사님 때문에 내가 망했다…' 그래서 목사님을 고소를 했어요. 법원에서 목사하고 여 집사를 불렀어요. 그래서 판사가 목사한테 물었어요. '3년 전에 당신이 이 여인에게 와서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렸느냐?' '네, 그랬습니다.' '네가 뭔데 남들 이혼하지 말라 하느냐? 아, 하겠으면 하게 내버려두지 말이야. 네가 뭐 하나님이냐?' 그래서 목사한테 여 집사가 청구한 것이 뭐냐면 최소한 자기 3년의 생활비 물어달라고 요청을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판사가 '너 그렇게 물어줘라!'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사회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 나오잖아요? 그러면 책임 회피하기 위해
서 'No, No, No! I don't know.' 절대로 남의 말하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걸 걸고 넘어가서 큰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그래서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보면 그런 일을 위해서 목사들이 다 보험을 듭니다. 저도 들어놨습니다. 뭐, 어떡해요? 그렇게 들어놓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남의 말은 절대로 안 합니다. 자기만 열심히 살아가고 좋은 말을 열심히 합니다. 남의 흉이나 말했다가, '네가 그렇게 말했지?' 이거 법으로 들고나오면 그 사람 꼼짝 못합니다. 그게 잘된 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나쁘더라도 나쁜 말은 안 하는 겁니다. '그건 하나님과 그 사람이 해결할 문제이지,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우리 하
는 일만 하지!' 이렇게 됩니다. 유난히도 이웃과 불행한 일이 많이 발생하는 우리 민족이 이 문제는 좀더 심각한 수준에서 우리가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지금 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약 700만 정도가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이나 또 우리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똑같이 생각해야 될 삶의 방향이 뭐냐하면 첫째, 내가 이 사회에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희망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찾아올 때는 이 문화에 자신을 정착시키는 아픈 노력을 외국 사람들도 해야 됩니다. 또, 우리도 외국에 가면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감리 교인이 새로 이사를 와서 장로 교회를 찾아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장로교의 예배 모범과 신학에 자신을 정착시켜야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지 않아요? '이 교회는 왜 장로교냐? 감리교회로 해라!' 이럴 수가 없는 거 아니에요? 저 같은 사람은 PCUSA 미국 장로교 소속의 목사입니다. 그런데 갈보리교회로 오면서 그것 다 지웠어요. 갈보리 교회 여러분들이 정한 제도와 문화를 열심히 따르려고 요즈음 부목사님들에게 '이건 어떻게 했어? 이건 어떻게 했어?' 매일같이 물어보면서 잘 정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러 가는데 빵집도 갈 수 있고, 냉면 집도 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 빵집에 가서 냉면 달라고 하는 사람, 그게 사람입니까? 그렇게 하면 안된다 말입니다. 이 나라에 왔으면 이 나라 문화를 따르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를 따라야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삶의 옳은 방향입니다. 중국 사람도 필리핀 사람도 대한민국에 오면 여기에 정착해야 되고,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가면 유세보다 인격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의 관계가 연결이 되지 이기주의적, 나 중심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참여하고 공헌하는 길을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자, 저도 갈보리교회 담임 목사로 왔지만, 지금 날마다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이 갈보리교회에 무엇을 공헌하고 무엇을 참여할 것인가?' 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들도 '내가 이 교회 출석하려고 하는데 이 교회가 가는 방향이 무엇인가? 무엇을 열심히 하고 있나? 내가 그 길을 열심히 따라 살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길을 따라야 그것이 훌륭한 공동체가 되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서구는 여자들이 자기 중심이 아니고 공동체 중심이기 때문에 김씨가 이씨 집으로 시집을 가면 자기 성을 그날부터 없애버리고 그 집안 성을 따릅니다. 개인보다도 공동체를 우선한다는 철학이 아주 좋습니다. 이웃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회가 간혹 우리 교회를 향해서 비판의 말을 많이 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 '자기 교회 밖에 모른다!' 그런 말을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뭐, 신문지상에, 텔레비전에 많이 떠듭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목회 경험에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만큼만 하라!'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도 일년 내내 하는 일은 이웃을 위해서 어떻게 선교비를 좀 더 많이 보내서 영혼을 구원할까? 어떻게 구제할까? 지금도 우리 청년들이 담당 목사님하고 말레이시아에 가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젊음을 다 바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돌아옵니다. 일년 내내 대한민국 교회들은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선교와 구제 프로그램에는 다 동참하고 있습니다. 구제를 받는 교회도 구제합니다. 한 교회 공동체가 하는 일도 그렇게 많은데 대한민국 전체 교회가
하는 것을 다 합쳐보세요. '무슨 소리를 하느냐? 교회만큼만 하라'고… 제가 먼저 있던 교회에서는 북한 동포 굶어 죽는다고 평양에다 국수 공장을 만들어서 밀가루를 실어다가 국수를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 5000명을 4년 동안 먹여 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년소녀 가장 200명을 지금까지도 책임지
고 있습니다. 외국에 교회와 학교가 필요하다고 그러는데 저희가 학교와 교회를 전부 계산해서 30개 이상을 건축해 주었습니다. 교회만큼만 하라고…
사회 어느 단체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힘들고 고달프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웃을 더 도울까 3일마다 이웃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교회만큼만 하라고… 그러면 세상은 아름다워 진다고…
저는 제 목회 경험에서 자신 있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 보면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 말은 잘합니다. 이 사회도 그래요. 아무 것도 안 하는 단체가 말은 열심히 해요.
제일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골탕 먹이려고 질문했던 이 율법사는 아마도 지식은 많았는데 실천은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의미의 구원, 이웃 사랑! 우리 교회와 그리고 개인이 중단 없는 순례의 길을 손잡고 찬송을 부르며 힘있게, 힘있게 행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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