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끊임없이 싸우는 교회 (마 10:34-39)

첨부 1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하와이에서 두 집회를 모두 큰 승리 가운데 끝내고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신체의 어느 부분에도 다 암병이 발생할 수 있으나 절대로 암병이 발생하지 않는 신체의 한 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곧 심장입니다. 심장에 암세포가 발생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심장은 단 일 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도 살아 있는 교회, 즉 끊임없이 움직이고 원수와 쉬지 않고 싸우는 교회는 병들지 않고 계속 성장 발전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환상 중에 한 교회의 지붕 꼭대기를 바라보니까 마귀들이 할 일이 없어서 지붕에서 깜빡깜빡 졸고 있더랍니다. 그 안을 들여다 보니까 교인들이 기도도 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고 마귀와 싸우지도 않더랍니다. 그런데 또 한 교회의 지붕 꼭대기를 보니까 마귀들이 어쩔 줄 모르고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하고 활동하더랍니다. 그 안을 보니까 교인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마귀와 영적 싸움을 하는 교회더랍니다.이와 같이 성령 충만하여 살아 역사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활동하며 영적 싸움을 쉬지 않고 계속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라고 부르고 예수님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이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는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와 반대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그리고 또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이 아니라 싸움을 붙이러 오셨고 식구들끼리도 불화하고 원수가 되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 믿고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마귀의 지배 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흑암에 살다가 빛으로 옮겨진 사람이 된 것이기 때문에 빛과 어둠이 충돌되고 하나님과 사탄이 충돌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화가 싫고 충돌이 싫다고 해서 영생, 천국을 포기한다면 결국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평화가 좋다하더라도 죄와 타협하고 마귀와 타협하면서 평화를 원한다면 결국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며 영원한 불행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고 육신의 정욕과 싸우는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많은 핍박과 수치와 오해를 각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싸움이 싫다고 육신의 안일한 생활을 택한다면 결국 일시적 안락을 위해서 영원한 멸망과 고통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6절에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하시고 이어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하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날마다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과 싸워야 할까요?

1. 죄와 싸워야 합니다.
장마철에 강물을 보면 시뻘건 물에 생명 없는 물건들과 죽은 동물들은 물결 따라 저항없이 둥둥 떠내려 가지만 생명 있는 물고기는 그 거센 물결과 싸우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에서 구원받고 새생명을 가진 크리스찬들은 죄와 싸우고 불의와 싸워야 합니다. 저항없이 세상 물결 따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떠내려 가는 사람은 참 크리스찬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찬이란 사람이 술좌석에 가면 홀짝홀짝 술도 마시고 투전판에 가면 토닥토닥 고스톱이나 치고 친척들이 모여 제사상 차려 놓고 절하는 자리에서는 욕 안 먹으려고 꾸벅꾸벅 절을 하면서 아무 저항이나 투쟁이 없이사는 사람은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예수님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저항이 없고 투쟁이 없이 고난을 요리조리 회피해가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된 크리스찬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공산당 혁명 당시에 나라를 둘러엎고 수백만 수천만 명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동방정교 신부들은 몇 일씩 회의를 열고 안일하게 앉아서 주교들과 신부들의 가운의 길이가 무릎 밑으로 몇 센치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를 놓고 논쟁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마태복음 10장 37-39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영혼이 거듭나서 영안이 조금이라도 열린 사람은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사탄 마귀가 저항해 오고 핍박해 오고 유혹해 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에 다투는 것이 싫다고, 욕먹는 것이 싫다고 마귀와 타협하거나 고난의 길을 피해 간다면 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피해 가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8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3-5절에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견고한 진을 깨뜨리고 파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믿음을 무너뜨리는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생각을 파하여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귀의 저항이나 방해, 유혹이나 시험을 못느끼는 사람은 아직 초신자이거나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력이 약한 사람입니다. 마귀에게 대항하고 대적하고 싸워야지 타협하면 안됩니다.

3. 성경에 배치되는 이단과 싸워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믿음을 무너뜨리는 이단신학 사상이나 비진리는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수많은 영혼을 멸망시키는 사탄의 가장 큰 도구는 바로 이단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2서 1장 9-11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 진리 안에서 하지 않고 지내쳐 딴소리하는 사람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도 믿지만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단자들에게 얼마나 강경한 말씀을 했나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1장 6절-9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단 교수 한 사람을 척결하는 것이 교회 100개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구라파나 미국에서 이단신학을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수천 수만 교회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일군들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할 때 로마 천주교가 베드로 성당을 짓는데 모금하려고 면죄부를 팔면서 비싼 것을 사면 많은 죄를 용서 받고 작은 것을 사면 작은 죄를 용서 받는다고 혹세무민하고, 심지어 헌금통에 돈을 넣으면 연옥에 떨어진 부모라도 천당에 보낼 수 있다고 전혀 성경에 위배된 일을 하는 것을 비롯해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Witenberg) 대학 벽에 써 붙이면서 이단사상과 싸울 때 1527년 4월 17일 황제 카알 5세가 주도하는 보름스(Worms) 의회에 출두 명령을 받자 주위에서 가지 말라고 강권했습니다. 가면 출교 당하게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에 루터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보름스에 있는 모든 집 기왓장들이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할지라도 나는 그 자리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루터의 목숨을 건 투쟁 때문에 중세기의 흑암의 장막을 걷어치울 수가 있었고 우리도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단신학과 비진리와 대항해 싸우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종교 개혁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개신교)를 “저항하다, 반항하다”의 뜻을 가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릅니다.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아무에게도 공격을 받지 않는 목사는 잘못되었다. 그것은 그가 올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교리는 공격을 받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우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목사가 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4. 잘못된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육신의 본능과 정욕대로 따라가면 결국 타락하고 마귀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또 고린도전서 9장 25, 27절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못박힌 정욕이 다시 살아 발동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 영적 싸움을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무기는

①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절대로 마귀를 이길 수가 없고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에 대해 에베소서 6장에서 말씀하시다가 6장 18-19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했습습니다. 마귀는 무릎 꿇는 신자,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를 무서워 합니다. 기도가 없이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② 말씀입니다.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이 없이는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마다 “기록되었으되” 하고 성경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기억해야 됩니다.

③ 예수의 피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피를 믿고 증거하는 것을 제일 무서워 합니다. 유월절 때 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집에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우리 심령이 믿음으로 발리워 있을 때 결코 마귀가 이기지 못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서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자기 몸만 사리고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면 영적 싸움에 큰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불의와 죄를 보면서도 의분을 갖지 못하면 참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몇 주 전 전시형 목사님이 단테의 신곡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단테가 실제로 지옥의 광경을 보고 쓴 것이지 하나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고 봅니다. 단테는 캄캄한 가운데 신음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손바닥을 치며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들은 누구며 저 소리는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지옥의 사자는 대답하기를 “이 비참한 광경은 명예도 얻지 못하고 비방도 듣지 않으며 인생을 마친 자들의 비명들이다. 하나님께 충성도 않고, 항거도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던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 속에 뒤섞여 있던 이들. 하늘은 더렵혀질까봐 이런 자들을 쫓아냈고 지옥에서도 받아 주지 않으니 이는 사악한 자들이 오히려 뽐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