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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온전하라 (마 0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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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각광을 받는 가장 유망한 직업 중의 하나가 정신과 의사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정신병원' 그러면 어디 공동묘지 근처에 있는 으스스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정신과 의사가 TV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정신질환이 대중화되고, 보편화 되어간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가장 초기적인 단계가 우울증입니다. 특별히 40대에서 50대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무력감에 빠지고 인생을 헛 살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적개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우울증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주부들이 이런 병에 많이 걸리는가 하면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나이는 들어서 주름살이 늘어나고 젊을 때의 고운 모습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일에 빠져서 살아가고 아이들은 다 컸다고 자기들 나름대로 바쁘게 지냅니다.
그러다 보면 잠재의식 속에 미운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편 때문에 희생하고, 자식 때문에 희생하고, 시집 식구들 때문에 희생하다보니 내가 이렇게 됐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의학은 우울증이라고 하고 옛날에는 한이 맺혔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요즘 남편들은 부인이 산에 가지고 하면 무섭답니다. 산에 가서 버리고 올까봐 무서운 것입니다. 특별히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가장 두려워한답니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주부들이 마음속에 쌓인 불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울증을 털어 버리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미운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에게 강아지를 키우라고 권유합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에 메말라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이런 관계가 이루어져야 밝고 명랑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한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장 위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믿음생활에도 우울증 환자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얼굴에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찡그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입술에 찬송과 감사가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언제나 삐딱하게 꼬아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우울증 환자입니다. 혹 여러분들에게 이런 증세가 있으면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깨끗하게 털어 버리고 다시 한번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믿음생활을 회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에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계명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또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온전해지려면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완벽하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잘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웃과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웃들과 나누는 삶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는 잘 지켜왔는데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온전해지려면 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 때에 비로소 그 믿음이 온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그것으로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 48절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처럼 온전해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단계까지 갈 때에 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고 교회봉사를 그렇게 열심히 해도 그때나 이제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사람과 미워할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 가시덤불입니다.

어떤 나라에 임금님이 있었는데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되었는데 누구에게 물려줄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문제를 내었습니다. '지금부터 석 달 여유를 줄 테니까 그 동안 누구든지 가장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임금님은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맏아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슨 착한 일을 했느냐?' '저는 참 착한 일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 저에게 금이 가득 든 보따리를 맡겼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금을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가족들을 찾아가서 돌려주고 왔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네가 한 일은 착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니냐?'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둘째 왕자가 대답합니다. '너는 참으로 착한 일을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어린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뛰어들어가 그 아이를 구해내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사람이겠느냐?' 하였습니다.
이제 세 번째 왕자가 대답합니다. 여러분도 짐작을 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막내가 가장 잘한 것으로 끝납니다. 셋째 왕자는 '저는 특별히 착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저를 못살게 구는 원수가 하나있었는데 술에 취해서 낭떠러지 끝에 있는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한번이라도 몸을 뒤척인다면 그대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잘됐다 하고 모른 척 지나가려다가 차마 그럴 수 없어서 깨워주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너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다. 정말 착한 일을 했구나.' 하면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 친구를 사랑하는 일, 교회 안에서 믿음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일, 이런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본문 46절, 4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런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 뒤에서 여러분 흉을 보고 다니는 사람,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하려고 하는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미움이 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이런 원수를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것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입니다. 라틴어로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법의 근본정신입니다.
이 법칙은 두 가지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고 이를 다치게 했으면 같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도 말로만 미안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원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평의 원칙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면 벌을 주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적절한 벌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 이를 상하게 했다고 해서 그 사람 이를 몽땅 뽑아서 틀니하고 다니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하면 몇 곱절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공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은 개인에게 주신 법이 아닙니다. 당시의 재판관들에게 주신 법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말씀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칙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할 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이 탈리오의 법칙을 적용하여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거나 벌금을 물리는 등,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법칙을 개인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하면 쫓아가서 그만큼 보복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누가 내 이를 하나 부러뜨리면 내가 가서 또 부러뜨리고, 그러면 또 와서 하나 부러뜨리고 그러면 또 쫓아가서 하나 부러뜨리고, 그래서 옛날 유대인 중에는 유난히 틀니를 한 사람이 많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 있습니다.
이 고리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수가 계속되는 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늘 마음이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 있고 기회만 있으면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자기 마음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마음속에 '내가 언젠가는 이자를 듬뿍 붙여서 갚아주리라.' 이런 마음이 있는 분이 계시면 이 시간에 다 씻어버리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베푸는 것입니다.
39절부터 42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씀의 공통점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빼앗기지 말고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무슨 말입니까? 안 맞으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맞아주라는 것입니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안 빼앗기려고 애쓰지 말고 자진해서 주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안 가겠다고 버티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동행해 주라는 것입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안 주겠다고 깍쟁이 노릇하지 말고 선선히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나서서 베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식이 용돈을 달라고 하면 강도 만난 기분으로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국 줄 것인데도 잔소리를 하면서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빼앗기지 말고 기분 좋게 주십시오.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라.' 했으니 더 얹어서 넉넉히 주십시오. '구하는 자에게 주며' 그랬으니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주십시오. 이왕 줄 것이면 빼앗기지 말고 주는 것이 좋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에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있는데 마당에서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옆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챙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도둑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이 있는 방에서 사람 기척이 나지를 않으니까 도둑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도둑에게 '안녕하시오?' 인사를 했습니다. 깜짝 놀란 도둑이 도망을 치려고 하니까 이상재 선생이 붙들면서 '이 사람아,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최소한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래 내 집을 뒤져보니 쓸만한 것이 별로 없지. 미안하게 됐네. 그래도 가져갈 것이 있으면 가져가 보게.'
그러자 도둑은 얼떨결에 '고맙습니다.' 하고는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도망을 못 가고 경찰에게 붙들려왔습니다. 경찰은 도둑을 이상재 선생 앞으로 끌고 와서는 '이 물건들이 선생님 것이 맞지요?'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도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것들은 내가 자네한테 준 것들이 아닌가? 자네가 분명히 내가 고맙다는 인사까지 해놓고는 왜 돌아왔는가?'
빼앗기지 말고 주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주어버렸으면 잊어버립시오. 이것이 내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입니다. 한 평생 이리 빼앗기고 저리 빼앗기고 산다고 생각하면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그러지 말고 한 평생 여기에도 베풀고 저기에도 나누어주면서 산다고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줄 수 있는 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고, 복수할 사람에게 복수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줌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해 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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