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버지의 집 (눅 02:49-51)

첨부 1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처음으로 방문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41-42절에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성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일년에 세 차례 의무적으로 방문합니다. 신명기 16장 16절에는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일년 중 삼대절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립니다. 세계적으로 모든 종교를 통틀어 성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슬렘들입니다. 모슬렘들은 일평생 한번은 그들의 성지 메카를 다녀오는 것이 소원입니다. 둘째는 라마다 기간이 되면 금식을 합니다. 셋째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메카 방향을 향하여 얼굴을 땅에 대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기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식사기도 때에 겨우 잠깐 기도하고 마는데 이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단합니다.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잘못되었으나 신앙의 열심은 본받을 만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14-16절에는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올라와 예배하라는 것이며, 둘째, 맥추감사 즉 첫 열매에 대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수장절로 지금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절기로 일 년의 농사를 끝내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절기에 예루살렘성전에 올라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에 부모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유월절 명절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성전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명절을 마치고 부모가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2. 예수를 잃어버림
42-43절을 보면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가 동행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가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아이가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이유는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동행하고 있는 줄로 생각한 것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 예수는 성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며,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가기 생각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 길게 한다고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가장 늦게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남의 집 담장에 호박이 달려있으니 된장국 끓여 먹겠다고 슬그머니 따가지고 갔습니다. 신앙이 있는 것 같지만 신앙이 없는 행동이며 믿음이 없는 행동입니다. 우리교단의 어떤 목사님은 교통 위반하여 교통경찰에게 걸렸는데 벌금이 6만원에 벌점이 15점을 받게 되어 교통경찰에게 “싼 것을 끊어 달라”고 사정을 했답니다. 그래서 7천 원짜리 스티커를 받아서 집에 돌아와서 읽어 보니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더랍니다. 목사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대한민국 경찰에게 걸려서 벌금 스티커를 받았으니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 이후로는 다시는 싼 것을 끊어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같이 믿음이 없는 부끄러운 행동들이 많이 있습니다.

3. 사흘 후에 찾음
아이를 양육하다가 보면 어린아이를 한두 번 잃어버려서 찾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저도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경험이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첫돌 지났을 때 교회 안에 사택이 있었고, 교회 옆 놀이터에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가 기저귀가 젖어서 아이를 그곳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에 집에 가서 기저귀를 가지고 왔는데 아이가 없어진 것입니다. 2-3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없어졌기에 골목길과 뒷길에서 찾아보았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매주 월요일이면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인천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하여 찾아갔었는데 그것이 기억났는지 전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기어서 올라간 후 키가 작아서 개찰구를 그냥 통과를 한 후에 전철이 들어오면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교회의 한 구역 식구인 집사님이 전철에서 내리다가 아이가 혼자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고 돌아왔습니다. 한 구역 식구가 아니면 어떻게 부목사집 아이의 얼굴을 알아서 데리고 왔겠습니다. 하마터면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44절에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라고 했는데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다시 찾는 것은 사흘이 걸렸습니다. 46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 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믿음을 회복하고 신앙을 되찾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신앙을 회복하는 일은 3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것입니다.

4. 아버지 집에서
예수의 부모들이 사흘 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며 아는 자들과 친족에게서 찾아보니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과 성경을 토론하고 질문도하고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믿음은 아버지 집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회복은 아버지 집에서 찾아야 합니다. 4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서도 아버지 집! 늙어서도 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안나라는 여선지자가 나옵니다. 결혼하여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홀로된 뒤 84년 동안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금식하다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성전에서 놀았습니다. 놀이도 교회 마당에서 하였고 사방치기나 종탑에 매달려 놀기도 하였으며, 숨바꼭질도 교회에서 하며 놀았습니다. 중고등부 다닐 때는 교회에 가면 피아노도 없던 시절 풍금을 배우고 싶어 교회에서 놀며 자랐습니다. 청년시절에는 교회 주보를 등사하느라고 가리방 긁으면서 주말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살아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불행은 돈 100원만 생기면 PC방에 갑니다. 전자 오락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냅니다. 전자오락 게임이란 것이 치고 박고 싸우고 죽이고 부수는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심성이 사나워져서 살인과 폭력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권사님들은 교회에 들어오시면서 권사 릴레이 기도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권사님들은 기도의 어머니들입니다. 새벽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새벽에 나오시고, 낮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낮에 나오시고, 저녁에 시간이 있는 분들은 저녁에 나오셔서 나라와 민족과, 교회의 부흥과, 저를 비롯한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서도 아버지 집, 늙어서도 아버지 집에서 삽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