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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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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질병은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입니다. 성경에는 시각장애자의 이야기나 한센씨 병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환경적인 이유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한 촌(村)에 들어가실 때 몸이 아픈 열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촌이었으며, 병자들은 나환자 또는 문둥병자라고 불리는 한센씨병 환자였습니다.
요즈음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장애우 또는 장애인라고 부르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으로 구분합니다. 또 장애인의 반대는 건강인이 아니라 비 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살이 썩고, 뼈마디가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에 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소록도에 가면 많은 나환자들이 살고 있으며, 손양원 목사님이 섬겼던 여수와 순천사이의 애향원을 가면 지금도 많은 나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투병하고 있으며 애향원동네에는 좋은 병원이 있는데 한센씨 병이 걸린 사람들이 최후로 찾아오는 병원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어려운 문제를 만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입니다.

1.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켈리(1761-1834)는 영국의 노스햄프턴(Northhampton)이란 도시에서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자신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어 제화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인도선교의 꿈을 안고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하고 23세에 영국의 침례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 뱅갈어를 공부하여 인도성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1812년 영국에서 인쇄기와 조판기술자를 불러 뱅갈어 성경을 인쇄하려고 했는데 불이나 수 년 동안 준비했던 인쇄기와 원고가 그만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윌리엄켈리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여 뱅갈어 성경과 24종의 인도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마침내 인도성경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2.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님께 간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열쇠를 쥐고 계신 하나님께 간청하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12-13절을 보면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하고 예수님을 찾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간구와 간청을 했습니다.
여기서 기적의 공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14절에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행에 옮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즉, “기적 = 말씀을 믿고 + 실행할 때”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큰 고기를 153마리 잡은 기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요21:6)”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행을 했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요한복은 11장에는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까? 그것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여 내가 믿나이다”고 고백할 때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열 사람의 한센씨 병든 사람들이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가다가 깨끗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3. 감사를 잊지 말라
한센씨 병든 열 사람이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다가 병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단 한 사람만 자기의 병 나은 것을 보고 고쳐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왔습니다. 15-16절에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의 감사를 보십시오. 그는 먼저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고쳐 주셨기에 예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고쳐주신 은혜가 고마워 발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엎드려 절하는 것은 최고의 감사와 경외를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사례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종류의 사례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의 병 고쳐 주심에 적당한 사례를 했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은혜(여기까지 도우셨다)입니다. 또한 현재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앞날을 인도해 주시리라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입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잊지 말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아홉은 어디 갔느냐?
열사람 중에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 정도로 적다는 것입니다. 열사람 중에 한사람 즉 10%만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수는 언제나 적고 감사한 일이 있어도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많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감사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선진국 국민들은 껌 하나를 주어도 “Thank you very march(대단히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이번에 캄보디아를 다녀왔는데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이 여행객들을 보면 다가와서 돈을 달라고 One Dollar(1$)만 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돈을 주었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립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새까맣게 구름 떼같이 몰려옵니다. 선교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찾아가서 먹을 것을 주면 고맙다는 말보다도 또 약을 달라고 손을 내밀곤 합니다.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습니다. 감사할 줄 모른 아홉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찾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찢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50편 22-23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영국에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보고 감사할줄 아는 사람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할줄 아는 사람에게 광명한 의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즉 작은 것을 보고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큰 것으로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언제 해야 합니까? 생활 속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윌리엄바클레이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지만 감사를 했습니다. 돈은 빼앗겼지만 목숨은 뺏기지 않은 것을 감사했고, 빼앗긴 돈 보다도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에 감사를 했으며, 나도 예수 믿지 않았더라면 강도 같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 예수를 믿고 착한 사람이 된 것을 감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을 다닐 때 아버님이 수원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 동네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쪽으로는 정씨, 한쪽에는 윤씨들의 집성촌(集成村)이었습니다. 그곳에 윤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해에 감자농사가 대풍을 이루어서 “윤 집사님! 감자농사가 잘 되어서 감사 하군요!”하고 인사를 했더니 “감사하긴 무엇이 감사해요 썩은 것이 있어야 돼지를 줄 텐데 돼지 줄 것이 없어 감사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안 썩은 것을 돼지주면 안됩니까?
오늘의 본문에서 감사한 사람은 이방인이었습니다. 18-19절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감사할 때 그에게도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감사하다가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감사하는 자에게 풍성한 복까지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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