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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남이 장군을 죽인 유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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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사람, 유능한 사람,장래가 촉망되는 사람, 장부다운 기개를 지닌 사람,남달리 일찍 출세한 사람이 있다. 태종 이방원의 외손으로 겨우 나이 27세에 일국의 병조판서까지 오른 남이(南怡)장군이다. 그를 총애하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등극한지 어느날 밤이다. 대궐에서 숙직을 하던 그가 우연히 혜성을 보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한적이 있다. 간특하기 그지없는 유 자광은 이 말을 듣자 즉시 남이는 역적질을 꿈꾸고 있다고 고변하면서 그의 시 한수를 증거로 제시했다.
'백두산 바윗돌 칼갈아 다날리고 두만강 푸른물 말먹여 말리우리 대장부 이십에 나라를 못 얻으면 뉘라서 후세에 남아라 불러주리' 그러나 실은 원래 '대장부 이십에 나라 평정 못하면'이라는 말인데 그가 '나라를 못 얻으면'이라는 뜻으로 바꾸기위해 '平'자를 得자로 슬쩍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속 출세를 시기하던 관리들과 까닭없이 그를 경계해 오던 예종은 함께 짝짝궁이 되어 남이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한 교묘한 술수로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 대가로 출세길을 달리기 시작한 유 자광은 그때 부터 파란 만장,화려무비한 삶을 살면서 드디어 인신으로서는 최고의 품계까지 되는 무령부원군 (武靈府院君)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유 자광의 삶은 꽃병에 꽂힌 장미꽃처럼 한때 남달리 화려해 보였으나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유배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고 아울러 사람들은 그를두고 간신이라고 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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