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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계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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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인간의 사랑을 네 단계로 말했습니다. 첫 단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만남」의 단계이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내 영원한 반려자인가?’를 판단하는 「판단」의 단계이고, 셋째 단계는 결심하는 「결단」의 단계이며,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여 결혼에 들어가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처음의 사랑을 변함없이 유지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지만 처음의 사랑이 변해 버리면 불행한 가정이 되어 버립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 속에 흐르는 특수 호르몬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 30초 만에 사랑을 일으키는 호르몬이 일어나 사랑의 감정이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호르몬은 3년 6개월 밖에 지속되지 않아 호르몬이 그치면 사랑의 감정도 식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권총을 가지고 다니다가 비밀경찰들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른 본회퍼 목사는 인간의 사랑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예(yes)」로 시작하여, 「의심(회의)」의 단계를 거쳐, 「시험(시련)」의 단계를 지나, 마지막엔 「아니오(No)」가 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목적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결혼관계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의 결혼풍속은 멀리서 아내를 데려와서 '나는 너의 남편이 되고 너는 나의 아내가 된다'고 선포한 후 거처를 마련하면 결혼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약속하고 남편은 아내를 돌보아 줄 것을 약속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아들 이삭을 위하여 멀리 그의 고향 하란에서 신부를 선택해 오도록 그의 늙은 종 엘리에셀을 보냈고, 하인은 리브가를 선택하여 데리고 오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성경은 처녀 이스라엘을 데려다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선포하신 후 시내산 계약을 맺은 후 가나안 땅을 영원한 거처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했으나 차츰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사랑을 아하브(ahab)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하브란 관심이나 재능이나 시간이나 물질 등의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사랑의 대상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하브의 사랑으로 사랑했지만 하나님 사랑을 버리고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겨 연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 주시는 하나님보다 땅의 풍요를 주는 바알이 더 위대해 보여 바알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잘 알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아 2장 2절을 보면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아하브의 사랑으로 사랑하다가 나중에는 바알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초대 7 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교회, 빌라데비아교회,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 중에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하나님을 사랑한 것을 에베소서 1장 15-16절에는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의 본질과 사랑의 핵심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모든 교회가 처음에는 사람 중심으로 진행이 되다가 나중에는 사람이 많아지고 관리하기 위해서 제도가 우선되는 교회로 전락하고 맙니다.
저는 한 번도 직접 개척교회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지 교회를 많이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목회지에서 전도사 때 지 교회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경북 금릉군 감문면 태촌동에 위치한 태촌 교회에서 목회할 때 버스 정거장이 있던 동네 배시내(利川)에 지 교회를 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에는 본 교회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목요일 저녁에 그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새 신자 한 사람이 올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중심의 교회가 사람이 많아지고 조직을 운영해 나가기 위하여 제도를 두다 보면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웨슬레는 '본질보다 제도가 우선하는 교회를 타락한 교회'라고 정의했습니다. 에베소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나이키 신전과 이방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런 우상의 도시에서 에베소교회가 탄생되고 수고하는 교회, 인내하는 교회, 은사가 있는 교회, 부지런한 교회, 유혹과 시험과 핍박을 잘 이긴 교회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모든 인간적인 노력과 수고와 종교적인 모든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알맹이며 나머지는 껍데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베소교회가 수고도 하고 핍박도 잘 견뎠는데 사랑이 떠나 에베소교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처음이란 헬라어가 프로토스(protos)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시간이나 장소나 순서 등의 모든 일에 우선순위 1번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아하브’의 사랑이 신약의 ‘프로토스의 사랑’입니다.
목사님들의 목회에 에피소드들을 많은데 특별히 새벽기도와 연관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새벽기도 인도하러 나갔는데 이상하게 한쪽 와이셔츠가 올라가서 넥타이가 반듯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첫 번째 단추가 두 번째 구멍에, 두 번째 단추가 세 번째 구멍에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통성기도를 시킨 후에 바로 고쳐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모든 것이 잘못됩니다. 첫 단추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나 종교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본질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비 본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에베소교회는 회개해야 했습니다. 회개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키엘케골은 누가복음 15장을 읽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 밖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았으나 오히려 한계상황에 직면'했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탕자는 이에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간 날부터 대문을 열어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집에 있는 옷 중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힙니다. 여기의 ‘제일’이 프로토스(protos)입니다. 제일 좋은 옷, 제일 좋은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합니다.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에 탕자는 용서 받았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을 보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령이란 단어가 행(hang)으로 '옷걸이'라는 뜻입니다. 옷걸이 위에 십일조, 봉사, 구제, 자선, 직분에 따른 수고와 각종 은사를 다 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옷걸이가 벽에서 빠져 버리면 그 모든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맙니다. 사랑은 옷걸이 입니다. 모든 것을 그 위에다 걸게 되는 것입니다. 옷걸이 없으면 아무것도 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옷걸이가 빠져 버리면 불 꺼진 촛대와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불 꺼진 촛대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그의 박사 논문에서 '신자의 두 가지 의(義)'라는 글을 썼는데 신자는 두 가지 의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는 믿음으로 얻은 의(義)로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으로 얻는 의(義)를 가져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가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했습니다.
“주여, 주여!”하고 하나님을 불러도 사랑의 삶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사랑 없는 신자, 사랑이 없는 교회는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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