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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레몬처럼 (몬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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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은 첫째는 가정을 신앙으로 잘 이끈 가장이라는 면에서 저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같이 보겠습니다. 이 당시의 편지의 형식을 보면 발신자의 이름이 나오고 수신자의 이름이 보통 나옵니다. 1절에 보면 발신자는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라고 하였고 또 수신자의 이름은 빌레몬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에게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2절에 보면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한다' 고 했습니다. 바울 서신은 로마서, 에베소서 등 교회에 편지를 썼으며, 개인에게 편지를 쓴 것도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디모데전.후서를 썼습니다. 디도에게 디도서를 썼습니다. 저들에게 편지를 할 때는 '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라든지 또는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이 빌레몬서는 빌레몬에게 쓴 편지이기 때문에 제목이 빌레몬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서는 디모데에게, 디도서는 디도에게 라고 하면서 끝냈는데 빌레몬서는 아주 독특합니다. 그 수신자를 말할 때 빌레몬과 또 다른 수신자 압비아, 그리고 또 다른 수신자 아킵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를 말하고, 아킵보는 대부분의 견해가 빌레몬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너희 가정 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의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기 이전에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빌레몬의 집이 골로새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이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빌레몬 집의 남편과 아내와 아들이 전부 이 골로새 교회의 핵심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빌레몬은 자기만 잘 믿고 자기만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아내도 예수를 잘 믿도록 인도한 사람이었고, 또 자기 아들도 잘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라는 구호들이 있는데 빌레몬의 집이야말로 정말 교회 같은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이 교회에서 예수를 잘 믿는 성도들이고, 그 교회의 성도들이 가정에서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 교회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는 잘 믿고 열심인데 가정에서의 자기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압비아나 아킵보가 곧 자기 남편, 또 자기 아버지를 보고서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하고 물었더라면 압비아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은 정말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분은 내 영혼을 구원해 준 복음의 전도자이고 내 영혼을 잘 양육해 준 분이고 나와 더불어 함께 생명의 기업을 잘 양육한 훌륭한 남편이고 훌륭한 아버지이다.' 아킵보는 아들의 입장에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로 예수를 잘 믿는 분이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미국에서 어떤 한국아이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교회에서 성직자입니다. 성경책을 들고 지나가시면 참 고상해 보이고 엄숙하고 거룩해 보입니다. 우리 아빠가 지나가면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다 인사를 잘 하십니다. 글을 쓰기도 하십니다. 아이들하고 시간을 내서 잘 놀아도 주십니다. 또 교회에서 여 집사님들이 부탁을 하면 열심히 도와주기도 하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집에서 우리 엄마가 무엇을 도와 달라고 하면 귀찮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놀아 달라고 하면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하시기도 하고 고단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신문을 들여다보고 TV 앞에서는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장 된 그리스도인들이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를 제일 아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나는 내 아이들 보는 앞에 정말 내가 이런 직분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이 든다면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의 검 앞에서 마음 가죽을 베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돌아가셔서 여러분들의 가정 사역을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 디모데 전서 3장이나 디도서 1장을 보면 감독된 자를 뽑을 때 또는 집사를 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어떤 사람을 세워야 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한 부분은 가정생활로서 '한 아내의 남편된 자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여 결혼하지 않으면 장로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한 아내의 남편된 자' 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딤전 3:5에서는 '자기 집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교회 일을 할 수 있으리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에 따라 넘어질 수 있고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이중적인 얼굴을 하지말고 회개하고 가슴아파 하면서 가정사역(family ministry)을 먼저 잘 하고 교회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현대의 위기가 무엇인고 하면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도의 선교는 가정에서 견고하게 이루어 져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길거리에 서서 '예수 믿으시오' 하고 전도지 돌리는 일도 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전도 방법이 있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며 또 자녀들을 이렇게 기르며, 믿지 않는 가정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을 보여주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런 것을 보여 주지 못하면 전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공자의 말을 보면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집안을 잘 다스린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논하라는 말입니다. 밖의 일을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직분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집안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직분을 가지고 넘어져 버리면 그 사람 때문에 오는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대통령을 지내고 나서 형편없이 되는 사람이 있지만 그와 반대로 대통령을 지내고 더 훌륭하게 되신 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시절에 아주 눈에 띄게 지도력이 있거나 정치력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선거를 앞에 놓고 그가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일날이면 조지아 주에 있는 자기가 자랐던 시골 교회에 가서 여전히 침례교회의 집사로서 장년반 교사의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첫 번째 맞는 주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몰려 왔습니다.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취재하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평소에 장년반 학생이 20여명 정도였는데 약 70-80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카터 집사님이 그 날 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저를 취재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부득이 이곳을 왔겠지만 다음 주일부터는 주일날에는 취재하러 다니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몸담은 교회에 가셔서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맡았든지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고 직분에 충실하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많이 돌아다니다가도 주일날이 되면 이날은 내가 몸담고 내 영혼이 자라난 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바쁠지라도 내가 직분을 맡았으면 그 직분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바쁠수록 내 자리를 지키고, 바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의 보좌관을 선정할 때 가정에 참 충실한 사람들을 뽑아서 세웠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도 스스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시 한번 내가 믿는 사람으로서 가정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시고 믿는 사람으로서 내 배우자, 내 자녀들, 내 형제들이, 내 부모들이 나를 과연 몇 점이나 주겠는가를 생각하고 돌아서서 여러분들의 가정을 그리스도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부르는 노래인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즐거운 우리 집' 이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빌레몬의 본받을 점은 사회생활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 4절∼6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 하느니라' 5절 끝에 보면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에 옥중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빌레몬에게 썼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성도들도 있었겠지만 성도가 아닌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있는 곳에 와서 사람들이 하는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니까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한다' 고 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만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바울은 빌레몬을 잘 훈련시켜서 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로서 세워놓았을 것인데, 그런 빌레몬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믿는 자는 물론이거니와 믿지 아니한 사람에게까지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바울이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사회생활을 내려다보시면서 정말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주님이 너무 기뻐하시고 흐뭇해하시는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의 모습은 하루입니다. 하루인데 하루도 다 아니라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저는 조국을 떠난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14년 동안 우리 조국에서 여러 가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유치원생들이 수련회를 갔는데 불이 나서 죽었다는 등 많은 소식을 들었는데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사람이 불가항력적으로 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났다던가 벼락이 떨어졌다던가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배후를 살펴보면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또 그들은 모두가 교회의 직분 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약 25%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교회라든지 또는 믿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제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제 7계명인 '간음'은 지독한 죄로 알고 있지만, 거짓말을 한 것은 별것으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전도사님과 함께 중학생들이 스키를 타기 위해서 여행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스키를 탈 때는 나이에 따라서 돈을 받는데, 한 학생이 전도사님께 '전도사님, 저 몇 살이라고 할까요?' 라고 물었답니다. 목욕탕에 가면서는 '얘, 너 몇 살이라고 해.' 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밑바탕에 거짓말하는 습관이 깔려 있다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견고할 수 있는 이유는 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직한 사람은 대우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 있다고 할지라도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문제가 되는 사회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중에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는 제일 큰 계명이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거짓말은 교회에도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소금이 만약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습니까? 교회가 만약에 정직성을 상실해 버리고,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생활 하면서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누가 이 세상을 정직하게 만들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짠맛을 내지 않으면 다만 밖에 버리어 발에 밟히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직분을 받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서 죄를 저지르면 신문에서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짠맛을 잃어버리고 형편없이 되면 대서특필을 합니다. 그리고 밟고 능멸하고 수치를 당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고민이 여러분의 고민이십니까? 성령님의 탄식이 여러분들 속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괴로워하심이 오늘 이 한국 교회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에게 부족한 저를 통해서 말씀을 대언 하게 하시는 것은 이 안양 일대가, 경기도 일대가, 또 한국 땅 일대가 여러분들을 통해서 어두움이 몰아치고 부패하는 거짓된 세력들이 점점 추방되고 정직한 사회를 구현하고 정립해 나가는 밑거름이 되라고 이런 말씀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야기도하고 금식 기도한 후 세상에서 이중적으로 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용히 '아멘' 하고 돌아갈지라도 거짓말 한마디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그런 마음 가죽을 베는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성도로서 살기 힘들더라도 정직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나 괴로워서 가슴아파하고 예배당에 들어와서도 세리처럼 정말로 나는 죄인이라는 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2장 20절에 보면 '큰집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어서 귀하게 쓰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너를 깨끗게하면 주인의 쓰임이 합당한 선한 그릇으로 예비함이 되리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쓰임에 합당한 선한 그릇으로 예비함이 되려면 청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감찰하시면 여러분들이 한 주일동안에 무슨 생활을 하다가 왔는지 다 아십니다. 빌레몬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고 정말 성도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고 좋은 평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들도 좋은 평을 받으면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빌레몬은 교회 안에서도 참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모범적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은 열심히 합니다만 교회에서는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눈 도장 찍으려고 나오고 세상에서는 돌아다니는 데가 많습니다. 7절을 봅시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 때문에 편안해졌습니다. '편안하다'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등록한 한 분이 제가 심방을 갔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에 와서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에 등록하게 된 몇 가지 요인 중 하나가 제가 교회에 와서 첫 날부터 지금까지 정말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 분 때문에 내가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권사님이신데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권사님의 얼굴이 늘 환하고 미소가 있고 아주 겸손하십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자리를 마련해주고 안내하고 식사도 같이하고 혹시 보이지 않으면 안부전화를 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처음 나오시는 분에게는 예수님은 그의 눈에 안보이고 목사님은 멀리 계신데 이 권사님이 곧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증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 때문에 자기는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권사님과 같은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왕 신앙생활 할 바에는 남을 도와주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도회라든지 구역이라든지 찬양대에 참여하면 그 사람 때문에 되던 일도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되던 일도 그 사람 때문에 잘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교회에서 참으로 모범적인 사람이 되려면 다른 성도들에게 '저분은 나에게 은혜를 끼치는 분이다' 라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본문에 보면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그리고 빌레몬은 자기의 지도자인 바울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는 분명히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도자를 기쁘게 하고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왕 교회생활 하려면 성도들에게는 평안함을 주고, 목사님에게는 기쁨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 번 런던에 있는 큰 한인교회에 집회를 갔었습니다. 어떤 젊은이 한 분이 공항에 저를 데리러 나온 후 가는 곳마다 안내를 해주고 돌아올 때도 다시 차를 태워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 아버지는 불교신자로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부자이고, 어머니도 한아름이라는 식품점을 운영하는데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에 아주 큰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장인을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믿는 여자하고 만나서 교제했기 때문인데 그때 장인된 사람이 자신을 불러놓고 '네가 정말로 내 딸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앞에 헌신적이 되기 전에는 나는 내 딸을 주지 못한다'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여자가 좋아서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결혼 후에 자꾸 장인을 만나다 보니까 그 전에 자기가 말로만 듣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 귀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우리 장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경위를 그분의 사모님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장인은 포항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으로 수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후에 편안하게 살집을 짓기 위해서 돈을 모아놓은 후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기도하는 중에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집만 지으면 되느냐? 목사님은 셋집에서 살고 있는데 너만 좋은 집에서 살면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는 똑같은 집을 두 채를 지었습니다. 한 집에는 자신의 내외가 들어가 살고, 또 한 집에는 목사님이 사시라고 했습니다. 살면서 수도꼭지가 고장나면 '목사님 댁도 수도가 고장날 때가 되었겠지?' 하고 가서 고쳐 드렸습니다. 바닥이 헐면 목사님 댁도 가서 고쳐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어떤 부서에서 놀러 갔다가 큰 사고가 났습니다. 이런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행정적인 책임이 목사님에게 있기 마련인지라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경찰서장을 만나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우리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리 목사님은 할 일이 많은 분이고 돌아보아야 할 양떼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는 할만큼 다 한 사람이고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장님, 목사님이나 저나 교회에서 책임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제가 목사님 대신에 감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처리하여 주십시오.' 라고 사정하여서 목사님대신에 이 장로님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 장로님이 감옥에서 나온 후에 자기 딸에게, 사위에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생애동안에 그처럼 은혜가 충만하고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때가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목사님을 대신해서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는 이루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목사님을 위해서 대신 짐을 지고 목사님의 사역을 돕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주님을 대신해서 짐을 지는 것이고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보내신 내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0장 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자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든지, 윤리적으로 범죄를 했다든지, 비진리를 선포해서 성도들을 유린시키는 일을 하는 그런 목자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고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중심으로 하시면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은 이 교회의 이름처럼 일심으로 협력하고 후원하고 도와줄 때 목회자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그 교회가 큰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 교회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일궈 놓은 교회인데도 떠나싶었습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저도 목회를 해보니 위로를 해줄 때 힘이 생깁니다. '훌륭한 목회자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목사님 혼자서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먼저 집안에서 식구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믿는 자의 본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님께 기쁨과 위로를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모범적인 성도인 것이며, 빌레몬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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