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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네시모처럼 인정받는 참 아들이 됩시다 (몬 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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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포도원을 가진 부자에게 아들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네, 하겠습니다.'라고 시원스럽게 대답은 했지만 전혀 일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순종하지만 행동으로는 불순종하는 못된 아들입니다. 이번에는 둘째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둘째가 처음에는 '싫어요.'라고 말했지만 조금 뒤에 대답을 잘못한 자기 자신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비의 뜻을 행하였느냐?' 라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둘째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큰 아들이 누군지 아느냐? 종교지도자인 바로 너희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혼자 잘 믿는 것처럼 말은 잘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노릇을 전혀 못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들이 세리와 죄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내가 복음을 들고 와서 전하고 가르쳤더니 자기들의 잘못된 것을 전부 깨닫고 회개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 딸 노릇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 그러므로 이들이 너희들보다 천국에 먼저 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둘째 아들이 참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런 경우와 같은 뜻은 아니지만 참 아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서론적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 오네시모처럼 인정받는 참 아들이 됩시다' 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조명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믿음의 아들이 참 아들입니다.
8-11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하루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라고 하는 소아시아 지방의 가장 큰 도시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데 마침 골로새에 사는 에바브라와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에베소에 왔다가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듣고 '생명이 여기에 있다. 구원이 여기에 있다. 진리가 여기에 있다' 는 것을 깨달아 예수를 믿고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골로새 교회를 처음 시작한 빌레몬에게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오늘의 주인공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예배를 드리는데도 주인이 믿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주경학자들에 의하면 첫째는, 주인이 종에게 매우 가혹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죽어도 믿지 않겠다.'는 것이고 또 '저런 주인이 가는 천국이라면 나는 가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네시모의 성질이 고약하여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질이 고약하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오라 하면 가고, 가라 하면 오는 성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네시모가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로마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얼마 안가서 빈털털이가 된 오네시모는 주인을 통해 들었던 바울이라는 사도가 로마 옥중에 갇혀 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찾아 갔던 것입니다. 그 시대의 감옥생활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감옥과 같이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때에는 감옥에 갇혀 있어도 제한된 자유가 있어 누구든지 찾아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당국이 허락하면 나가서 만날 사람들을 만나고 제 시간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 오네시모에게 바울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을 때,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숨김없이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가 믿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얼마나 열심히 믿는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오네시모에 대하여 '나이 많은 나, 로마 옥중에 갇힌 나, 갇힌 중에 내가 낳은 오네시모' 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과 오네시모는 육적으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입니다. 그럼에도 '낳았다' 는 표현을 쓴 까닭은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에게 바울은 '믿음의 아버지' 였고,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참 믿음의 아들'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고 의과 전문대학이 세워지고 초창기에 이 대학을 졸업한 후 외과 의사가 되었던 '박서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의 이름은 박성춘으로서 직업은 백정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백정들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서러움 때문에 '내 아들만은 어떻게 공부시킬 수 없을까?' 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워 학생들에게 먹여주고, 수업료도 받지 않고, 신분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박서양을 서양학당에 보냈습니다. 박서양이 이 학교에 다니더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배우고 하나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장티푸스는 병도 아니지만 그 시대에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하면 그 집을 불태우고, 동네에 새끼줄을 치고, 교통을 차단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아버지 박성춘이 갈수록 심해지고 '죽었다, 살았다'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아들 박서양이 세브란스 병원의 원장 어비슨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님. 제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여기까지 모셔 올 재간이 없습니다. 열 때문에 정신을 잃고 죽어 가는데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어비슨 선교사가 박성춘의 집에 가서 주사와 약으로 치료했더니 열이 내려가고 아버지는 깨끗이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박성춘은 '선교사가 나의 은인이다. 이 선교사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으리라.'고 하여 아들을 통해 선교사를 소개받고, 선교사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박성춘은 같은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백정들을 기반으로 해서 세워진 교회가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에 있는 '승동교회' 입니다. 이렇게 아들이 선교사를 만나 예수 믿고, 그 아들을 통해 아버지도 예수를 만났고, 승동교회 초대 장로까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의 아들이 얼마나 장한 아들이요, 참 아들입니까?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도 이렇게 장한 믿음의 아들 딸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변화된 아들이 참 아들입니다.
11절을 보면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도망쳐 나왔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종이 도망갔다 붙잡히면 가차없이 죽이는 시대였고 도망쳐 나온 종을 숨겨주면 로마법에 저촉이 됩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돌려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죽이지 말고 '돌아가거든 형제처럼 여기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바울 자신에게나 빌레몬에게나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무익하였으나 유익하다' 는 말씀은 '내가 데리고 있어 보니 오네시모는 지금도 내게 유익한데 돌아가면 네게도 유익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예배당에 들어올 때와 예배하고 돌아갈 때가 달라져야 하고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와 예수 믿고 세월이 흐른 오늘날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도록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백해무익했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누구에게나 유익한 사람으로 새로워지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새로워지는 아들, 변화되는 아들이 하나님의 참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나,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습이라면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오네시모 처럼 우리들도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워 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심복이 된 아들이 참 아들입니다.
12절을 보면 '네게 저를 돌려보내니 저는 내 심복이라' 고 했습니다. 심복이란 헬라어로 '내장' 이란 뜻으로서 '믿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이나 맡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는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길 정도로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한 때는 자기의 상속자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며느리를 맞이하는 일도 전적으로 그 종에게 맡겼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었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종을 심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찾아온 오네시모에게 전도했더니 전혀 달라진 그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 자신이 데리고 다니며, 평생을 함께 복음전하고, 온갖 시중을 들도록 하고 싶었지만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 없이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성경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빌레몬이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맞이하고 '이 일은 내가 해야했을 일인데 바울 사도가 하였다.'고 하며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없는 것으로 생각할 테니 바울에게로 다시 가라' 고 하여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이 순교할 때에 함께 순교 당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심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심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도 예수 믿는 여러분들에게 심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처음에 오네시모는 백해무익한 사람이었으나 복음으로 변화되어 사도바울에게 믿음의 참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께 믿음의 참 아들이 되었으며, 심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네시모처럼 복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참 아들과 딸들이 되시고, 심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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