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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일에 열심을 (딛 0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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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옌시(Philip Yancy)라는 작가가 최근에 '하나님께 대한 실망(Disappointment with God)'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습니다. 필립은 이 책을 쓰면서 여러 사람들과 상담을 했는데 의외로 하나님께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선한 일도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척 하신다고, 어떤 사람은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나님께 호소했는데도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지 않았다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온갖 요구와 규제를 우리에게 강요하시면서 정작 우리가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필립은 이런 상담 자료를 모아 책으로 펴내면서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 둘째는 하나님을 알고는 있으나 실망하며 사는 사람들, 셋째는 실망뿐만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거부하고 후회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울증과 신경증에 시달리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년은 갑자기 화를 내며 벽장에 걸려 있는 총을 꺼내어 아버지를 쏘아 버립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소년은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아버지를 죽인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랬던 그였지만 어느 날 그 소년은 옥중에서 흐느껴 울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내게는 아버지가 필요해. 아버지, 아버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의 아버지는 귀찮아하지 말고 선한 일에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디도서에는 선한 일에 대한 강조가 여섯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가르치라(2:3)'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2:5)' '네 자신으로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2:6)' '오직 선한 일에 충성하라(2:6)' '선한 일에 열심 있는 백성이 되라(2:14)' '선한 일을 버리지 말라(1:16)'

1.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에 바빠야 합니다
현대인의 특징 중 하나는 바쁘고 급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아주 소중한 재산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시간을 만들어 인간에게 아주 귀한 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즘 온갖 종류의 공학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공학 시대라고 합니다. 생명공학, 유전공학, 우주공학, 전자공학, 심지어 공상공학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간도 재생하거나 시간을 만들어내어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인 가도 생각하는 때입니다. 시간은 생명처럼 귀한 것입니다. 이처럼 소중한 시간들을 사람들은 죽이기도 하고, 흘려 보내기도 하고, 낭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조급해 합니다. 교통 체증에 걸렸을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을 때, 심지어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조급해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습니다. 눈을 감은 채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거나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갑니다. 끊임없이 사고 팔며, 직업을 찾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요람에서부터 무덤을 향해 쉴새없이 미친 듯이 달리는 존재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바쁘질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느긋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습니다. 선한 일에 대해서는 때때로 뒤로 물러서거나 양보도 잘합니다. 아주 천천히 편안하게 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느립니다. 구원받는 일이나 교회의 지체가 되어 봉사하는 일,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하는 일이나 십일조를 드리는 일, 성경을 읽는 일이나 성경 공부하는 데에는 여유와 함께 늘 뒤로 미룹니다. 전도하고 기도하는 일에는 한없이 느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사가 우리에게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줄 때 비로소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울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붕괴된 건물 속에 갇혀 있을 때 마치 아버지를 죽인 소년이 흐느끼며, ''아버지, 아버지...''하고 부르짖는 것처럼 시간의 소중함과 헛된 일에 바쁘게 달려온 자신의 실존을 다시 조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바쁘셔야 합니다. 선(善)에는 철학적인 선, 사회적인 선, 율법적 선, 종교적인 선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을 이렇게 분석하고 쪼개고 해석하는 것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에게 선이란 바로 하나님이요, 선한 일이란 바로 하나님의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시요,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은 선한 일에 열심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대해 실망하지 맙시다
선한 일을 하되 하나님께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 실망은 기대에서 옵니다. 악한 사람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그렇게 실망한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갔습니다. 한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고, 선을 향해 살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아쉬울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나 천국 문에 서게 되었습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가 먼저 가난한 사람을 끌어안고 환영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늘 꽁지였지만 여기서는 머리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까 같이 온 이 부자 친구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홍색 카페트가 깔리고, 밴드와 합창단이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부자 친구에게는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집의 열쇠를 주는 것입니다. 가난했던 친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말씀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이웃을 도우며 살았는데, 천국에서조차 이렇게 홀대를 당해야 하느냐고, 너무나 실망이 되어 차라리 천국을 떠나버렸으면 한다고 베드로는 찾아가 분통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자네 같은 사람들은 여기에 얼마든지 오지만, 저 부자 친구처럼 저 세상에서 부자로 살던 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은 저 친구가 처음일세. 그래서 저렇게 환영하고 있는 거야. 이제 자네가 살집은 저기 궁곁에 있는 맨션인데 이 부자 친구의 집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 이 이야기는 중세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유태인들의 가르침을 위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든 어떤 기대를 갖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경건 생활에 소홀하지 않고, 기도생활이나 봉헌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우대를 받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종의 이익을 바라며 행하는 봉사는 차라리 봉사라기 보다는 거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입니다. 작은 것을 심어서 큰 것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부족을 느끼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고 참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친 백성답게 긍지와 자부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친 백성이 된다(a people of His own)' 말은 신약성경에 단 한번, 바로 이곳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백성, 특별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어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고, 깨끗케 하시고, 선한 일에 열심히 있게 하시고, 특별한 소유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계산하거나 분석하거나 따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앞서서 말씀드린 '하나님께 대한 실망'이라는 책을 쓴 옌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두뇌로 분석할 대상이거나 연구할 대상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죤스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하루는 자기 딸집에 갔는데 마침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손자 녀석이 잘못해서 엄마에게 벌을 받는데 서양에서는 대개 벽쪽을 바라보고 서 있도록 합니다. 벌을 서고 있던 꼬마 녀석을 이제 할아버지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할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으십니다. 다음날 에드워드는 페인트를 가지고 다시 와서 손자 아이가 벌을 서면서 바라보아야 했던 하얀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돌아가는 고양이 그림,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의 그림, 금붕어 자유로이 노는 그림 등을 그렸습니다. 다음에 또 벌을 받을 때에는 아무 것도 없는 맨 벽을 바라보고 있지 않도록, 재미있는 그림을 바라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라도 잘못하면 벌을 주어서라도 바르게 길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에드워드 할아버지는 여기에 깊은 배려와 사랑과 교육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은 사랑과 존경으로 아버지를 경외하고 그 분께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것과 정욕입니다. 반대로 세 가지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복스러운 소망,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선한 일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친 백성답게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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