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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욕이 경건의 지름길인가 (골 02: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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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골로새서 12번째 강해입니다. ‘금욕이 경건의 지름길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골로새서 1장과 2장을 공부하고 있는데 골로새서 1장은 예수님이 누구인가, 기독론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골로새서 1장을 공부해야 됩니다. 골로새서 2장은 그 뛰어난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의 충분성과 예수님의 탁월성에 대해서 공격하는 무리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공격하는 내용에 대한 응답이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에는 예수님에 대해 공격하는 세 부류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살폈던 것은 영지주의의 공격이었습니다. 영지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얘기해서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입니다. 고난을 회피하는 이원론자들, dualism입니다. 지금 체험을 강조하는 모든 시도들이 있지 않습니까?그 뿌리를 찾다 보면 전부 다 영지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지주의라는 것은 극단적인 주관주의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나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기독교가 영지주의적인 색채를 띨 때 공격을 당했습니다. 포이에르 바하나 프로이트가 기독교를 공격하기를 기독교의 하나님은 실존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을 외적으로 투사해서 만든 하나님이다, 인간의 소망의 대상을 투사해서 만들었을 뿐이지 실존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공격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했던 이유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들은 우리의 마음을 투사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소망과 야망을 깨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 하나님의 절대주권, 부활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이성과 충돌하는 내용입니다. 내 마음의 소망을 투사했다고 하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것을 투사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상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생소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절대 인간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 보면 우리가 투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체험에서부터 출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중심적인 신앙이 이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에서부터 출발되어야만 안전하고, 진정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진짜 기독교를 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오직 말씀으로’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잘못된 영지주의의 아픔을 보면서 얼마나 말씀중심적인 신앙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공격은 율법주의의 공격이었습니다.
율법주의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할례나 율법을 더 갖추어야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으로 충분치 않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주의적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했고 영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나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더 깊어진다는 내용의 예수님 플러스 알파를 주장했습니다. 지금의 모든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의 내용은 눈에 보이는 것이 더해져야만 성장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율법주의가 왜 나쁜 것입니까. 우리가 볼 때 율법주의자들은 철저히 믿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훈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두 가지의 큰 악영향이 있습니다. 첫째, 성장의 방향을 오도해 버립니다. 기독교는 우리 내적인 변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속사람의 변화를 첫 번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데 율법주의는 초점은 겉사람입니다. 외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껍데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21세기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많이 표출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요즘에 문제가 되는 루키즘입니다. 자꾸만 눈에 보이는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그런 쪽으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공격을 당합니다. 율법주의적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공격을 당합니다. 외형주의, 물량주의, 교회가 왜 자꾸 껍데기로만 나아가려고 하느냐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 기독교에 대한 공격도 아닙니다. 율법주의에 대한 공격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붙드는 자들인데 율법주의는 나의 공로와 나의 실천한 것을 들고 자랑하면서 나아갑니다.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자기 의!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과는 완전히 충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율법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 보십시오. 영지주의, 체험위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예수 잘 믿어 보이지요. 율법주의를 보면 굉장히 철저해 보이지 않습니까. 마귀는 항상 우리를 공경할 때에 항상 이렇게 겉으로는 광명의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납니다.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1. 무엇보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
껍데기를 볼 때는 굉장히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금욕주의입니다. 금욕주의는 경건해지기 위해서 금욕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금욕주의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 가운데 다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인간냄새가 납니다. 보통 사람들,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에 반드시 나오는 것이 금욕주의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뭔가를 결심하면 머리 밀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맘 잡았어요” 하면서 수염 밀고 싶고 손톱 밀고 싶고…… 이제 9월과 10월이 돌아오면 자매들 가운데 사귀다가 바람맞은 자매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꼭 나오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 행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머리 자르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월에 미용실이 잘 됩니다.

그런 것이 다 일종의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금지시키고 못하게 하는 그것이 나를 거룩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중세 때는 고행용 겉옷이 있었습니다. 겉옷이 무게가 20㎏ 쯤 되고 그 안에 바늘을 달았다고 합니다. 걸을 때마다 찔리고 인상쓰고 그러면서 내가 거룩해지고 거룩해지고……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 것 아십니까?못 박아 놓은 것 위에서 뒤척이면서 자고 또 두 사람씩 서서 서로의 몸에 채찍질을 하는 것입니다. 피 줄줄 흘리면서 주여 주여 하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또 낮에는 말 안하기, 먹지 않고 자지 않고 버티는 것……십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라는 분이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왜 존경을 받느냐 하면 금욕 때문입니다. 들풀만 먹고 살았다느니 8년을 앉아서 잤다느니 하면서 사람들이 존경을 합니다. 금욕을 하면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높은 수준의 성도인양 인식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합니다.

금욕주의는 얼핏 보면 되게 어려워 보이지만 굉장히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금욕이 어떤 것인지 다 압니다. 우리가 의지가 없어서 행하지 못할 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다 압니다.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의지가 지독한 사람들은 그대로 합니다. 그것이 거룩하다고 하면 그렇게 합니다. 원래 뼈대 있는 집안 사람들은 예수 믿을 때도 금욕하라면 쉽게 합니다. 이를 악물고 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금욕주의는 진짜를 모를 때에 쓰는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진짜를 모를 때……

제가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냉전시대에 중&8228;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경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공산주의가 다 망했으니까 결판이 났지만 그때만 해도 공산주의가 굉장한 기세로 들고 올라와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엄청난 체제경쟁을 할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서 국민윤리를 배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공부해 보아서 아시겠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워낙 여러 곳에 철학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철학사 전체를 다 공부해야 할 정도로 뿌리가 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철학까지, 실용주의까지 모든 철학사를 다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워낙 많은 저수지에서 물이 흘러 들어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2-3페이지 밖에 묘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험문제도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산주의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비판을 했습니다. 제 또래들 중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공산주의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를 배우고 공산주의 비판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 자체가 좀 유치했거든요. 그래서 다 공산주의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산주의를 배우고 대학 들어가서 공산주의 원전을 읽고 일본어 배워서 일본어로 된 책을 읽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때 접근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공산주의를 설명합니다. 공산주의는 명확하잖아요. 공산주의를 가르치고 난 다음 공산주의 아닌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접근을 했습니다. 참 웃기는 시대였습니다. 북한에서도 공산주의를 배우고 남한에서도 공산주의를 배우고 단 공산주의 아닌 것이 자유민주주의……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금년 5월에 평양에 갔지 않습니까? 평양을 갔을 당시 제 감시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만 보면 공산주의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삼대혁명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 다 안다고 했습니다.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 아니냐고 했더니 깜짝 놀랍니다. 나 공부 잘했습니다! 나 다 배웠습니다. ‘사기문’이라고 배웠어요. 사 사상혁명, 기 기술혁명, 문 문화혁명. 다 했어요. 붉은기쟁탈 운동부터 시작해서 다 공부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깜짝 놀랍니다. 학교 때 다 배웠다고, 그것 비판하는 것까지 다 배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 약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를 배우다 보니까80년대 학번들 중에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반공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똑같은 접근이 있습니다. 요즘에도 우리 예배 끝나고 나가려고 하면 이단들이 많이 있다면서요?이단들이 감히 삼일교회 성도들을 전도하고 있다면서요?제가 그런 얘기 들었는데……옛날에는 이단들이 인터넷에 자기들의 주장을 실었습니다. 요즘에는 교활해져서 질문의 형태를 띠면서 유혹을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설명할 때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는 방법이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이단을 설명하고 난 다음 이단이 아닌 것이 기독교라고 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단을 설명하는 것이 더 쉽거든요. . 이단이 아닌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 굉장히 많습니다불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유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로 남겨둡니다. 미지수 X로 남겨 둡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성경을 일독도 안 해 본 사람이 이단이 주는 책을 읽고 연구하겠다고 합니다. 성경도 한 번 제대로 못 읽어 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비판은커녕 조금 지나면 자기가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이단연구하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하잖아요. 이단연구는 이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좋은 단체들에 맡겨서 우리를 디펜스하게 만들고 우리가 먼저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인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장차 미래의 심판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는 바가 무엇인지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굳이 이단을 연구 안 해도 제가 볼 때에 90%는 이단비판할 수 있습니다.

진짜가 아닌 것이 가짜입니다. 제가 위조지폐 판별법을 얘기했지요?진짜 지폐의 특징을 명확히 알면 그것이 아닌 것이 다 가짜입니다. 가짜는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아닌 것이 가짜입니다. 진짜를 접해 본 사람은 가짜를 금방 압니다. 저는 그러므로 기독교도 금욕주의적인 접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아닌 것이 진짜라는 식의 접근은 안 됩니다. 고행하는 것,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것, 세상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입니까?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어렴풋하고 잘못된 접근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머리가 무엇입니까?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머리가 누구입니까?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금욕이라는 도구로 나갈 것이 아니라 예수님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욕주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 보태지는 것이 있어야 영적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이 있어야 영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03년에는 내가 방언이 더해져야 하고 2004년에는 통역이 더해져야 하고 2005년에는 영분별, 2006년에는 투시의 은사…… 자꾸만 뭐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신학생세미나를 했더니 신학생들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 뭔가 기발한 것을 다 원합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많이 그런 것 같습니다. 뭔가 새롭고 기발하고 안 보던 것, 뭔가 다른 것……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영양을 공급받아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덧붙여져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받아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연결이 중요합니다. 뿌리에 연결이 되어서 공급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좋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을 보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관계만 올바로 되어 있으면, 예수님 믿고 예배드리고 새벽기도하고 말씀생활하는 그런 관계가 올바로 되어 있으면, 그것만 유지하고 있으면, 영양을 공급받아서 자랍니다. 그러니까 발작적인 믿음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우리 몸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내가 성장한다는 것이 뭔가 덧붙여지는 것입니까.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 저에게 팔 하나를 더 주십시오!그래서 팔 하나가 등에 생기면 그것이 성장하는 것입니까?하나님 예쁜 눈 하나만 더 주세요. 그래서 눈이 이마에 하나 더 있으면 그것이 예뻐지는 것입니까?아니지요. 덧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팔 숫자 늘고 다리 숫자 늘면 그건 괴물입니다

금욕주의는 그런 것입니다. 뭐가 덧붙여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은 이미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 손이 있고 발이 있고 눈이 있는 것,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영양분을 먹고 소화되어서 흡수되면 그것이 성장하는 것 아닙니까?금욕주의는 접근 자체가 이상합니다. 뭔가 덧붙여지는 것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양적인 접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공급받아야 합니다. 머리를 붙들어야 이런 일이 있습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어야만 이런 일이 있습니다.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데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때 중&8228;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공부를 못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못하는 아이들은 성질이 급합니다. 조급해서 종합반은 절대 안 갑니다. 단과반, 영어 두 달이면 완성, 수학 1개월이면 완성, 이런 곳을 갑니다. 어떻게 3년 동안 배운 것을 1개월에 완성할 수 있습니까?그런데도 짧은 시간 안에 결판을 내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2개월에 대충 끝내고 6개월 노는 사람 많이 보았습니다. 몇 가지 과목을 들었느냐에 따라서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종합반 같은 데에 가서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 쭉 듣고만 있으면 학교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들을 뿐인데 실력이 늡니다. 이상하게 시험장에 앉으면 선생님이 하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님의 음성같이 손이 끌려갑니다. 진짜 그렇다니까요. 관계입니다.

공부 얘기 한 번 더 해 볼까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짧은 시간 안에 한 번에 다 해 버리고 과외 몇 가지 하느냐 이런 것을 내세웁니다. 내가 누구한테 배우느냐, 무엇을 했느냐…… 제가 볼 때 그것은 옳지 않은 접근입니다. 올바른 관계, 올바른 태도가 되고 난 다음에 그 관계를 유지하면 결국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을 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속에 새로운 욕망을 심어줍니다. 베드로후서 1장 14절을 보니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내안에서 변화가 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가지가 힘쓴다고 과실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붙어 있으면 과실을 맺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순간마다 우리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2. 금욕주의의 폐해
그런데 악한 마귀는 이렇게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것을 방해합니다. 겉으로 볼 때 멋있는 보이는 내용을 가지고 방해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두 가지를 가지고 방해합니다.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 이런 것을 하면 너희 상을 빼앗긴다고 합니다.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라고 하는데 상을 빼앗긴다고 합니다. 상을 빼앗긴다, 이것은 운동경기에서 쓰는 말입니다. disqualify,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설명해 보면 지난 동계올림픽 때 숏트랙에서 우리 김동성 선수가 1등으로 들어왔는데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는 실격처리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을 빼앗긴다, 실격당했다, 아무리 뛰고 일등으로 온다고 할지라도 disqualify…… 그런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겸손함을 백날 해 봐야 소용없고 천사숭배함도 백날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실격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27절에 보니까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합니다. 원래 학문은 기초적인 A B C D입니다. 가나다라마바사, 기초적인 알파벳 순서, 그런 것을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무릇 우주의 기초가 되는 것, 이런 것을 21세기 우리 용어로 말한다고 하면 상식적인 것, 우리 속에 가지고 있는 공유된 감정, 더 쉽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

우리 인간의 본성 가운데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이 숨겨져 있다니까요. 마음 속을 투영하면 이런 것들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종교와 잘못된 이단들을 보면 일부러 겸손함이 다 있습니다.

일부러 겸손함이 무엇입니까?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런 것 잘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다른 분을 시키시지요. ”그리고서는 속으로 계산을 다합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나를 시키려고 할 거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인기를 쓸 수 있는지를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술수지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진짜 어떤 일을 순종하고 싶지 않을 때 아주 예의바르고 완곡하게 표현함을 통해서 불순종할 수 있는 방법을 압니다. 교회 안에서도 아주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예의바르게 불순종을 합니다. 욕도 못하게…… 얼마나 겸손하게 빠져나가는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하면서 내가 무엇 말을 할런지도 다 계산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것이 일부러 겸손한 것입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감동하고 존경할지도 계산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행동과 어떤 사람의 말과 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는 열매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결국 순종의 자리에 나아가고 있는가, 순종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한다 해도순종의 자리에 없으면 그것은 가짜 겸손입니다. 순종의 자리에 나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그런 것을 느끼지 않았습니까?공부 못하는 아이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밤을 많이 샙니다. 밤 많이 새는 사람들이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의 목표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밤을 샐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밤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야지, 가문의 영광이 되어야지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사람의 목표는 공부가 아닙니다. 멍하니 있다가 아침 6시까지 안 자는 것입니다. 과외 공부를 몇 개 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실력에 도움이 되는지가 아닙니다. 다 껍데기입니다.

한국사람 중 이런 버릇이 남아서 대학교 졸업하고 난 다음에 별 필요도 없는데 학위를 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 필요도 없는데 학위를 땁니다. 전부다 일부러 겸손함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공부 잘 해 본 사람들은, 물론 소수이겠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 리듬상 언제가 공부가 잘 되는 때인지를 압니다. 잘 되는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합니다. 남들이 보나 안 보나 놀 때는 다 놉니다.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겉으로 볼 때는 밤낮 노는 것처럼 보이는데 공부를 잘 합니다. 리듬에 맞추어서 좋은 시간에 중요한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 눈치를 안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러 겸손한 사람은 남들이 자유를 누릴 때 얄미워서 못 견딥니다.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금욕을 행하는 사람치고 남 공격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수준인 줄 알고 남을 공격합니다. 교회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기도원에 올라가서 40일 금식하고 내려오신 분입니다. 이분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눈도 크게 안 뜹니다. 옆으로 째려보면서 저 목사 언제 기도하나 평신도인 내가 40일 기도했는데 저 사람은 왜 밥만 먹나 하면서 밥 먹는 것을 보며 시험드는 것입니다. 돼지 같이 먹네……진짜 그렇습니다.

금욕주의는 그런 것입니다. 금욕을 하고 난 다음에 자기 의에 충만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못해! 나는 했는데 저것도 못해! 나는 했는데……’ 계속 그런 식입니다. 일부러 겸손함입니다. 속에는 교만이 득실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 만나기 이전에는 해결 못 합니다.

또 하나가 천사숭배인데 천사숭배도 교만이 담긴 거짓 겸손입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말하는 것 들어보셨지요. “나는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을 만큼 선하지 못해, 나는 죄인이야! 하나님께 직접 못 나가!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있는 어떤 천사에게 나아가야 해. ” 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럴 듯 해 보이지요. 겸손해 보이지 않습니까?어떻게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느냐, 천사에게 먼저 구해야 돼…… 이것은 겸손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한 것 아닙니까?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나같이 허물 많고 죄 많은 종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 때문에 열린 것입니까?아니지요.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서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나를 이렇게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영광스럽게 변화시켰습니다. 영광스럽게 변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력인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숭배는 그 십자가를 깡그리 무시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다 무시해 버립니다. 말로만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높임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해, 나는 부족해……이것이 결국 인본주의잖아요. 되게 겸손해 보이는데 결국은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납니다. 교만입니다.
마귀가 또 이런 식으로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그런 것이 많은데 교회는 사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또 다른 말로 하면 목사중심적인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맞습니까, 틀립니까?지당한 얘기입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목사의 연약함을 지적합니다. 목사의 연약함, 목사의 부족함, 목사의 죄…… 목사가 죄인 아닙니까?죄 안 짓는다고 믿습니까?다 알지요. 다 죄인입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지적하면 많이 나옵니다. 저도 지적하면 수백 가지는 나옵니다. 그 얘기에 대해서 그것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느냐……정당한 것입니다. 그런 취미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정당한 것입니다.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귀는 목사의 연약함을 공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 연약한 목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무시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목사가 연약하다는 것을 밤낮 떠들어 보세요. 맞는 얘기입니다. 틀린 얘기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십니까?그렇게 연약한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고 능력 주시니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일하시더라!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까지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에 대한 공격이 설교의 권위에 대한 공격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이것은 마귀가 쓰는 장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똑같은 이야기를 입장을 바꾸어서 하면 여러분은 죄인 아닙니까?맞지요?다 죄인들이지요?목사는 성도들을 막 공격을 합니다. “이 죄인들아! 죄인들의 괴수야!” 그러면 저기서는 “네가 왕초잖아. ” 하면서 서로 싸웁니다. 싸우는 교회의 특징이 그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사가 죄인이라고 하고 목사는 성도들이 죄인이라고 합니다. 다 맞는 얘기입니다. 다 성경적인 얘기라고요. 서로 그러자고요. 서로 그럽시다. 그러나 연약한 목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도 여러분들 죄인인 것 압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지요. 다 죽은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능력이 그 사람을 살리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호가 멋있든 안 멋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간중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정답은 무엇인지 아십니까?어떤 주의와 주장이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가, 나로 하여금 예배하게 만드는가, 나로 하여금 충성하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듣다 보니까 교회 다니기 싫습니까?그러면 그것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온 사람의 말을 들으면 더 믿음이 생기고 더 충성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귀의 말은 다 옳아 보이는데 결국 주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십자가를 떠나게 만듭니다. 그것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호로 속을 수 있습니다. 속지 않는 길은 내가 십자가 붙들게 만드는가,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게 만드는가 그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정죄도 두 가지입니다. 회개케 하는 정죄가 있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정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그러한 말씀 붙드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참된 금욕이란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참된 금욕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금욕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금욕 자체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하는 금욕 중의 하나가 금식입니다. 금식은 다 합니다. 우리도 이번 새생명기도회 때에 3-5일 금식할 것인데 바른 금식에 대해서 마태복음 6장 0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참된 금식의 핵심이 무엇입니까?사람에게 보이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욕주의자들과 얼마나 다르냐 하면…… 여러분, 금식해 보셨습니까?저는 오래는 못 해 봤지만 3일 정도는 해 보았습니다. 금식을 하면 우리가 거룩해집니까?제 경험과 우리 동료 목사님들의 경험과 성도들의 경험에 의하면 절대로 아닙니다. 금식한다고 거룩해집니까?금식하면 신경질만 늡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우리도 다음 주부터 할 것인데 금식 한 번 해 봐요. 세끼 딱 굶으면 신경질이 납니다. 금식은 이런 것입니다. 이제까지 내 속에 눌려있던 것들이 다 나옵니다. 겉으로 볼 때 얌전해 보이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의지가 강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금식하면 그 절제력이 없어집니다. 얼굴이 귀신 같이 변하고 찡그립니다. 급한 성격은 급한 성격이 더 나오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금식하면서도 계속 미운 것입니다. 악한 뿌리가 있는 사람들, 대대로 집안에 흐르는 악한 쓴뿌리가 있는 사람들은 악함이 막 나와요. 신경질이 막 나옵니다. 금식은 내 안에 있는 아직 변화 받지 못한 엄청나게 많은 죄악들을 표출해내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죄들……그래서 금식은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하면서 해야 됩니다. 말씀이 그것을 깨는 것입니다. 내 악함을 가지고 거친 형상을 다듬고자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금식할 때와 똑같은 효과가 있는 것이 피곤할 때입니다. 제 처가 그럽니다. 피곤할 때 제가 설교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피곤할 때는 이제까지 절제하던 부분들, 의지로 눌렀던 부분들이 표출됩니다. 말도 거칠게 하고 성도들에게 상처주고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피곤함과 금식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나의 연약한 자신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빠져있는 쓴뿌리까지도 치유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식의 올바른 내용입니다.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이 다 사라집니다. 오직 십자가를 붙듭니다. 그것이 올바른 금식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더 깊이 깨닫습니다.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말만 예수님 믿는다고 했지 실제로 나의 옆에 있는 형제자매의 어려운 일에 신경도 쓰지 않았군요. 돕지 않았군요. ”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악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 붙드는 모습이 됩니다. 그것이 참된 금식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멀리 바라보는 무지개가 아닙니다. 환상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제적인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특이함이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 만나서 시간을 두고 변화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금욕주의적인 접근이 아니라 예수님 바라보고 주님을 붙드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관계가 중요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주님과 우리 사이에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으면 더 유난 떨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지속하면 됩니다. 예배 잘 드리고 새벽기도 잘 나오고 말씀대로 순종하십니까? 그러면 그대로 가면 돼요. 그러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만 있으면 파이프를 늘리는 작업을 하십시오. 그런 것 정도는 가능해요. 그리고 또 지속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발작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욕적으로 다른 것을 덧붙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자기 의를 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악한 시도들을 다 물리치고 결국 예수님의 십자를 붙들고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예수님의 영광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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