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의 소리들 (롬 01:8-12)

첨부 1


우리 민족의 신앙 선배인 최 권능 목사님의 일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최 목사님은 언제나 예수천당 하고 전도하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루는 말 타고 오는 일본군 순사를 행하여 “예수천당” 하였습니다. 이 소리에 놀란 말이 뛰었고 일본군 순사는 말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화가 난 일본 순사는 최 목사님을 지서로 끌고 갔습니다. 죄목을 만들어 감옥에 넣어야겠다 싶은 순사는 곤봉으로 최 목사님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곤봉으로 찌를 때 마다 예수천당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일본 순사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건드릴 때마다 “예수 천당” 합니까? 하니까 최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내 안에 예수하고 천당이 꽉 차서 건드리기만 하면 나오니까 듣기 싫거든 건드리지 말아라”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사도바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사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가슴속에는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그의 가슴을 열면 로마를 향한 복음의 열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감옥에 있든 밖에 있든 그의 관심은 복음전파였고 살아도 죽어도 오직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을 선택하는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 이러하셨던 하나님이 다윗을 향하여도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가슴을 열면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소원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무장되어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 앞에 언제나 다윗은 그의 마음은 열려 있었고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의 가슴을 열면 언제든지 나를 포기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입고 사시는 여러분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너에게 있는 것 좀 나에게 내어 놓아 보아라’ 하시면 무엇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보이는 것을 말 할 것입니다. 집, 자동차, 자식 등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는 말하나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의 가슴속에 있는 것을 내어 놓아 보아라 하십니다. 우리 가슴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 한 것들로 가득 채 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첫째:로마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감사
8절에 첫째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온 세상에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전파된 것이라 합니다.
교회는 로마교회이든 데살로니가교회이든 지금의 우리 교회든지 좋은 복음의 소문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영향력입니다. 먼저 교회와 성도는 핍박은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아니 됩니다. 과거 우리 교회들은 핍박은 받았어도 비난은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쫓겨났지요. 그리고 맞았지요...세상의 사람들이 교회를 핍박은 하였지만 성도하면 인정은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리대금업자가 하인을 시켜 아무개에게는 “이 돈 갖다 주고 차용증 받아와라” 그러면서 건너 마을 김씨에게는 그냥와도 된다하면서 “그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안타까움은 핍박은 없는데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 하면 좋게들 봐주질 않습니다. 그냥 믿는 것들이 하며 비아냥거립니다.

며칠 전 서울에 갔더니 한 교회가 건축하기 위해 성전대지를 구입했는데 주민들이 반대해 건축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민들이 현수막을 걸어 넣고 결사반대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을 핍박으로 봐야 하는지 비난으로 봐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핍박은 예수그리스도도 바울도 받았지만 비난은 받지 않았습니다.
핍박은 없는데 비난은 있다하면 원인은 바로 복음이 변질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회들이 성도들이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기득권을 싸움에 지쳐있고 사랑이나 용서는 온데간데없이 복음이 빠진 생활을 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믿음의 소문을 나야 합니다. 바울은 감사의 이유를 너의 믿음의 소문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했습니다.믿음의 소문입니다. 교회크기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너희의 믿음입니다. 로마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렇다고 사도가 세운교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가슴에 품은 소수의 성도들이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크기를 자랑합니다. 우리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프로그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철저히 믿음을 묻습니다.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도 이런 비슷한 표현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8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베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3주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20일정도입니다. 20일정도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눈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살전 1:6절에 또 너희로 받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합니다. 그 많은 환난가운데서 가장 모범된 믿음들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로마교회에도 일어 난 것입니다. 가장 못난 사람들이 환란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이 대 로마에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떤 교회는 이름 만 들어도 알만 한 교회인데 시종 좋지 않은 소식만 들려옵니다.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소문이 나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5절에 우리는 구원 얻은 자에게나 망하는 자에게나 그리스도의 향기라 합니다. 14절에는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합니다.

이제 남의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교회 이야기 합시다.

우리교회도 좋은 소문이 나야합니다. 전도해서 예수를 믿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겨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삼대비젼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빛들로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비젼 두 번째는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입니다. 이는 바로 복음의 역사가 실제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단순히 큰 교회가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여야 교회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 할것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그럴듯하게 잘 지내고 헌신도 하고 교회도 키워나갔는데 마지막 때 주님이 모른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많은 교회여야 합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많은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이제 9절을 읽어 봅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를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했습니다.
신앙의 매력은 받으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직 내 복음이 되지 않아서 그냥 신앙생활하지 정말 복음 안으로 들어가면 주님을 이웃을 섬겨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섬겼습니까? 내가 그의 아들 복음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이라 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보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생각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습관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욕심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복음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율법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도 문제이나 사람에게 매인 신앙도 아닙니다.

신앙이 가지에 붙어있는 가지어서는 아니 됩니다. 누가 날 도와주어서 누가 내영을 고쳐 주었기에 사람에게 매이는 것은 아니 됩니다. 복음 안에서 중요합니다. 오늘 내 신앙의 기본은 사람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누가 날 정도했어도 그 사람에게 매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체로 여자들은 갈대라 합니다. 흔들흔들 거려서 쉽게 흔들거리는 마음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요인 하여 이런 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 흔들거리는 갈대 끝에 앉아 있는 고추잠자리와 같습니다. 여자들이 흔들리면 더 흔들리고 정신을 못 차립니다. 성도가 사람에게 매여 춤을 추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줄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은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나의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의 진실을 다하여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바울의 믿음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바울의 믿음은 보여 지는 것과 마음이 하나였습니다. 부끄럼 없이 섬기는 하나님 거리낌 없이 섬기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보여 지는 것과 다른 신앙이 있다면 많은 갈등이 생겨나 공동체를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려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입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아마도 한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 할 때 믿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의 고백은 없을 것이라 여겨 봅니다. 저는 기도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로 저는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의무적으로나 자발적으로 저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기도로 저는 서 있는 것입니다. 사역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해 주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울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늘 기도해 준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 뒤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레도 어머니 스잔나의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사무엘도 어머니 한나의 기도의 열매였고 디모데도 어머니 유니게의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모세도 요게벳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목말라 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들 둔 자녀는 행복합니다. 사역자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는 행복합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끊임없이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목회자를 둔 성도는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을테인데...불신의 가정에서 나 혼자 믿으니 나는 기도에는 외로운 사람인데 하는 염려가 있으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도바울 정도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안에서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두고 기도하시며 하늘 보좌 우편에서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기도하다가도 깜박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성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감사해요 그때, 기도 부탁드렸는데 목사님이 기도해 주셔서 문제가 잘 해결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릅니다. 그렇게 많이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닙니다. 이사야 49:15절에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먹이를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4 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 시니라 ’, 히 7:25절에 ‘예수는 항상 살아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나는 주님의 기도를 입고 사는 사람임을 확신하고 이 믿음에서 무너지지 마십시오, 망가지지 마십시오. 때론 피곤하며 지칠 수도 있습니다. 때론 약해 질 때도 있습니다. 때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듯 외로울 때도 있기도 하고 눈물의 골짜기를 더듬을 때도 있습니다. 남편도 나를 몰라주고 나를 늘 혼자인 듯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모든 사람이 나를 외면한다 해도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보고 계실 뿐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까? 그러나 잠깐만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설사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나 같은 사람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없다고 탄식하면 안 됩니다. 이제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곳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기도의 행복을 알면 기도만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려 합니다. 기도를 늘 받는 사람, 늘 기도해 주는 사람 중에 누가 행복할까요?

한 여학생이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너무도 젊은 나이에 기도의 삶을 살았음에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안타까워할 때 그의 소지품에서 4백여명의 선교사 이름과 주소가 적힌 기도 수첩이 나온 것입니다. 그녀는 선교사로 가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젊은 나이에 갔지만 그는 매일 매일 얼굴도 모르는 선교사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 한 것입니다. 그녀의 장례식에 이상한 빛과 성령님의 은행하심을 느꼈고 장례식에 참예한 사람들이 고백 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없이 외로우십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함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는 로마서를 보면서 그렇게 로마에 가기를 원하는 바울을 봅니다.
바울은 결코 오늘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가고자 이루고자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입은 복음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냥 만족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뛰어 넘어 사명 때문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마음을 보십시오.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가기를 원하십니까? 여행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복음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말입니다. 그 가슴속에 사명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안에 복음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마음에서 오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계산이나 생각에서 오는 소리가 아닌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사는 아름다움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에서 들여는 소리에 반응하며 사는 것을 행복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