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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죽은 자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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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생적으로 눈물을 먹고 태어났다. 눈물 많은 어머니에게서 눈물을 받아먹고 자랐고 선생님의 눈물까지도 나의 눈물이 되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다. 신학교에 다니면서는 민족을 생각하며 울었고 목회를 시작하고서는 주님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성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흘렀고 믿지 않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눈물이 가슴에 흘렀고 빗물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땅을 적셨다. 내 사명이 있는데 세상을 떠나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많았다.
내 아내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인한 여인이다. 그 강한 심성 때문에 나는 평생 아내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고 아내의 굳은 심지에 의지하여 목회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일에는 아내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명랑한 아내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의식이 혼미했고 몸은 방향을 잃은 것처럼 흔들거렸다. 나보다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나도 밤이면 병상에 누워 혼자 식구들을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사랑해주지도 못했고 그저 목사라는 명분으로 내 뜻대로 살아준 아내를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고마운 여종,별세의 4수(4修)를 초조와 불안으로 겪어야 했던 아내를 생각하니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눈물뿐이었다.

나는 네번이나 쓰러져 병상에 누웠으니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늘 지친 몸으로 끌려 살았고 이번에도 병상에 눕기까지 어느 하루 편안함이 없었다. 목회 사역도 지친 몸을 일으키고,눕고의 반복이었으며 집회도 말씀 전하는 시간만 서 있고 그 외 시간은 누워 휴식해야만 했다. 이게 무슨 아내의 남편이며 아들의 아버지이겠는가.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울고 울었다. 그래도 목회는 어느 정도 성실하게 한 것이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약한 몸으로 다른 일은 다 포기하고 교회만 위해 살게 한 것이 은혜였다. 그 감사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모에게 불효한 죄인,아내에게 잘못된 남편,교인들에게 사랑없는 목자,주님 앞에 불충한 종,후배들에게 좋은 본이 되지 못한 선배…. 눈을 감으니 60여년의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기로 했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기까지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께 시종일관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주님! 제가 아무리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더라도 교인들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게 해주세요. 평소에 눈물 많은 종이 울면 약해 보입니다. 오직 평안한 마음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거두어주셨고 담담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셨다. 입원 기간 내내 8시간 이상 평안히 잠을 잤다. 뿐만 아니라 이번 4수에서는 눈물이 그쳤다.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이기로 생각하자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도리어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고 죽음 앞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렸다. 이미 별세한 사람이 죽음을 앞에 놓고 울 까닭이 없다. 죽은 자는 울지 않는다. 별세의 4수는 나로 하여금 울지 않는 죽음을 배우게 하였다. 나는 내 몸에 죽음의 사자로 찾아온 암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암이 나를 죽음으로 데려갈 적군으로 여겨지지 않고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암에게 속삭여주었다.

“네가 내 몸을 찾아주어 고맙다. 나는 별세를 배우는 하나님의 종이요,별세의 수련생이다. 내게 별세를 가르쳐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렴.”

암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내 마음은 더욱 자유롭고 평화로워졌다.
/이중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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