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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끄러움 없는 리더십 (살전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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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
2,3년 전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는 ‘다보스’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이 작은 도시가 갑자기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세계적인 지도자와 리더십들이 1년에 한 차례 이곳에 모여 리더십에 대한 포럼을 열기 때문입니다. 다보스 포럼은 지도력에 대한 이 시대의 요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점에 진열된 베스트 코너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리더십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러더십에 대한 관심과 강조는 리더십의 부재를 반증합니다. 이 시대 가장 큰 위기는 지도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에 대한 목마름, 참된 리더에 대한 기다림, 리더십에 대한 부재와 공허함이 이런 세미나, 자료,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따라갈 참된 지도자가 있으면 굳이 세미나를 할 필요 없이 그 지도자를 따르면 됩니다.
작년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김정일씨를 지켜 보며 그의 리더십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강한 리더십이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그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큰 복입니다. 좋은 지도자와 함께 일할 때는 섬기면서도 짜증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기쁨이 됩니다. 좋은 지도자와 함께 일하는 보상은 좋은 지도자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월급이 많고 일이 편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을 지라도 내가 섬기고 있는 지도자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고통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따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지도자의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지도자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모세를 만나지 못한 여호수아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를 만나지 못한 엘리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또한 예수님 없이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책이나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지도자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좋은 지도자를 통해 계속 배출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좋은 선생님 뿐만 아니라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미끼되어 사람 살리는 리더십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실 때는 먼저 그의 인격을 준비시키십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기간 동안 훈련시키는 것은 능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앙과 인격을 빚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먼저 준비시킨다음 소명도 주시고 능력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부의 삶을 살려면 사용하는 미끼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미끼는 나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복음과 교회와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나를 통해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고 싶다’는 도전을 줘야 합니다. 우리가 미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실망하는 것은 교리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와 사역자에 대한 실망과 상처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를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영적지도자들이 세간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의 핵심 전략은 지도자를 흔드는 것입니다. 목자를 치면 양때들이 흩어지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지도자를 흔듭니다. 이를 통해 성도들을 노략하고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것이 사단의 핵심전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영적 지도자를 위해 특별히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이 데살로니가교회를 공격하는 전략은 바울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은 집중적으로 바울의 리더십을 공격합니다. 바울에 대해 악의에 찬 중상모략을 퍼붓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서를 쓴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이런 악의에 찬 중상모략으로 흔들리고 있는 데살로니가교인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장은 바울의 변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흔들리면 교회가 훼방받기에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어떤 자세로 사역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2장입니다. 먼저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바울은 자기를 위한 변명을 하면서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자신의 이익을 탐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심 없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리더십
복음을 위한 수고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사역이 사람보기에는 실패하고 중단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에 나타난 열매를 통해 바울의 그 모든 증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좋은 소문이 있고 담대하게 온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복음을 전하는 그들을 볼 때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1884년에 제네럴 셔먼호를 타고 왔다가 대동강에서 그 배와 함께 불타 숨진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 몇 권 전한 것 빼고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토마스 선교사를 죽였던 그 사람이 회심을 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신학교를 막 졸업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헌신한 첫 순간에 제대로 사역도 하지 못하고 숨졌지만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였던 스데반의 죽음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바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에 있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복음을 위한 수고는 순교까지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눈에 보이도록 갑자기 나타나 성장하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나라운동이 시작할 때 미미하고 중간에 끝날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헛된 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미미한 운동이 전 세계를 뒤집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처럼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고 부지런히 복음을 위해 뿌리시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에 대한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은 줄 알기에 바울은 비록 빌립보에서도 고난과 능욕을 당하고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갈 때 환영행사가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싸움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원하는 것이 돈, 인기, 명예였다면 데살로니가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을 주심으로 용기를 얻고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쁨으로 함께 하신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많은 철학이 유행했던 당시 헬라 전역을 다니며 강의를 하는 순회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지식을 팔고 있었기에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간사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자기 이름을 높였습니다. 아첨의 말로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인기와 돈과 성적인 유혹까지 서슴치 않았던 사람들, 그런 거짓 교사들에 대한 상처가 많았던 도시가 데살로니가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비난을 바울에게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순회 설교가들은 굉장히 지적이고 말을 잘하고 세련되고 고상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아첨의 말을 하고 있고 탐심의 탈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여서 돈과 인기를 얻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영혼의 사냥꾼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교사들의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해서 결국 돈을 뜯어내고 인기와 명예를 추구합니다. 실상은 탐심의 탈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만이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행하는 사람만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유익한 것을 줄 수 있으며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인사청문회’를 다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깨끗히 씻겨지고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잘 보이고 아첨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확신이 없으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행하게 됩니다. 이 때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하게 됩니다. 사역을 할 때 많은 사람이 섭섭증에 걸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는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사람의 칭찬에 매이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람을 보면 실족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칭찬과 인정은 정확하지 않고 변덕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진정한 평가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어미의 마음’으로 섬기는 리더십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나 당당했기에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사역과 후원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그는 섬김을 요구하고 존경을 요구하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훼방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이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서 권위적인 리더십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아주 유순한 엄마와 같이 섬겼습니다.

자녀에게 있어서 어떤 경우는 어머니처럼 무능력한 존재가 없습니다. 자녀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남성적이고 강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대할 때는 ‘젖먹이를 가진 어머니와 같이 유순하게 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유순한 어머니같은 이미지의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유모처럼 섬기며 목숨까지도 주려 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해 목숨까지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복음과 함께 자기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값 없이 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 사랑을 알기에 나도 달려가서 그렇게 실천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부어 주신 마음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음은 사랑과 함께 전달됩니다. 선교를 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전도, 선교를 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은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그렇기에 소수의 미전도 종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진정한 목자, 사역자입니다. 내 생명을 불사르게 내어 주고 내게 있는 것으로 다 구제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일이 많고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많고 바쁘면 사람보다는 일이 보이기에 영혼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한 영혼 한 영혼을 목자의 심정으로 돌보기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기꺼이 수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사랑은 아낌 없이 수고하게 합니다. 바울은 낮에는 복음을 전하고 밤에는 텐트를 만들며 사역했습니다.이렇게 밤과 낮으로 수고하며 복음을 전해도 원망이나 불평이 없이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이처럼 어머니같은 유순한 사랑으로 수고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해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비의 마음’으로 온전케 세우는 리더십
10-12절은 아비와 같은 이미지를 보여 줍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수고를 하고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목자는 어머니 역할 뿐 아니라 아비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부르심에 합당케 하며 하나나님나라 영광에 참여케 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어머니같은 리더십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심방을 하고 약한자와 환난당한 자를 따뜻함으로 돕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라면 아비의 역할은 모범을 보이며 가르침과 교훈을 통해 성숙하고 온전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계에 맞게 훈련시키십니다. 처음 예수를 믿어 어린 아이같을 때는 젖으로 먹이고 유순한 유모와 같이 기르시다가 장성한 자가 되면 딱딱한 것을 먹이고 어떤 경우는 아버지와 같은 엄격함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여정을 보십시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는 하나님께서 어머니처럼 돌봐주시는 것 같더니 어느날은 엄한 아버지로서 다루고 계십니다. 이제는 성숙하고 온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로서의 심정을 가지고 단순히 가르치고 교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때로는 어머니 같고때로는 아버지 같은 리더십으로 우리를 이끌어 성숙케 하십니다. 우리는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사역자가 되셔서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할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변하고 이 나라가 변하고 역사가 변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1인 1봉사 1사역자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역자로 함께 서서 다함께 헌신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케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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