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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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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는 젊은 시절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통해 ‘신의 죽음’을 주장했고, 뒤늦게 하나님의 여성성을 느끼고 여성신학을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에 죽기 얼마 전부터는 하나님의 신비에 깊이 몰입되었습니다.
그녀는 ‘깨지기 쉬운 창(Window of Vulnerability)’이란 저서에서 독일 신화에 나오는 영웅 지그프리드(Siegfried)를 소개했습니다. 지그프리드가 용을 죽여 그 피로 목욕하자 그의 피부는 강철처럼 되어 어떤 칼도 뚫지 못하는 무적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현대인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단단한 피부를 원하며 자기를 위한 견고한 성을 쌓지만, 문제는 그 견고한 성 안에서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무섭다고 창문을 다 벽돌로 막아버린다면 빛도 없게 되고, 공기도 탁해지고, 생명체는 서서히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지기 쉬운 창도 필요합니다. 단단한 자기껍질에 둘러싸인 마음보다 차라리 상처를 잘 받는 마음이 낫습니다. 현대인들은 살기 위해 강한 껍질을 선호하지만 진짜 사는 길은 깨지기 쉬운 창을 통해 창문 너머를 보는 길입니다. 깨지기 쉬운 창이라도 있어야 이웃이 보이고 하늘이 보입니다.

죌레는 말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음을 긍정하는 것입니다(To be alive is to be vulnerable). 신실하다는 것은 안전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To be faithful is to resist the temptation of security).” 인생에는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담을 치고 요새를 쌓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닙니다. 나만의 안전을 꾀하려는 ‘이기적인 나’에 대한 저항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나’에 안주하는 삶을 거부하고 ‘내일의 나’를 향해 상처를 각오하는 용기가 희망의 요체입니다. 상처는 지양(止揚)할 것이기도 하지만 지향(指向)할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강철갑옷을 포기하시고 상처의 창을 통해 하늘 문을 여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강철갑옷을 벗고 자신을 무장해제 시킬 때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인간의 무능함은 하나님의 전능함이 임하는 토양입니다. 무능함의 자인은 무책임의 자인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는 무능함이 유능함이 되고, 상처가 상급이 됩니다. ‘의식 없는 후퇴와 침묵’은 최악의 선택이지만 ‘의식적인 후퇴와 침묵’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사람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꿈꿀 때 하나님도 사람을 꿈꾸고, 사람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상처의 창은 꿈과 꿈이 만나는 통로입니다. 상처의 창이 없으면 낯선 경험은 늘고, 낯선 경험으로 세운 논리는 삶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상처의 창을 통해야 삶이 새롭게 보입니다. 예수님의 별명 중 하나가 ‘창녀의 친구’였습니다. 마음의 갑옷을 벗으면 창녀도 친구로 보입니다. 상처의 창은 나도 살게 하고 세상도 살게 합니다. 상처의 열쇠를 통해 정보의 보고가 열립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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