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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 기도, 감사 (살전 05: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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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극단적인,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재림만을 기다리며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에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가정을 파괴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 종말을 믿지 않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도덕적, 윤리적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극단적인 신앙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경고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데살로니가전후서입니다. 5장 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재림과 종말을 의식하지 않고 적당히 살면 심판은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오는 것처럼 심판과 재림이 있음을 말합니다. 7, 8절을 보십시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예수님이 2천년에 오신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패가 망신한 사람이 많습니다. 극단적인 이단들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오해하게 했던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이들처럼 세상 일을 팽개쳐서는 안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서에서는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좋은 관계를 지속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은 권위에 대한 거부입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권위를 다 부숴 버립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을 사랑안에서 귀히 여기며 서로 화목하십시오. 영적 지도자와 교회를 거부하면 극도의 혼란과 방향 상실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는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순장님들,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두번째 주시는 실제적인 충고는 말세일 수록 ‘약한 자를 돌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십시오. 규모 없는 자들, 훈련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은 안위하고 믿음이 적은 자들은 격려해 주십시오. 힘이 없는 사람들은 붙들어 주십시오.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정결한 말, 몸, 삶속에 발견되는 예수님
온누리교회는 지금까지 사역 일변도로 왔습니다. 이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이 생김을 알게 됐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가 ‘1인 1봉사 1사역’을 얘기 합니다. 현재까지 약 1천 백명 정도가 러빙핸드로 봉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축복된 일입니다.

우리는 남산에, 서울역에, 길거리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전도지를 나눠 주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전도지를 읽지 않습니다. 도리어 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이 설득력이 없습니다.
반면 크리스천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신용이 있고 성실하고 준비를 잘하고 매사에 철저하면 불신자들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전도하려면 청소 잘하십시오. 몸을 깨끗이 하십시오. 말도 깨끗이 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봉사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질서를 잘 지키고 주차장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겸손과 진실함으로 최선을 다하면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계심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목사님, 장로님들이 모두 걸레를 들고 다니기를 바랍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우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모습들 속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그늘진 곳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교회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분들을 섬기고 돌봐야 합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구원공동체란 사랑의 공동체, 선을 실천하는 공동체, 섬기고 봉사하며 희생하는 공동체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아멘’, ‘할렐루야’소리, 기도와 찬송소리는 높은 반면 삶은 너무나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좋은 시민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관계된 모든 일이 깨끗하고 투명하고 정직함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때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쁨, 기도, 감사로 세우는 구원공동체
세상을 변화 시키는 크리스천과 교회가 되도록 데살로니가서에서는 구체적인 일곱가지 충고를 합니다. 먼저는 참된 구원받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세 가지를 말합니다. 또한 참된 구원 공동체가 되기 위해 경계해야 될 것을 네가지 이야기 합니다. 먼저 해야 할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항상’ 이라는 단어입니다. 항상이란 뜻은 어떤 상황과 환경,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일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초월함이 없이 진정한 기독교적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상황과 환경, 내 감정입니다. 병들고 실패하고 관계가 깨어지고 상처를 주고 받는 삶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말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이런 상황들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세상 평화가 아닌 주님의 평화, 기쁨, 승리를 주십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정과 상관없이 순종하십시오.
‘기뻐하라’는 말은 명령어로 되어 있습니다. ‘기뻐하라’라는 말씀은 믿음을 전제합니다. 머리가 아닌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말을 수용할 때 슬픔, 실패, 좌절도 점령될 것입니다. 기쁨이 나를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아름다운 공동체는 탄생될 것입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구원받은 공동체가 해야할 두 번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여기서도 먼저 기억할 것은 ‘쉬지 말고’라는 말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기분, 상황, 환경을 따라 기도합니다. 식사 할 때도 의무적으로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적인 공동체를 만들지 못합니다.

진짜 기독교적인 공동체를 만드려는 사람은 환경, 이해관계, 자기 감정을 초월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적인 공동체를 출현 실킬 수 있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처럼 기도가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파이프라인과 같습니다. 파이프라인이 끊어지면 물, 기름을 공급 받을 수 없습니다. 전원이 끊어지면 전기를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 상황, 환경에 따라 기도하는 것을 초월하여 항상 기도할 때 기독교적 공동체는 가능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몰고 옵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고 닫힌 문이 열리며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세번째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사건에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사건이거나 나쁜 사건이거나 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패, 질병, 죽음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직, 배신을 당하는 것, 손해를 보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부터 하십시오.

기뻐하면 승리가 올 것이고 슬픔이 떠날 것입니다. 기도하면 불가능이 사라지고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 은혜의 표현입니다.

감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감사하라’, ‘송축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예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예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예배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기독교적 구원 공동체가 출현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열쇠가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 자신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무조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기독교적인 공동체는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경계할 일 네가지
구원받은 공동체가 조심하고 근신하고 경계해야 될 일 네가지입니다. 19-22절을 보십시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첫째로 성령을 소멸치 않아야 합니다.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소방수 역할 하지 마십시오. 찬물을 끼얹어 성령의 불을 끄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흥하는 곳마다 가서 ‘조심하라’, ‘앉으라’, ‘기도하지 마라’며 열심히 물을 끼얹는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경험을 우선할 때 성령의 역사가 소멸됩니다. 예수 믿고 기도하면서도 자주 내 생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생각으로 끝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우선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소멸하게 되는 다른 경우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면 성령이 사라집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역사에 민감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둘째로 예언을 멸시치 않아야 합니다. 예언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상한 예언을 골라 가며 하는 극단적인 예언파를 조심하십시오. 반대로 예언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조심하십시오.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구절에서 배워야 되는 것은 영적 분별력입니다. 왜냐하면 가짜 예언자들, 거짓 예언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가짜 예언자, 거짓 예언자들의 특징은 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인격을 먼저 보십시오. 쪽집게처럼 잘 맞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임을 명심하십시오. 알아 맞춘다는 것 으로 인해 현혹 당하지 마십시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 중에 인격이 나쁜 사람은 한 분도 없습니다. 잘 맞고 못 맞추는 것에 요점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합니다. 선택과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선택은 포기를 의미합니다. 포기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선택과 포기와 순종은 같은 의미입니다.

네 번째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뜻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릇도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조금 더 현대적인 표현을 쓰면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 속에서 살것이냐를 선택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는 문화의 문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 속에는 친구를 잘 사귀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자기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익이 생겨도 나쁜 친구는 끊으십시오. 평생 나를 괴롭히는 쇠사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르든지 교회 데려오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십시오.
학교, 배우자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가슴 찡하다’는 이유로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일생을 결정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동네도 잘 선택해야 합니다. 내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동네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 혼, 육’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
마지막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균형입니다. 신앙생활에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이단이라는 말은 처음은 같은데 끝이 다른 것입니다. 한쪽 면을 너무 강조하면 균형이 깨집니다. 건강이란 균형입니다. 균형이 깨지면 건강을 잃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육과 혼과 영의 균형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누리교회가 승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누리교회가 기적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온누리교회가 은혜 공동체, 감사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누리교회를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적 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이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사람들, 미성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에 당연히 미성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해야 됩니다. 최선을 다해 예수님이 원하는 구원 공동체, 기적 공동체, 축복 공동체, 은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며 은혜를 끼칠 때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교회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세상에서 모범된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 우리 교회부터 더러운 곳이 없도록 만듭시다. 약한 사람들을 많이 도우십시다. 저는 우리 장애우들을 돕는 봉사자가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이런 모습들이 진짜 예수 믿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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