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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에게 닥친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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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각서에 서명을 하십시오. 만약 수술이 실패해 부인이 생명을 잃는다 해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입니다.'
'예? 그렇게 희망이 없는 건가요?'
'너무 늦게 병원에 데려 오셨어요.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진 것을 다행으로 아세요.'

나는 목회 일이 바쁘다고 아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버려 둔 자신을 한탄했다. 지난해 6월부터 아내는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기도로 이겨 나가봅시다. 정 힘들어지면 가까운 의원에라도 가보든지.'

조그만 병원에선 정밀 종합 의료기기가 없어서인지 병명을 알 수 없었고 급기야 10월 가을바람이 돌자 아내는 일어서질 못했다. 국립의료원으로 옮겨 진찰을 받은 결과 [척추결핵]이란 진단이 나왔다. 그것도 결핵균이 모든 척추에 퍼진 상태였고 신경은 죽어 있다고 했다.

'하나님, 제가 무지한 겁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나님이 돌봐주셔서 아내의 수술은 5시간만에 끝났다. 척추뼈를 몇 개 잘라내고 또 몇 개는 뼈를 갈라 속을 긁어내는 대수술이었다. 아내의 수술회복을 기다리며 병원에서 뜬눈으로 간호하느라고 아이들은 집에 내팽개쳐 둔 상태였다.

'대영이 아버지, 집에서 전화왔어요.'

간호사의 부르는 소리에 깜빡 잠이 들었던 나는 깨어 전화를 받았다.

'대영이 아버지세요. 지금 대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만. 한남동 순천향 병원에 있으니 가보세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있을까. 엎친 데 덮친다고 아내가 대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하다니. 나는 정신없이 병원을 뛰쳐나와 택시를 세워 탔다.

'하나님, 이 무슨 시련입니까. 제발 대영이를 살려주십시오.'

울며 기도하는 동안에도 나는 원망은 하지 않았다. 마치 욥과 같이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시련을 거둬주실 것을 믿었다. 타이탄에서 치여 20여m 날아가 떨어졌다는 대영이는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는 아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갑사합니다.'

이러한 시련을 참고 견딘 탓일까. 대영이는 4주만에 완쾌돼 퇴원하게 됐고 신경이 죽어 앉거나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던 아내의 하체신경이 꿈틀대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맡고 있는 교회는 약수동 달동네에 위치해서 교인이 겨우 1백여명에 50여평쯤 되는 작은 곳이었지만 이곳이 재개발지역으로 확정되면서 정부에서 2천5백명쯤 수용할 수 있는 부지 8백여평을 불하해줬고 많은 보상금을 지급, 특히 재개발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업체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교회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며 건축기간동안 예배볼 처소까지 마련해 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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