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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 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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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믿을 수 없는 것이 잘 될 때에는 그것을 따라와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고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짜와 비슷한 가짜를 만들어 내는 행위입니다. 몇 년전에 어떤 가수가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들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마다 초교파적인 교회가 되어서 자신의 교단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고 모조리 잡탕이 되어 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진리를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예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괴악한 일입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복음도 가짜가 득세하고 가짜들이 더 요란하게 떠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명백하게 드러내 놓고 이단도 아닙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정말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본서의 기록 목적 중의 하나가 여기에 기록된 본문입니다. 당시의 창궐하던 유대주의와 영지주의의 도전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흔들리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후에 유대주의의 강렬한 도전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유대주의의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여러가지 이단들이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는 비교적 여러 말로 그 교회에 대하여 칭찬하는 것이 그의 편지의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본서에서는 바울은 그러한 칭찬은 커녕 인내할 겨를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편지의 서두가 대단히 긴장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은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였고,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바울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들이 분명히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떠나서 다른 복음을 좇는 그들을 보고 너무나 한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본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 다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그러면 다른 '다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다른 복음'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면 그 나머지는 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분간하기 곤란한 위조지폐를 분별해 낼 때에 사용하는 방법이 이 방법입니다. 위조지폐를 분별할 때에 수많은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이 훈련에 사용되는 것은 진짜 화폐입니다. 위조화폐를 가지고 교육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화폐를 알면 거기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가 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역시 진짜 복음의 진수를 알아야 가짜가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이 무엇이냐고 할 때에 우리는 먼저 진짜 복음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오늘의 본문 5절에서 이같은 사실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을 봅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그런데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복음의 진수를 말씀합니다. 2:16에서와 같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복음의 진수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지극히 간단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이 복음의 진수를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하게 만든 것을 말합니다. '다른 복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신 일과 가르치심을 거부하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탈을 쓴 것입니다. 복음의 탈을 쓰고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와 같이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교와 헬라의 종교쟁이들이 볼 때에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의 진리는 너무나도 단순하게 보였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들이 요구했던 것들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도덕적이고도 종교적인 의무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할례를 받을 필요도, 선행할 필요도, 금식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이러한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그들은 생각할 때에 이러한 구원의 진리가 너무나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그들은 기독교를 자기의 이해의 범주에 맞추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변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이단이 교회를 지배했던 때도 있었고, 지금도 이러한 무리들은 교회의 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이단들이 이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을 어지럽혔으며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접근하고 있습니까?

(1) 유대주의(Judaism)는 이러한 바울의 기독교에 대하여 가장 큰 반대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율법에 비하여 너무나도 쉬운 구원의 방법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유대교에 열심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유대교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가 유대교의 모든 규정들을 반대하고 이를 반박하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바울 자신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왜곡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지도 않으신 혈통주의를 주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만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 배타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배타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민족들이 이 언약에 참여하기만 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를 위하여 오셨고, 막힌 담을 허셨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강력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주의에는 절기와 여러 가지 예식을 지켜야 했고, 종교적인 의무들을 다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가 나타나서 그를 메시야라고 하면서 그를 믿으면 이제는 지금까지 행하던 모든 종교적인 의무를 하지 않아도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 예수를 '나사렛 이단 괴수'로 생각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들이 죽인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에게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도전은 바로 예수만 믿지 말고 예수 믿는 것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할례도 받아야 하고, 절기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람들도 역시 너무나 간단한 복음보다는 어떤 신비스러운 종교적인 요구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3:1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도전 세력이 있었다면 바로 이 유대주의입니다. 그들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와서 기독교를 어지럽힌 것입니다. 오늘날도 종교적인 의무를 다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함으로 십자가의 도를 헛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단입니다.

(2) 자력구원설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 본서에서도 깊이 다루는 문제입니다.
종교의 행위적인 면을 강조할 때에 이 자력구원설은 대단히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자력구원설이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은 바로 이 자력구원설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자력구원설은 다른 말로 말하면 수도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수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행도 해야 하고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어떤 것을 이루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통하여서 보면 이방종교나 다를바 없는 수도종교의 이론이 기독교 안에 슬며시 파고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으며, 그 선을 쌓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신앙으로 바뀌어 기독교의 진리까지도 여기에 맞추어 버리려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積善思想이 나오게 되어 선행과 수도가 구원의 조건인양 말하기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다른 복음'의 전형인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그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구원을 얻은 후에 선을 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이것을 공적사상으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복음에 뭘 더하는 행위입니다. 복음에 뭘 더하면 이것이 다른 복음이고 이단입니다.

(3) 사제주의도 다른 복음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유대교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사죄가 선포되고 제사장들에 의해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사장들의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곧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때로는 하나님과 동등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만인이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서 설 수 있다고 하는 바울의 가르침을 그들은 거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세에도 이러한 형태의 종교가 기독교 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교회를 중재기관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구원을 교회가 나누어주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제들의 음모가 수천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데 오늘날의 가톨릭은 사제주의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의 중보자로서 온전하게 서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중보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제 더 이상 고해성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사제가 필요 없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4:16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목사가 구원을 중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목사는 주님과 여러분을 중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도 여러분과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사도 역시 하나님의 종일 따름입니다. 목사를 통해서나 신부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거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단의 전형인 것입니다.

(4) 보편구원론은 최근에 들고 나오는 새로운 것입니다.
보편구원론이란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수의 죽으심은 온 인류를 위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것들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이 다원주의란 절대진리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바로 다원주의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절대적인 교과서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멋과 개성과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기독교에도 들어와서 결국은 기독교의 주장하는 복음의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준다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이외에도 진리가 있고,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면서 뉴에이지의 선봉에 서서 복음을 재해석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뉴에이지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신이기 때문에 인간도 잘만 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부 현대신학자들은 우리와 같은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면서도 이것에 대한 역사성을 부인하고 의미성만을 강조하는가 하면 복음과는 거리가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입니다.

이러한 다른 복음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복음에서 속히 떠나 다른 복음에게로 갔다고 합니다. 6절에서 바울은
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
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고 말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떠났다'는 말은 '군대에서 이탈한 탈영자' 혹은 '정치 사상에서 입장을 바꾼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과거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으나 이제 그 그리스도를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에서 다른 복음으로 돌아설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속히 떠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진리에는 귀를 막고 눈을 막습니다. 그러나 가짜에는 혈안이 되어서 거기를 그렇게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는 독버섯이 더욱 아름다운 것과 같습니다. 독버섯은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러나 먹는 버섯은 사람들의 눈에 띄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음도 그러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본성이 부패했기 때문에 진리를 따르기보다 비진리를 따르는 것이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 끌리는대로 행동하는 것은 다른 복음의 특징입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3:1에서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진리를 따르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단을 연구하면서 보니까 어떤 이단들은 유행가 가사를 약간 바꾸어서 만든 노래를 부르는데도 지성인들이 거기에 넘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와같이 다른 복음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잘 믿던 사람들 가운데도 이러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2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는 사탄의 세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잘 믿지 않는 사람은 어차피 자신의 편이기 때문에 그들은 가만히 놓아 둡니다. 그러나 잘 믿는 사람, 특히 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넘어질 때에는 교회를 파괴하는 힘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넘어짐은 교회를 엄청나게 흔듭니다. 그래서 여기에 목사님들이 넘어집니다. 장로님들, 권사님들, 열심있는 집사님들이 넘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다른 복음은 교회를 요란케 합니다. 본문 7절에서 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다른 복음이 들어오면 교회는 반드시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교회를 와해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의 순수성도 파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요란케 한다'는 말은 '뒤집어 엎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흔들고 혼란케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정말 '다른 복음'은 교회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마귀의 세력들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보면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자들의 행동에는 파괴적인 행동을 수반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들어오지만 이러한 것들은 최후의 목표를 위하여 위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본색이 드러나고 이 본색이 드러나게 될 때에는 교회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의 전형입니다.

2)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본문 7절에서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거짓의 탈을 쓴 거짓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서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때가 차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때가 차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때가 차매' 3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승천하시어서 '때가 차매' 다시 오시게 될 그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어느 사실 하나라도 버리거나 변질시키는 자는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교회는 자기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믿어야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4:12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복음이며 그분만이 복음의 참 본질입니다. 그분의 그 어느 한 부분만을 부인하고서 구속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 거짓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흔히 잘 믿는 사람들이 이단으로 빠지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열심 있게 '잘 믿으려고 했지 바로 믿고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잘 알려고 했지 바로 알고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바로 믿어서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다지고 그 어떠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해도 이를 단호하게 배격할 줄 아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나 예수만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서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3)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것이기에 마음에 걸려도 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8∼9절을 봅시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강조되어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는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도들이나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가 누가 되었든지 그것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복음을 변질시킨 자들이 정죄를 받고 교회에서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처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강림했고 신의 속성을 받았다고 주장한 데오도투스는 유배를 갔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육신을 소유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마니는 산채로 껍질이 벗겨져서 페르시아 성문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칼빈이 말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자신은 생명을 걸고 말한 세베루스는 제네바 의회의 결의로 그의 원대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재판을 해서 유배를 보내거나 사형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계22:에 있는 대로 마지막에 '성 밖에 있을 자'의 명단 중에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거짓말하는 자들은 복음을 변하여 거짓말을 한 자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을 맡은 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바로 내가 전하는 복음이 바른 복음인가? 아니면 '다른 복음'인가하는 점입니다.

다른 복음은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씀을 언제나 명심하고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이 예수님은 과연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그 예수님인가를 정확하게 늘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때로는 기도원에 가거나 다른 교회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도 이상한 '다른 복음'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교회들이 많아서 사실은 걱정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다른 복음'을 추종하는 자들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가서 나는 책임이 없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책임이라고 아무리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엉터리 약을 파는 사람의 약을 먹고서 부작용이 생겨서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때에 가서 양을 파는 사람을 원망해도 망가진 건강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문 입구에서 이것이 판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들어주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변하려는 자들의 준동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4∼5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어 지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마지막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은사는 바로 '영 분별의 은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의 속임수에 맞서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 내 자신이 미혹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미혹되어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그 불 가운데서 이끌어 내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제 복음의 진리 안에서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믿음은 내가 책임을 져야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은 전하지도 말아야 하고 '다른 복음'은 듣지도 말아야 한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에 귀기울이지 말고 주님 안에서 바른 믿음, 견고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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