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의 권징 (고전 05:1-13)

첨부 1


고린도 교회는 분열된 교회였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에 죄행(罪行)이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교회 내외의 사람들이 다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완전성이 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들을 사랑으로 징계해야 하는 것처럼, 지역 교회도 그 지체들을 징계(치리)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징계는 범인을 색출하는 경건한 경찰관이 하는 일은 아닙니다. 교회의 징계는 성도들의 잘못에 마음 아파하며 그들의 잘못을 사랑으로 고쳐 주고자 하는 영적 형제나 자매들에 의해 실행되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세 가지 중요한 고려 사항을 제시합니다.

1.교회의 징계(5:1-13)

“이 죄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1:2)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방관하지도 않으며 죄를 허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교회를 무력하게 하고 복음 사역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이 문제에 관해 바울은 교회가 좇아야 할 세 가지 구체적 교훈을 줍니다.

첫째, 죄를 통한히 여기라(5:1-2)
통한히 여긴다는 말은 죽은 자를 생각하며 애도한다는 말로서, 어떤 사람이 느끼는 가장 깊고도 애절한 슬픔을 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교회 내에 만연된 죄들을 애통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죄들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지극히 ‘관용적’이어서 음행 하는 자들까지도 버젓한 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문제삼고 있는 음행 죄는 일종의 근친상간 죄였습니다. 즉,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의 일원이 된 한 그리스도인이 그의 계모와 재혼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계모에 대해서는 정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9-13), 그 계모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종류의 죄는 구약성경의 율법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레18:6-8/20:11), 이방 민족의 법에서도 죄로 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그 교회에게 수치를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가 명절이지만(8절). 그 명절(유월절)이 장례식이 될 때도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죄를 저지른다면, 그때가 바로 그 가족인 교회가 그 타락한 신자들로 인해 통한히 여기고 그들을 도울 방도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갈6:1-2참조)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린도 교회의 그 음행 죄를 저지른 자는 주님의 일에 관한 죽은 자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자이며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들과 교제할 자격도 상실한 자입니다.

둘째, 죄를 심판하라(5:3-5).
그리스도인들은 판단해서도 안 되고 사역자는 더욱 판단할 수 없기는 하지만(마7:1-5/고전4:5 참조). 서로의 행위에 대해 정직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교회 내의 어떤 잘못을 책망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것을 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 잘못된 일들을 책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범죄한 사람을 성경의 지시하는 바에 따라서 다스릴 의무가 있는 교회의 공식 회의에 대해 언급합니다. 공공연한 범죄는 공개적으로 판단 받고 정죄되어야 합니다.(마18:15-20참조)
(마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마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범죄는 은밀히 처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범죄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며 더욱이 불신자들에게까지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 의논해서 그 범죄자를 추방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가르치는 강경한 어투를 주의해 보면 압니다.
(고전5:2)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5: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바울은 범죄자를 부드럽게 처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 먼저 그 범죄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회개시키도록 힘써야 함은 물론입니다.
한편, 범죄자를 처리하는 일은 단순히 지역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이름의 권세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교인된 자격을 정하는 일은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부주의하거나 경솔하게 처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교회 내의 범죄자로부터 구원을 박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교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또 지역 교회와 교제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권세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교회에서 축출된 성도는 엄밀히 말해 사단의 먹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하여금 범죄자의 몸을 해하는 것을 허용하셔서 죄지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다시 당신에게 돌아서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셋째, 죄를 깨끗이 씻으라(5:6-13)
본문에서 사용된 비유적 표현은 출애굽기의 유월절 전야의 만찬에서 빌려온 것입니다(출12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요1:29/벧전1:18-25).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이후,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병을 먹으면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은 적은 양이라도 급속히 퍼지는 힘이 있습니다. 누룩은 은밀히 펴지면서 반죽된 밀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범죄한 교인은 마치 한 덩어리의 누룩처럼 교회 전체를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죄는 몸 안에 있는 암 세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수술로써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묵은 누룩”, 곧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옛 사람을 깨끗이 씻어 없애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 지녔던 악의와 사악함을 철저히 제거하고(고린도 교회 교인들 간에는 완악한 감정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 대신 진리와 신실함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떡으로서(10:17) 가능한 한 순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불신자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9-13절에서 바울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격리되어서는 안 되지만, 구별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들로 인해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신앙고백을 한 그리스도인이 본문에 언급된 것과 같은 죄를 지었을 때는, 교회가 마땅히 그를 치리 해야 합니다. 개개의 신자들은 그러한 자와 교제해서는 안 되며(9절). 더욱 함께 먹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자와 함께 먹는 것은 개인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함께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11:23-34참조).

교회가 권징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우기 인기 있는 일도 못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의 징계가 정당하게만 시행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셔서 잘못을 범한 신자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또 그를 돌이키실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1절에는 고린도 교회의 이 범죄자가 회개하고 다시 교제를 회복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