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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와 결혼한 신자에 대하여 (고전 0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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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저질렀던 죄의 문제들을 언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편지로 문의해 온 신앙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문의해 온 문제들은 결혼의 문제(7:1,25). 우상에게 받쳐졌던 음식을 먹는 문제(8:1), 성령의 은사 문제(12:1), 죽은 자의 부활 문제(15:1) &47583;, 유대인들을 위한 연보 문제(16:1)등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공부할 때에는 바울의 답변이 한정적인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7장 한 장에서 결혼에 관한 성경 전반적인 논의를 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제시하는 것 이외에 성경의 그 나머지 부분은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반드시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바울이 결혼과 또 여자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6,10,12 절과 25절 말씀은 바울이 영감(靈感)되어 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 역시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르치셨던 것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마19:1-12/5:31-32/막10:1-12/눅16:18). 바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적이 없는 질문들에도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답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영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서신으로 쓰는 답변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며, 각각 다른 세 부류의 신자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문의한 내용 중의 하나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더 신령한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대답하기를, 남자나 여자나 독신의 은사를 받는 것은 좋지만, 독신 상태가 결혼한 것보다 월등히 나은 것은 아니며 더욱 어느 누구에게도 독신 생활이 최상의 생활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케네드 웨스트(Kenneth Wuest) 박사는 바울의 답변을 다음과 같이 변역하였습니다.
“엄격한 독신 생활은 지극히 합당하고 존중할 만하며 도덕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독신 생활은 허용이 되기는 하나 명령은 아닙니다.(6절 참조). 또한 독신은 일종의 은사이며 아무나 이 은사를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7절 참조). 바울의 이 답변은 마태복음 19장 10-12절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과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고자”는 결혼을 삼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2:18)란 하나님의 말씀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독신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이 영적으로 열등하거나(subspiritual) 우월한(superspiritual) 것은 아닙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결혼을 하는 한 가지 목적은 음행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일부다처제나 동성 결혼을 용납치 않으신다는 것을 2절 말씀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세때부터 섭리해 놓으신 결혼의 형태입니다. 결혼한 남녀의 성생활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그 정상적인 성적 사랑의 특권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에게 속해 있고 남편의 몸은 아내에게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 피차의 의견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부부 간의 성생활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아름다운 도구이지 결코 서로 싸우는 데 사용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거부하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강도짓을 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살전4:5,6 참조)
(살전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살전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자칫 남편 혹은 아내가 아닌 다름 사람으로부터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게 하려는 사단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영(靈)이 육체를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기 위해 합의상 분방할 수 있습니다(7:5). 그러나 이를 핑계삼아 그 상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는 영적인 일에서나 육적인 일에서나 피차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바울은 권고합니다.
8,9절에서 바울은 1절에서 언급한 원리를 혼인하지 않은 신자와 과부에게 적용시킵니다. 즉, 절재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독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혼에 대해서도 문의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용했습니다. 즉, 남편과 아내는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39절 참조). 그러나 이혼했을 시에는 그대로 독신으로 지내거나 재결합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가지 예외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음행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음행한 사실을 자백하고 그것을 용서해 주며 다시 화합하는 것이 휠씬 더 좋지만, 이런 것을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음행하지 않는 편에서 이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이혼은 최후의 선택입니다. 우선은 화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주님께 순종하고 또 부부 관계 내에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지극히 만족스러워서 결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 목회자들의 일반적인 말씀입니다.
현금에 있어서 증가일로에 있는 이혼율 기독교인들의 증가는 분명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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