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목사의 인격

첨부 1


'모든 설교는 어느 정도 설교자의 인격과 사상이 표현되는 자기 표현이다' 라는 후레드 크레독의 말대로 설교는 설교하는 목사의 삶과 인격을 바탕으로 표현되고 더 나아가 설교의 내용보다는 설교자의 삶이 회중들에게 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리 좋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전달하는 목사의 인격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할 때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역겨움을 갖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교훈이나 말씀이 진리로 받아드려지는 것은 바로 그의 삶이 자기 비하(卑下)와 겸손과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설교가 힘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되려면 '믿음이 좋고 열정이 있으며 권위를 지니고 은혜가 충만한' 설교자이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얼마나 공부를 하였으며 그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 그의 인격이 형성되었느냐에 따라 그 설교의 방향이 좌우될 것이다.

나의 신앙 형성은 조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지금 내가 시무하고 있는 안동교회의 초대 장로이셨던 조부의 신앙으로 시작된 우리 가정의 신앙의 맥은 아버지와 고모에게 이어졌고, 비교적 엄격한 아버지의 신앙 지도를 받은 나와 나의 형제들이 모두 그 신앙을 이어 받았다.

역시 장로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신학 공부를 하신 적은 없지만 부산 피난 시절 교회를 개척하여 전도사로 몇 년 시무하신 적이 있었다. 그후 대한성서공회 직원으로 정년까지 일하셨고 정년 후 한때 시골 교회를 담임하시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런 생활이 자연 어려서부터 목사를 지망했던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족이 많은 우리의 가정은 경제적으로는 항상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늘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신앙으로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돌이켜 본다.

여러 형제 중에 너는 목사가 되어야 된다고 어려서부터 나를 지목하신 아버지의 뜻을 별로 거역할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드려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였고, 기독교 서적도 관심을 갖고 보았으며, 성경 읽기를 힘썼다.

부산 피난 시절을 끝내고 환도한 후 집에서 가까운 어느 자그마한 교회에 인연이 되어 고등학생 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비롯하여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면서 대학 시절까지를 보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그 때의 생활이 나의 신앙 형성에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특히 연세가 무척 높았던 할아버지 같은 목사님이 시무를 하셨는데 그분의 설교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의 푸근한 인격과 한없이 인자한 그의 삶이 나를 신앙의 길로 매진케 하였다.

그의 설교는 하나도 기억되지 않아도 꾸밈없었던 그 할아버지 목사님의 인상은 나에게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시절에 부흥회도 열심히 참석하였고, 새벽 기도회와 성경 공부 등에도 열을 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의 철학과를 선택하였던 것도 신학을 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별로 열심히 공부를 하지 못했기에 철학 공부가 신학을 공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니던 대학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사고의 영역을 넓히게 하였고,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만약에 내가 대학의 철학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학교에 진학을 하였다면 나의 사고의 폭이 지금보다는 좁아지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본다.

내가 신학교에 진학했을 때 처음으로 대학 졸업자들로만 입학생을 받았을 때였다. 아직 신학대학으로서 교수진이나 여러 가지 시설이 미비한데다 대학 교육을 받은 자유분방한 신입생들을 받아드린 신학교가 이들을 꽉 짜인 틀 안에 가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학 3년은 오히려 대학 생활 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

비록 짜임새 있는 교육과 경건의 훈련은 받지 못했으나 자유로운 사고를 제한 받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것이 지금의 목회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안수를 받고 8년간 학교 생활을 하였다.

이 역시 틀에 박힌 교회 목회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기여서 이 때 여러 가지 교회 내 활동과 공부와 모임에 참여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대학원에 적을 두고 구약학을 공부한 것도 이 때의 일로서 보다 폭 넓게 하나님의 구원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설교는 바로 이런 나의 삶이 바탕이 되고 있고 그 한계 안에 머물고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