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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체험과 경계의 조화 (고전 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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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강한 자는 시험을 물리칠 자신의 능력을 과신(過信)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바울은 경험 많은 성도들에게 주지시켜 줍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바울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들어, 체험은 신중한 태도와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장성한 신자들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는 여기서 세 가지 사항의 경고를 줍니다.

&983729; 특권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10:1-4)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속된 것처럼, 역시 그분의 능력으로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되었습니다(5장 7-8절에서 바울은 이미 유월절 사건을 구원과 연결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고 고린도 성도들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은 홍해의 &65378;세례&65379;에서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영적 음식물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처럼(요6:63,68/7:37-39),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를 먹고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특권을 누린 것이 유대인들이 죄악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지는 못했습니다.

장성한 성도들에게도 미숙한 성도들 못지 않은 위험이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들이 갖는 위험의 하나는 지나친 자신감입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우상의 전에서 음식물을 먹는 강한 신자는 자신이 힘에 부치는 적과 싸우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헤매는 동안 진짜 반석이 그들을 따라다녔다는 것을 시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 랍비들 중에는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반석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신령한 반석이며, 그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물은 반석에서 나오기도 했고 (출17:1-7)/민20:7-11). 또 어떤 경우에는 우물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민21:16-18).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물을 공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983730; 출발이 좋다고 해서 그 끝도 좋은 것은 아니다(10:5-12).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사(奇事)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의 시험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체험은 항상 경계와 조화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에는 항상 시험과 실패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 생활 동안 모두 죽었습니다(민14:26 이하참조)
고린도 교회의 성도 중 강한 자들은 그러한 구약의 사건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의문을 제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해 줍니다. 바울의 지적대로, 고린도 성도들은 악한 일에 대한 욕망 때문에 도덕적으로 불안했고(6장). 우상을 섬겼으며(8,10장), 하나님을 거스려 수군거렸습니다(고후12:20-21).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분께 대항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역시 바울이 어떤 사건을 언급하는지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탐욕”은 민수기 11장 4절 이하에서, 우상숭배는 출애굽기 32장에서, 그리고 음행은 민수기 25장에서 각각 그 실례(實例)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한 경우가 많지만, 바울은 아마 민수기 21장 4-6절에 기록된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불평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민수기 14장과 16장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였으므로 하나님은 그 죄를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은 그 즉시 죽음을 당했습니다(고전 11:29-31 참조). 뿐만 아니라 남은 자들마저도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한 기업을 누리는 특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얻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그들이 방종해져서 하나님의 용인을 받지 못하고 아무런 상급도 받지 못하는 자가 되면 어찌할까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생활 속에 있는 죄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짓는 죄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죄보다 훨씬 가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 있었으므로 그들의 죄가 우리들의 죄보다 훨씬 가증하며 따라서 더욱 엄격히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저질러지는 죄가 훨씬 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경고를 받았으며 또한 말세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거스리는 죄와 은혜를 거스리는 죄는 별개의 것입니다.

&98373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시험을 이기게 해주십니다(10:13-22).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시험을 허용하십니다. 또 시험 당할 때에도 우리가 그분을 의뢰하고 또 그 시험에서 교훈을 얻으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스스로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넘어질 것이나,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은 시험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앞서 “음행을 피하라”(6:18) 고 경고한 바울은 이제 “우상수배하는 일을 피하라”(10:14)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죄악으로 이끄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신32:17/시106:37). 우상의 상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귀신과 교제(교통)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죄와 구별된 삶을 살라는 중요한 교리를 재차 강조합니다(고후6:14-7:1).
바울은 주(主)의 만찬을 하나의 예증으로 사용합니다. 신자가 성찬상에서 잔과 떡을 나누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함으로써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케 됩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입증하기 위해 18절에서 제단과 제물을 또 하나의 예로 사용합니다. 바울의 설명은 매우 분명합니다. 성도는 주의 상(구약에서 제사, 신약에서는 성찬)과 귀신의 상(우상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주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22절).
이 말은 ‘나는 믿음이 강해서 우상의 전(殿)에 있어도 아무 해를 받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강한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입니다. 물론 연약한 형제들보다 비교적으로 강한 성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보다는 강하지 못합니다. 죄를 가지고 장난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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