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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와 책임의 조화 (고전 1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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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성숙한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특권을 누릴 자유를 부인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며, 어떤 일들은 우리를 노예로 삼기도 합니다(6:12). 모든 것이 유익하나, 어떤 행동은 오히려 연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8:11-13) 자유를 책임과 병해시키는 것이야말로 성숙함의 표시입니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무질서와 무법의 상태가 됩니다.

첫째, 우리는 교회내의 형제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23-30절).
우리는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 말씀도 이와 동일한 내용의 훈계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지만 그 자유는 다른 성도들을 해치는 자유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앙적 원리를 ‘우상에게 바쳤던 재물을 먹어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적용합니다. 앞서 바울은 공공연히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자들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습니다(8:9-13). 그런데 이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사로이 먹는 음식 문제까지 이야기 합니다. 25-26절에서 바울은 가정에서 쓰기 위해 시장에서 산 고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그는 시24:1을 인용합니다) 신자에게는 모든 식물(食物)이 다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막7:14-23/행10:9-16, 28/딤전 4:3-5). 성숙한 신자는 우상에게 바쳤던 재물일지라도 자신의 가정에서는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시장에서 구입했다고는 하나 원래는 우상 신전에서 유출된 고기(고러한 경우가 당시에 흔했다)를 먹더라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불신자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바울은 이 문제를 27-30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초대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된다면( 바울은 초대에 응하고 응하지 않고를 결정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든 아무 말 없이 먹어야 합니다(눅10:8/ 딤전6:17참조)
(눅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그러나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은 먹지 않으려고 그 음식의 출처를 알아보는 연약한 성도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연약한 성도가 성숙한 성도에게 그 음식들이 우상에 바쳤졌던 것이라고 알려 주면, 성숙한 성도는 그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먹는다면 그것은 연약한 성도들을 실족케 하는 것이며 죄에 빠뜨리는 셈입니다.

둘째,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책임을 지고 있다(31절)
바울은 “어찌 내가 감사한 음식을 먹지 못하겠는가? 어찌 내 자유가 연약한 성도들의 양심 때문에 제약을 받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31절에서 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실족케 하면서 하나님을 영광되이 할 수는 없습니다. 확신컨데, 우리들의 양심은 아무런 제약없이 어떤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고 또 그로 인해 아무런 해도 받지 않을 만큼 강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다 해도 연약한 형제에게 해가 되는 방향으로는 그 자유를 행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의 영혼을 구원에로 이끌 책임을 지고 있다(32-33)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주님을 의뢰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아야 하며, 또 교회의 다른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도 함께 구하는 삶, 즉 그들로 구원받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33절)라는 말은 바울이 사람을 죽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타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갈1:10참조). 이 말은 바울의 생와 사역이 자신의 유익과 욕망을 채우려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데 그 목적을 두었다는 사실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을 끝마치기 전에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사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바울이 말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바울의 태도가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취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바울은 이방인들의 음식을 먹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유대인들과 같이 정결한 식물(食物)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는 모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이 장에서 언급한 바, 성도의 삶의 원리와 전적으로 일치되는 것이었습니다. 풍향계는 늘 다른 방향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에는 한 방향만 가리키다가 그 다음에 다른 방향을 향합니다. 풍향계는 항상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만을 가르킵니다. 풍향계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자녀가 어렸을 때 집 안에서 카드 놀이와 주사위 놀이를 금지시켰다. 그러다가 그들이 자라서 지각력이 생기자 그러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성도로서 우리는 자유를 소유합니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루고 사 주신 것이므로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자유는 지식으로부터 옵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원자(原子)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것을 현명하게 사용할 자유를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랑과 조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은 건설적인 도구가 아니라 파괴적인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그러나
1.그 일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어떤 제재를 주는가?(6:12)
2. 그 일은 나를 거치는 돌이나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자로 만들지는 않는가?(8:13)
3. 그 일은 나를 덕을 세우는가, 아니면 나를 파괴하는가(10:23)
4. 그 일은 나만을 기쁘게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가(10:31)
5. 그 일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으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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