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은 사실인가 (고전 15:1-19)

첨부 1


고린도는 헬라의 도시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했을 때 어떤 자들은 바울을 비웃었습니다(행17:32). 대부분의 헬라 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일종의 감옥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음을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보아서 오히려 환영했습니다.
이러한 헬라 철학의 회의 적인 입장은 교회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바울은 이 문제와 정면으로 출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부활의 진리는 성도들의 삶에 있어 교리적으로나 실생활에 있어서나 그 함축하는 의미가 컸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진리였습니다.
바울은 네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답변함으로써 부활의 진리를 다룹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고린도의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그 기본적인 사실로부터 부활에 관한 논증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 증거/구원(15:1-2)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고린도 인들의 신앙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은 복음의 메시지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입니다. 죽은 구세주는 아무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구원의 확증으로서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습니다. 그들의 확고한 태도는 곧 그들의 믿음이 속 빈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임을 증거해 줍니다.

두 번째 증거/구약 성경(15:3-4)
“먼저”(3절)라는 말은 “제일 중요한”이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교회가 선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사회 활동이나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복음에 우선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시고, 그리고 여러 성도들에게 보이신 것은 복음이 발판으로 삼고 있는 근본적인 역사적 사실입니다(3-5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는 말은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학적 설명입니다. 로마 제국은 많은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희생 제물은 오직 한 분뿐이셨습니다.
“성경대로”(3절)라는 표현에서 바울이 언급한 이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구약 시대의 희생 제사 제도에는 우리의 대속자와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한 부분이 많습니다. 속죄일의 제사(레16장)와 이사야서 53장의 예언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 중 그리스도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선포하는 구절은 어디일까요?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마12:38-41).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로 비유합니다. 첫 열매는 구약에서 유월절 다음의 안식일 이튿날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이었습니다(레23:9-14/고전15:23). 안식일은 늘 일곱째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안식일 이튿날은 한 주간의 첫 날, 또는 주일에 해당되며 그 날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유대력에서는 이 기간(안식일에서 안식일 이튿날까지의 기간)이 3일에 해당합니다. 이 초실절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다른 예언들도 있습니다(시16:8-11/22:22이하 /사53:1-12/ 시2:7. 이들은 각각 행2:25-28/ 히2:12/ 행13:32-33에 인용되어 있음)

세 번째 증거/증인들(15:5-11)
십자가의 예수님은 불신자들의 눈에도 보여졌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믿는 자들에게만 보이셨습니다(행1:22/ 2:32/ 3:15/ 5:32).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으며 한 곳에 모였던 제자들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친형제인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신자가 되었습니다(요7:5/ 행1:14). 또 500여명의 형제가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했습니다(6절).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절대 착각이나 기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일어났었을 것입니다(마28:16이하).

그러나 주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인은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자였을 때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이 삶의 근본적인 변화, 그로 하여금 핍박받게 만들고 고통 당하게 만든 그 변화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데 대한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구원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자신이 주를 섬길 때에도 그 은혜가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역사 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는 표현은 바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광 중에 계신 메시아를 볼 때 있을 이스라엘의 미래의 구원을 언급하는 말일 것입니다(슥12:10-13:6/ 딤전1:16).

이러한 바울의 설명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예,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부할 하셨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라고 말했다면 바울은 &985172;너희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또한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도 믿어야 할 것이다&985173;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 진정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 범죄만 빼놓고 모든 것을 체험하셨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복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없다면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은 헛것이며, 우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미 죽은 성도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만 받으면, 기대할 만한 장차의 영광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가?(29-34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생각을 설명합니다). 부활은 단순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