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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유익 (고전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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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돈을 사용하는 데 신중했듯이 시간의 사용에 있어서도 신중했습니다. 심심풀이 일로 시간을 보내기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소일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기회를 허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전도 여행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바울의 계획이 매우 불확실했다는 사실도 주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혹 너희와 함께 과동할)둣도 하니…(만일) 허락하시면… 바람이라” 물론 바울의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에 의존되어 있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7절) 장차의 계획에 대한 바울의 자세는 야고보서 4장 13-17절에 언급된 교훈과 일치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것은 에배소였는데 바울의 계획은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에서 과동(過冬)한 후, 구제금을 가지고 유대로 가려는 것이었습니다(5절에서 “지나”라는 말은 ‘조직적인 전도 여행’을 함축한다) 11월에서 2월까지는 배로 여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로서는 고린도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머무는 것이 편했을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에는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고, 바울은 앞서 고린도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었습니다(11:34).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바울은 계획을 최소한 두 번 이상이나 변경해야 했습니다. 바울의 수정된 계획은 고린도를 방문한 후에 마게도냐에서 전도한 뒤, 다시 고린도를 지나 유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고후1:15-16), 즉, 한 번 방문해서 오랫동안 머누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기간을 잡아 두 번 방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계획은 고린도에 잠깐 들렀다가 그 다음에 에베소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번째 계획은 실현되었으나 이때의 고린도 방문은 바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디모데를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파송하였습니다-고후2:12-13 /7:5) 기다리기 위해 드로아로 갔다가 메게도냐를 방문한 후, 유대로 올라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했었고, 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고린도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런 어려운 체험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는가?
첫째, 그리스도인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상황을 살피며 하나님의 &46767;을 분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잠언 3장 5-6절의 말씀은 두뇌 활동을 중지시키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성을 주시고 우리가 사고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성에만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며, 성숙한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결정이 항상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은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킬 수 없는 것을 약속하기도 하고, 이룰 수 없는 것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거짓말장이거나 실패자라는 의미가 되는가?(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바울을 거짓말장이요 믿지 못할 자로 생각하기도 했다.고후1:12-2:13)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1: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고후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2(고후1: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고후1: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고후1:17)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예 하고 아니,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고후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이 중요한 일에는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적인 것이 있습니다.
1. 실수할 것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고,
2.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나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주님의 뜻에서 벗어난다면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사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뜻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뜻을 행하길 신실하게 원하는 것입니다(요7:17)
(요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결국 주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23:3)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가도록 주님께서 방치하신다면, 그때 욕을 당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중단하는 동안 우리는 종종 기회를 &45455;친다”는 고대 로마인들의 격언이 있습니다. 일단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았으면 지체하지 말고 그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여러 가지 이유(핑계)들을 생각하다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15:32) 전도의 문이 열려 있는 그곳에 계속 머무를 계획이었습니다. 지헤로운 장사꾼처럼, 그는 기회가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기 전에 그 기회를 사야 했습니다.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 또한 청지기가 지켜야 할 중요 의무입니다. 전체로서의 교회와 개개의 성도는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기회를 주시고 있는가? ’를 끊임없이 물어 보아야 합니다. 방해물을 불평하기 보다는,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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