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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 바울의 간증 (딤전 0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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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거짓된 교리와 참된 교리를 분별하라고 하면서 바른 교훈 따라서 살라는 권면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참된 교리로 전달했던 이 복음이 자기 자신을 어떻 게 변화시켜 주었는가 하는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이 복음에 의해서 아무런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복음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복음에 의해서 변화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이 말씀에 의해서 아무런 변 화를 받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이것은 사실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쓰게 된 바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이 복음에 의해서 그 삶이 철저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말하자면 사도 바울의 간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신약 성경에 자신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었고 하 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된 사실을 여러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 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사실에 대한 간증을 사도행전에만도 세번이나 했습니다. 사도행전 뿐만 아니라 바울 서신에만도 갈라디아서나 빌립보서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빌립보서 3장 5절 이하를 보세요.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 라.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 주신 말씀을 포함해서 신약 성경 중에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간증을 하고 있는 장면은 여섯 번이나 됩니다. 우리가 바울의 신앙 간증을 살펴 볼 때 일관성 있는 형식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 서 이 사도 바울의 간증을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간증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바울 의 간증 형식이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의 모 습,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모습이 바울의 간증 형식입니다. 고 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에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간증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처럼 극적인 변화를 체험했 기 때문에 뚜렷하게 구분 할 수 있는 간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건데 이런 간증을 하면 당황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왜요? 소위 모태 신앙이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사도 바울과 같은 뚜렷한 전환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간증할 때 제일 어려워합니다. 물론 전환점이 뚜렷하지 않을는지는 모르지만 점 진적으로 예수님을 알아 오다가 마침내 주님을 내 자신의 구주로 확신하게 됨으로써 변화된 삶 을 살게 되는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확실한 체험은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고도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분명히 알지만 그 믿음 의 의무가 무엇이고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가 성경 공부를 통해서 또는 그리스도 인과의 대화나 말씀 선포를 듣고 홀연히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 신을 가지게 된 다음부터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내가 전에는... 하는 말로 시작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중생하기 전에 는,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하는 말입니다. 그가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내가 전에는 훼방자 요, 핍박자요, 포행자 이었으니 훼방자 란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를 말합니 다. 그리고 핍박자 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포행자 는 자신이 직접 행동하므로 복음을 방해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세 단어의 차이를 이렇 게 말했습니다. 훼방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핍박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하여, 포행자는 구체 적인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방해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대적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일 복음 사역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이 간증을 하면서 지난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자신의 모습을 필름처 럼 보면서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세요.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은 바울의 옛 이 름인데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태도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 라는 말은 스데반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전 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의 모습을 보면서 사울은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 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핍박자, 포행자 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사울에게는 손톱만한 동정심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하다 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9장 1,2절에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쫓는 사람을 만나면 무릇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이렇게 그리스도의 제자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했습니다. 만일 예수 믿 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다 잡아오라고 명령하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 던 사람입니다. 나는 위대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바울이 이런 삶을 살았던 원인을 고백하고 있 는 장면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왜 그가 그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그가 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 산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13절의 말씀을 보 세요.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가 이렇게 산 이유는 믿지 않아서 였습니 다. 물론 그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하여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까닭은 몰론 죄 때문이 었습니다. 그러나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가 불신의 죄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을 보세요. 죄 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죄의 문제를 깨닫게 하시는 데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 중에 가장 큰 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하셔서 나를 깨우쳐 주시기 전까지는 그 죄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그분을 믿지 않았던 것이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였음을 깨닫는 순간 그 때부터 우리에게 구원 의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바울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두 번째 원인으로 이끌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알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우리 나라는 교육열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기 때 문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고 미국 사람보다 전체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우리 국민은 결코 무지하지 않은 국민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무지는 영적인 무지 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 지 알지 못하는 무지,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교회에 다니는 지는 오래 되었는데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복음이 무엇인지 알 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말해보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세요. 나는 믿음 없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알지 못하는 자 리에 있었습니다. 그 불신앙, 그 무지가 나를 훼방지요 핍박자요 포행자의 자리에 서게 만들었 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리켜서 15절에 죄인의 괴수 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 간증을 들어 보면 과거에 잘못된 생활을 한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 니다. 그리스도 만나기 전에 살던 것이 결코 자랑스러운 것은 못됩니다. 당연히 부끄러워하면서 간증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일에 참여했으며 스데반의 죽음을 얼마나 통쾌하게 여겼는지 하나하나 열거하듯이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나는 죄인 중 에 괴수입니다 하는 말로 족합니다. 사실 그것은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의 신앙 간증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기의 죄 문제가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한 전제로 잠시 언 급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 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3, 14절을 보십시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 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사도 바울의 구원과 관련해서 13절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긍휼 이라는 단어입니다. 바 울이 구원받은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4절에는 어는 단어가 중요합니까? 은혜 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편지에서 그가 가장 감격스럽게 사용했던 긍휼과 은혜 라는 이 두 단어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 저주를 내 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할 때 가장 자주 설명하는 내용이 하나님은 긍휼에 있어서 풍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면 누가 의롭 다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은혜는 무엇입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호의입 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 저주를 거두시고 대신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친절과 하나님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우리에 게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런 것들을 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 고 베푸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 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에베소서 2장에 말씀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신앙 간증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증의 초점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긍휼이 여기셨고, 나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 주신 말씀 15절에 나타난 복음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 세상에 임하셨다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 시려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이 변화했습니까? 사회가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삶도 풍성해 졌습니다. 평화도 증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 니다. 우리가 두고두고 강조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 적은 사회의 여러가지 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의 은혜 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간증이요 우 리의 간증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하게 된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의 삶 속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4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믿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너무 너무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리에 있 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을 받았고 또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신 말씀 14절에는 믿음이란 단어와 함께 사랑 이란 단어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그리스도를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이 세상 사람 들은 이유도 없이 그리스도를 미워합니다 그리고 까닭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합니다. 그러 나 주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보 세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 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너희는 세상에서 나의 택 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를 미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랬었습니다. 바울이 그리 스도를 만나기 이전 사울이었을 때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했습 니까. 그러나 구원받고 나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순히 파멸과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내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 다. 구원은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내게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이 직분이 어떤 직분이었습니까? 1장 1절에 이미 강조되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보냄을 받은 자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 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도록 더구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사 도로 삼으셨습니다.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 고. 여기 충성되이 여겨 라는 말은 그분이 나를 믿어주신다 는 뜻입니다. 헬라어에서 믿음과 충성은 같은 말입니다.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자신을 하나님의 믿어 주셨다는 것은 바 울에게 있어서 굉장한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한다 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언 제나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이제 바울은 주님이 왜 자기와 같은 사람을 구원하셨을까 하는 문제를 상기하면서 두 가지 결 론을 내립니다. 16절에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 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했습니 다. 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 던 나까지도 참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그의 은혜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이 위대한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모본이 되게 하시려고 하심입 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바울의 마음속에는 찬송이 흐릅니다.말하자면 송영 찬송이 나옵니다. 17절에 만세의 왕 곧 썩지 않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 록 있어지이다 아멘 바울은 지금 인생의 만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이 하나님 앞에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감격은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는 감격이어야 합니다. 생의 최후의 순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한결같은 구 원의 간증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 놀라운 긍휼과 은혜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인생의 마지막 석양이 지는데도 이 구원의 감격은 커다란 활화산처럼 더욱 강하게 바울 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의 괴수와 같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빼어 버리면 바울의 삶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간증은 사도 바울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이 되어 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이 감격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 니다. 믿지 않고, 알지 못해서 그랬는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변화시켜 주셔서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생 얻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게 하시고하나님께 영광과 존귀가 세세토록 찬송하게 하옵소서.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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