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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상적인 교회상 (딤전 0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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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이요 주님의 몸인 교회를 어떻게 지도하여야 되는가? 하는 것을 기록한 편지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흔히 이 편지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지도하는 것은 목회 자의 공통된 소원이요, 교회가 교회로서 그 시대적인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상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기성세대가 어떻고 기성질서가 어떻고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불만의 소리가 대단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방향의식도 미쳐 가지지 못하고 변화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과연 내일에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갖다줄 것인지 때로는 염려가 됩니다.

오늘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해서 460년 전 마틴 루터가 그 당시 낡은 먼지로 쌓이고 싸인 교회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그는 말씀에 물어보았고 말씀에 충실하였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이 거센 바람으로 일어나는 사막의 먼지로 가는 길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을 때 무리하게 여행을 계속하지 아니하고 거기서 밤을 기다려 하늘에 빛나는 은하 성좌를 보고 잃었던 목적지와 방향을 되찾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인간 자체를 상실하고 메마르고 바람 세찬 사막을 여행하고 있는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가 지향해야할 길을 찾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일이지마는 루터가 그때에 세 가지 원리를 주장하였습니 다.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받고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나 선행을 함으로 공덕을 쌓아서가 아니고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즉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소위 의신득의(依 信得義)의 원리입니다.

둘째로 그 당시 모든 형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권위로 삼는다는 곳보다는 옛날부 터 내려오는 여러 가지 전통에 치중해서 성경을 진리가 가려지니까, 앞으로는 신앙과 행위의 표 준을 성경으로 삼는 성경 권위를 주장하였습니다.

셋째는 구원이란 성경에 보면 중보는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는데 그때 교회에서는 반드시 신부를 통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는 없는 진리이니까, 누 구든지 제사장 자격이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리스도만을 중보로 삼아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기도도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즉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소위 만인 제사론입니다.이와 같은 원 리와 주장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사방에 다른 종교개혁가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스위스 에서는 쯔빙글리, 불란서에서는 요한 칼빈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요한 녹스 같은 분이 호응해서 온 유럽 천지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 우리는 제 2의 종교개혁이니 혹은 2중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쓰면서 교회의 혁신 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종교개혁을 기념할 때마다 이러한 평가 의 기준 문제로 당황하고 올바른 판단의 향방이 애매해져 보람을 찾지 못하고 지내는 때가 많습 니다. 종교개혁 그 자체는 하나의 엄숙한 역사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뜻깊은 날 ' 이상적 교회의 상'을 생각해 봄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기 원합니다. 마틴 루터나 폴 틸리이히는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고 말하여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종교개혁 이후에 신교에서도 수많은 신학자들의 학설과 주장이 우리를 방황케 한 적도 있 었습니다. 이 근래에 와서도 가령 틸리이히나 W. 라우센부쉬 같은 이의 사회복음 신학(The Soci al Gospel), F. 고가튼의 세속화 신학(Secularization), H. 콕스의 사회변화신학(Social Change ), R. 슐의 혁명신학(Revolution), 혹은 G.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Hope) 등입니다.교회란 두 가 지로 흔히 말하는데 가시적인 교회와 불 가시적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상의 교회, 보이는 교회는 언제나 불 완전성을 내 포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의 이상은 완전한 교회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로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동안 교회는 세상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16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하였었습니다. 레오라는 교황이 있었는데 그 전 교황 때에 굉장한 성 베드로 예배당을 새로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굉장한 예배당을 짓게 되니까 재정이 대단히 궁핍해서 그때 흔히 하는 법대로 속죄표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에도 텟첼(Tetel)이라는 교황의 사절을 보내서 속죄표를 사방에 팔았습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속죄표 를 샀습니다. 이런 식으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지난번 로마에 들려서 성 베드로 성당을 구경 하였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Riverside 교회를 처음 볼 때 굉장하였 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성당에 비교하면 그 크기나 예술품들을 볼 때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예배당은 장난감도 못될 정도입니다 그것을 볼 때 '아, 이렇게까지 잘 지을래니 속죄표를 팔 수 있었겠구먼. '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초대교회는 중세교회와 같지 않았습니다. 정말 생명이 약 동하는 교회였습니다. 변변히 예배당이 없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는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루에 3,000명씩이나 세례 받고 입교하는 교인이 생겼습니다. 저희들은 성령이 충만해서 능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함을 받은 저희들은 생명을 얻었고 문자 그대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저 희들은 사랑이 충만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서로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유무상통하여 비록 그때 넉넉한 사람이 그다지 많진 않았지만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밖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교회,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교회가 되어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여졌습니다. 빈축의 대상인 교회가 아니라 존경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우리들의 이상하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이러하던 교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세상에 오염되던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중세교회 와 같은 타락상을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과연 교회 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소금인 교회가 맛을 잃지는 않았습니까? 진리의 기둥과 터로써의 교회 구실을 다합니까? 우리가 이상하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1. 복음적인 교회입니다.요사이는 너무 가짜가 많아서 '순'이라는 글자를 많이 애용합니다. 설탕도 순설탕, 순모직, 순모밀 냉면, 순과일즙, 심지어 복음도 순복음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어쨌든지 교회는 복음 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모든 권위와 표준을 두고 나가는 교회, 그래서 모든 생활의 표준을 성경에 근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새 사람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많아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나 개인이 확실한 구원과 중생의 체험을 하고 이 사실을 전파하는 교 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16절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함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라' 즉 그리스도의 수육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 그리고 종말의 신학에 근거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적인 교회는 타 교파들을 배격하는 근본주의도, 복음을 합리화하려는 자유주의도 아닙니다. 에큐메니칼 정신에 의한 서로가 존경하고 연합하여 일하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2. 근엄한 생활하는 교회입니다.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 라'고 명령하십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신부로써의 순결성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오염되어서 그 순결성을 상실하기가 쉽습니다. 본문 4:1에 있는 대로 '후일에 어떤 사 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고린도전서 5장 에 있는 말씀처럼 음행과 탐닉과 우상 숭배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바울은 '이 악한 사람들을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고 합니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지만 아직도 못 고치는 병 가운데 하나는 소위 '암'이라는 병입니 다. 이 병은 초기 발견하여 미리 처지기 전에 손을 써서 잘라버리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여 퍼지기 시작하면 무엇가지고도 감당을 못합니다.

교회도 우리의 생활을 근엄하게 가져 우리를 멸망 케 하는 여러 가지 퇴폐적인 오락이나 습관, 사상에서 구출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너무 쉽 게 신앙생활 하려고 합니다. 세상 향락도 다 누리면서 예수를 따르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본훼퍼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지불할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 이하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미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중세 교회에서는 무력으로 개혁하려는 힘을 위협 내지 탄압하였지만 오늘의 교회는 유혹과 안 일과 세속화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교회입니다.본문 15절에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진리의 기둥은 정의를 의미합니다. 사회의 진리의 기둥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명을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세상이 부정과 부채로 썩어져 가기 때문에 소금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는 양심의 불이 꺼져서 어두워가기 때문에 빛이 있어야 합니다.교회가 바로 빛이요 소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의가 정의되게 하려면 우리 자신의 결단과 행동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바로 루 터가 개혁 이후에 넘겨준 높은 유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섭섭해 말 것입니 다. 사실은 내 마음속에 사랑의 불이 꺼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인정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 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인정이 바싹 말랐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은 어떠하든지 간에 이 세상의 실재를 좌우할 수 있는 핵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세상에 말려들지 않고 그것을 소리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겠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근거 중에 하나가 누가 손댈 수 없는 정의를 위한 불길이 그 마음 중심에서 타오 르고 있은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은 사람을 양성해내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서 용감히 일할 수 있는 정치가도 많이 배출해야겠습니다. 각계 각 층에 정의의 일꾼들이 침투되어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기수로써 일하게 해야겠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최선을 다하여 각 방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흩어진 교회로서 아넬박사는 교회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교회는 원칙적으로 정치단체가 아닙 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학술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구호기관도 아닙니다. 교회는 내가 나대 로 일어나서 '나는 십자가를 경험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 랑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이와 같은 나의 단체가 예수님의 이름을 중심하여 이루어질 때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 '교회는 국가의 주인도 아니 며 종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히려 그 양심이요, 안내자요, 비판자입니다. ''

그런데 교회는 너무 도 흔히 현상유지의 주요 변호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일찍이 없었던 위협으로 임하 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초대 교회의 희생적 정신을 다시금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다면 교회 는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20세기에서는 무의미하고 무용한 사교클럽으로 추방되고 말 것입니 다. '이상적인 교회상을 누가 부각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과업입니다 말 씀의 반석 위에 서고 성결로 생활하고 사회의 양심이 될 때 이 교회를 흔들 자는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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