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의심하면 확인하라

-좋은 말로 속삭이는 자는 반드시 배신한다.
서기 313년 동진의 제후였던 왕준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황제를 꿈꾸었다. 조정에서는 그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그의 세력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정면으로 승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석륵이란 장군만이 앞뒤 돌아보지 않고 왕준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의 참모였던 장빈이 이렇게 말했다.
장군, 왕준은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지만 천하의 영웅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되어 거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장군의 지지를 끌어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일부러 그에게 복종하는 척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그를 칠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석륵은 장빈의 충고에 따라 왕준에게 많은 예물과 함께 아첨의 글까지 보냈다. 공은 명문 귀족으로 천하에 그 명성이 널리 펴져 있습니다. 지금 중원에는 주인이 없는데. 마땅히 공이 천자가 되어 백성들을 태평성대오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평소 공을 존경하여 왔습니다. 이제 마음을 열어 공께 충성을 바치고자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왕준은 매우 기뻐하며 석륵이 자신에게 귀의한 것으로 굳게 믿었다. 석륵은 겉으로는 계속 왕준을 떠받들면서 안으로는 군비를 강화하여 그를 제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석륵이 병력을 강화하자 왕준의 부하 장수들은 그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공격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이미 석륵을 철석같이 자기 사람으로 믿고 있던 왕준은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
석륵은 나를 천자로 옹립하려는 인물이다. 두 번 다시 그를 의심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마침내 기회를 잡은 석륵은 왕준에게 편지를 보내 그동안 조련한 병력을 미래의 천자께 바치려 가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왕준은 더욱 기뻐하며 석륵을 맞아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도록 하였다. 마침내 석륵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왕준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계성에 도착했다.
석륵은 왕준의 부하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안에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였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가 성의 군관들에게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소와 양을 가져왔다며 성안에 소와 양떼를 몰아넣었다. 마침내 수천마리의 소와 양들이 성안을 가득 매워서 행인들조차 걸어다니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설사 이런 상황에서는 복병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때를 노린 석륵은 불시에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방심하고 있던 왕준의 군대는 번개같은 기습에 지리멸렬 무너졌다. 1만여명의 군사들이 썩은 짚풀처럼 베어졌고 피는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왕준은 끝까지 충성스런 신하 석륵의 배신을 믿지 못하다가 그의 군대에 사로잡히는 꼴이 되었다. 겉으로는 충성을 다해 믿음을 이끌어내고는 부지불식간에 뒤돌아서버린 석륵의 계략. 왕준은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었지만 어쩌랴.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준비되었던 것을…...
왕준이 석륵의 감언이설에 조금이라고 심사숙고하고 의심하였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