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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가지 질문 (롬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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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 걸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죄를 언급하면서 그 종합적인 결론에 이르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합니다. 다시말해 유대인들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몇가지 비방을 예상하여 논쟁 형식으로 변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까지의 말씀에서 추적해 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비하여 아무것도 나은 점이 없고 구원에 있어서도 아무런 우선권을 갖지 못한다고 못을 박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율법이 그 자신들에게 그리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반박을 해올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첫째,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1-2)
둘재, 유대인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무효하게 할 수 있는가? (3-4)
셋째, 유대인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가? (5-8)

1.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인가? (유대인과 율법과의 관계는? )(1-2)
본문 1절에서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죄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선민인 유대인들의 항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 선민된 유대인의역사적 의미는 상실되는 것이 아닌가?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모두 죄인이라고 한다면 혈통의 우위성이나 종교적 훈련은 무의미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당시 유대인들, 특히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바울도 유대인이었기에 이 문제로 고심했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시147:20, 사5:5-6, 암3:2-3, 마22:1-8, 눅13:6)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2절)'이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관리하며 전달하는 책임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거룩한 말씀을 변덕스럽고 신실하지 못한 인간들에게 맡기신 것은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대인들이 그 특권을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능력 밖에 놀라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엄청난 말씀을 맡게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유대인들이 율법을 맡은 것은 그들 자신들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신실함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자랑이 있다면거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자신들에 주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자랑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의 관점에서 볼 때에 유대인들에게 말씀인 구약의 율법이 주어진 것은결코 특권으로서 스스로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다는 것이 바울의 역설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불신자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하여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요, 그 해답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유대인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하게 할 수 있는가? (유대인과 불신과의 관계)(3-4).
본문 3절에서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믿지 아니함'이란?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did not have faith)(RSV)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유대인이 하나님께 대하여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대인들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아무리 인간 편에서 불신앙을 가진다손치더라도 그 불신앙이 하나님의 미쁘심을(신실하심)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유대인이 불신앙을 가지게 될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실함이 무효화되어 버리지는 않는가? 하는 질문으로서 그 해답은 신실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계약이나 언약은 결코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파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계약은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수는 있으나 계약 관계를 철회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언약을 파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영접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의 계약이 무효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정도로써 하나님과 유대인과의 관계의 유효성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그 약속은 결코 취소됨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이야말로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요, 하나님의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유대인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드러내는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문제)(5-8).
본문 5절에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드러내게 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진노할 이유가 없지 않으신가? 라는 적반하장격의 항변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분명하게드러내었다면 굳이 유대인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이런 논리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해야 된다는 도덕폐기론자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쉽게말해 인간들이 자신이 잘못한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불의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함을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라고 말하므로인간의 범죄가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무서운 교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과 동등한 선상에 다 놓고서 사고하고 비교하려는 유대인들의 자만과 교만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까지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역이용하려고 덤벼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거짓과 같은 차원의 성질이 아니므로 불의와 거짓은 인간의 책임에 속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시킬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신자가 되고 나서도 조금의 시련과 어려움과 막힘이 생기기만 하면 곧잘 우리는 불평과 원망과 한숨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탓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더 깊은 섭리 가운데 복된 섭리 가운데 있다는 확신에 서기보다 언제나 먼저 흔들리고 이리저리 헤메이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버릇이 많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절대 의지하는 신자가 아쉽습니다. 그러기에 더 많은 연단과 훈련이 내게 필요한지 모릅니다.

불평과 원망과 핑게와 책임전가로 소중한 세월을 허송하는 비 생산적이고 어리석은 신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깊이깨달으셔서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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