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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람들 (갈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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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갈등은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맡겨 드리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맡겼다가도 다시 그 일을 가져와서 자신이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데도 잘 살아 가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어떤 기도제목이나 사건을 맡기기 보다는 내가 그 일의 어느 부분을 차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안심할 수 있을 만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물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스리고 정복하고 번성할 능력과 창조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의 환경을 지배하고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이 함께 한다면 훨씬 위대한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고 나의 삶을 투자했을 때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작품을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가능성'입니다.

성경에 있는 인물들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능력과 열심에 하나님의 방법과 섭리와 인도하심을 그들에게 허락함으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을 창출하여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능력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의 원어를 보면 '집을 짓는다' 또는 '경영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서 오늘날의 '경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방법과 뜻으로 어떤 일을 경영하는 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저에게 준 삶을 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운영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면 더욱 초월적이고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거듭 호소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의 노력으로 사래의 권고를 듣고 하갈을 아내로 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아들은 약속의 자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은혜의 자손을 이땅에 뿌려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의 뜻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도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내 인생을 요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운영하실 수 있는 경영에 맡기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이요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아브라함의 일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나의 생각과 계획을 십자가에 죽여버리고 하나님의 경영하에 나의 삶의 전체를 맡길 수 있겠는가?, 내 자신의 삶을 내가 운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가운데 우리의 삶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서 '죽는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얼굴을 찡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억제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활을 위한 죽음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한 것처럼 죽어야 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은 나의 생각과 주장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활동을 잠시 멈추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과 욕망의 흐름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과 내가 원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경영하셔서 깨어진 인생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내 스스로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말로 '메시야'입니다. 나를 구원하실 그분과 함께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을 죽음에다 넘겨 주라는 것입니다. 죽음 뒤에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옵니다. 따라서 나에게 가지고 있는 계획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함께 가시고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는 나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 계획을 그분에게 넘겨주고 나의 소유권을 이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그 분이 나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계획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주시겠다는 보증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계획을 넘겨 받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죽음은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위대한 결과를 위해 나의 가진 적은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비밀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놀라운 능력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새 주인으로

세번째,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는 것처럼 새 주인을 맞이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더니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새 주인으로 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가셔서 여러분 마음과 생각과 계획을 다스리시고 나의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내가 나의 실패와 잘못과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적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받으셔서 죽은자를 살리시고 그분은 새 주인이 되셔서 새롭게 여러분의 인생을 운영하십니다.
여러분,하나님은 우리안의 죄를 말갛게 씻고 구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시간 여러분과 나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안에 주거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값으로 사신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이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지 못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타협함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을 불법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산합니다. 실패합니다. 짖궂은 모습, 험악한 모습들이 인생의 잡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게는 이러한 모습들이 많습니다.
예수믿고 20년 동안 내 뜻대로 일을 결정하고 저질러버렸기 때문에 부끄러운 잡품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내가 주인 노릇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여러분과 제게 찾아오시기를 원합니다.

가장 큰짐은 '나'라는 짐입니다. 이 '나'라는 짐은 얼마나 포기하기 어려운지 아십니까?
필리핀에서는 원숭이를 재미있는 방법으로 잡는다고 합니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서 먼저 코코낫을 원숭이 손에 들어갈 만큼만 구멍을 뚫어 놓고 그 안에다 쌀을 넣어서 원숭이가 있는 높은 나무 밑에 코코낫을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내려와서 그 안에다 손을 집어넣고 쌀을 움켜쥘 수 있는 만큼 움켜쥐고는 손을 빼려고 한답니다.
하지만 원숭이를 잡기위해 뚫었던 구멍이 움켜쥔 쌀 때문에 손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코코낫을 쥐고 나무에 깨지라고 땅땅 소리가 나게 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걸어오면 원숭이가 급해 더 빨리 칩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숭이는 나무를 치고 있다가 결국에는 잡히고 맙니다.
저는 이 원숭이 예화를 보면서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기도제목, 열망, 소원을 꼭 쥐고 포기하지 못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히신 적은 없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내주하시는 기적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를 경영하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쥐었던 손을 놓고 포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다음 말씀을 읽어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내 머리와 온 몸이 움직이고 걷고 달릴 수 있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몸은 일도 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병들지 않은, 하나님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나를 건강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내 육신을 드려서 거룩한 도구로 쓰임받도록 축복하시고 내가 오늘 내 발로 교회를 찾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지식과 건강과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경험을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재료가 되게 하십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서 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게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으려면 다음의 세 가지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다가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줍니다. 사랑하면 나를 다 바칠수 있습니다.

아들 희생한 그 사랑에 나를 맡겨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깨닫는 것만큼 나의 사랑을, 내 삶을 그분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적게 느끼면 적게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예수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절규합니다.
저는 이때야 말로 하나님이 나타나실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를 한번도 지은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뺨을 때려도 가만히 계셨고 침을 뱉어도 가만히 계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울분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절규하시는데 그때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니까 반드시 나타나서 그 흉악한 로마병정과 그 간악한 바리새인들을 한 칼에 다 죽여버리고 예수께서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장을 읽어보면 주님이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경을 읽다가 놓았습니다. 놓고 나서 '하나님은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이런 의인을 돌아보시지 않는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믿을까? 하나님은 없고 성경은 그냥 종교적인 서적인가 보다'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에 내가 영적으로 무지하니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한 손가락을 봅니다. 그 손가락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광경이 재현되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짖는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이는 내가 저를 사랑함이니라'하고 말씀하시는데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교실구석이었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걸레였습니다. 그것은 35년동안 세상의 온갖 죄악과 세상의 타협과 세상 속에 살던 '나'라는 인생이 걸레조가리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에 성령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없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부르짖는 외침도 외면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예수께서 대신 지시고 누명을 쓰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대신 해서 누군가 죽어야 했습니다. 내가 죄의 길에서 해방하고 값을 치루어야 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부르짖음도 외면하시고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가 너를 사랑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처럼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누구에게 누명을 쓰면 화를 내고 멱살잡고 싸움합니다. 그런데 나의 죽을 죄를 그분이 대신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는 대속의 은총을 맛보고 저는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사랑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그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희생하신 그 사랑에 우리가 깨어있을 때는 내 뜻을 주장하지 않고 날 사랑하시는 그분에게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이것은 희생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희생하지 않으면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를 알 수 있는 체험이 있으십니까?

사랑때문에 치른 하나님의 희생

제가 전도사였을때 일입니다. 어느날 심방요청이 왔습니다. 아들이 하하나있는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더니 집사님이 우수와 걱정에 쌓인 얼굴로 저를 봅니다. '전도사님 큰일 났습니다. 제가 더이상 애를 가질수 없답니다.' 여러해 동안 애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의사의 검진에 의해 불임이라는 판명이 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집 어린애가 혼자 클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전도사로서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는 질문을 받았습니다.'전도사님 아들이 셋이죠?' '예, 셋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얘기가 '전도사 박봉에 아들 셋 키우시기 힘드시지 않으세요?' 그래서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로 세 아들이 잘 큽니다'고 했더니 '큰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아이를 우리집에 양자로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내가 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서 미국에서 일류가는 대학에서 공부를 시키겠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귀와 코에서 김이 무럭무럭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비로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애 셋 키울 자격이 없으니고생시키지말고 애를 우리집에 보내주면 잘 키우겠다는 얘기입니다. 전도사 체면에 화는 못내고 어떻게 피할까 생각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는데 '미안하지만 그애를 제가 혼자 낳은 것이 아니라 집사람과 함께 낳았는데 제가 집에 가서 물어보고 해답을 드리겠습니다.'라고는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니까 그렇게 처량하고 불쌍할 수가 없더군요. 그날 저녁에 집사람이 집에 온 걸 보고 '여보,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큰 아이를 양자로 줄까?' 라고 했더니 집사람이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더니 그날 저녁은 밥도 주지 않더군요.
그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가서 강단에 무릎꿇고 앉았는데 억울해서 기도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너는 아들이 셋 있지 않느냐 나는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데 나는 그 아들을 죽는 자리에 내 주었다.' 고 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셋 중에 하나를 출세시킬테니 양자로 달라고 하는데도 이렇게 억울하고 마음이 아픈데 그분께서는 내 죄를 위하여 죽는 자리까지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완전히 저를 붙잡아 버렸습니다. 이런 크신 희생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내 뜻을, 내 삶을, 내 인생을 내가 경영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그분의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줄줄이 흐르는 보혈의 공로로, 그분의 지극하신 사랑과 역사하심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덮어버렸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가운데 살아있는 한 내 것은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구절을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와 생기를 소유한 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은 부활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는 분입니다.
내 신뢰의 대상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쓰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불가능이 있습니까? 그분에게 신실하지 못한 것이나 불리한 것이 있을까요? 그분에게 지혜가 부족할까요? 그분이 여러분에게 사기를 치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분을 의지하는데 그분이 몸을 피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재산을, 인생을, 문제를 그분께 맡길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것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나의 의지가 되시고 반석이 되시며 우리안에 오셔서 우리 삶의 경영자가 되시고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인생의 소원을 맡기고 내가 주인이 아니고 그분이 주인인 것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재능과 경험과 인생의 삶은 그분이 나를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의 현장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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