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하나 (엡 01:11-14)

첨부 1


초창기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는 가장 큰 구분이 유대인 교회냐 이방인 교회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분을 극복하기까지 그리스도의 교회는 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베드로가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지도자가 오셨으니 안디옥교회의 대접이 얼마나 융숭했겠어요? 그래서 아마 성대한 파티가 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갑자기 이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베드로가 혼비백산해서 식탁을 떠났습니다. 아직까지 유대인들로서는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던 다른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서 식탁을 떠났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바나바까지도 슬그머니 뒤로 숨었습니다. 그러니 안디옥교회의 신자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겠어요? 또 베드로나 다른 교회의 지도자들로서는 외식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 아닙니까?

결국 세월이 흘러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공의회였습니다. 그 이후 교회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려고 할 때마다 이런 회의를 열게 되지요. 그래서 초대교회사를 보면 니케아 회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이런 식으로 회의를 열어서 이단을 정죄하고 정통교리를 확립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예루살렘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율법의 규례를 강요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자칫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 생겨날 수도 있었던 분열을 막을 수 있었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온 우주의 주 되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은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을 갖게 되기에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과 달라야 했고 함부로 그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자존심과 자부심이 유대민족을 지탱시켜 온 정신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주어졌다지만, 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하루아침에 쉽게 없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이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그들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방인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선 유대인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우리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택하신 분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무슨 말입니까?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가운데는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이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던가요? 그보다 마음대로 안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대통령이라면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요즘 재벌개혁 하는 일만 보아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주로 독재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 독재자들의 행위에는 비난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설령 마음먹은 대로 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독재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적인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선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비를 논할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그 행위가 가장 선하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유대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원문 성경을 번역하기에 따라서 이 부분을 '기업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기업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기업이 되었다고 번역했는데, 잘 된 번역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기업을 되찾으려고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제물이 되셨다고 그랬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기업이 된 조건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문맥상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것만 알았지 이 조건이 뒤따른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보호하시고 유지해 오신 목적이 오로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들을 보면 11절을 '그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계속해서 그 목적이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는데, 12절 역시 우리말 번역이 명확하지 않지만, 한글 새번역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어성경들도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도 그런 의미이지만 뜻이 분명하지가 않지요?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이방인에 앞서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게 하신 것이라는 말이지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은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오실 그리스도를 잉태한 모체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혈통을 통해서 오실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중요한 것이고 유대인의 의미와 가치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된다면 그들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바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지요. 지금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머리요 주인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고, 그 기업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과 정통성을 에베소교회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너희'가 주어로 나오지요? 이 너희는 물론 이방인들입니다. 이 이방인들이 진리의 말씀, 곧 이방인의 구원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한 구원의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비록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었고, 또 그들이 맨 먼저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었을지언정, 지금의 문제는 그 구원이 이방인을 위한 구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구원받는 데 있어서 이방인이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진리의 말씀이 유대인을 위한 구원의 말씀이라면 이방인이라는 것이 상당한 문제가 되겠지만,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기업이 된 조건과 똑같은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을 성령께서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계약서를 쓰면 인감도장을 찍어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처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시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이 성령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시는지 14절을 보세요. 그가 기업에 보증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증 잘못 섰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보증을 선다는 것은 어떻게든 그 계약이 성사되도록 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보증인의 재산을 담보로 내놓는 것입니다. 보증인이 있으면 나중에 그 보증인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그 계약 자체는 유효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구속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지난번에 살펴보았지요? 그렇게 구속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을 성령께서 보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이 구원을 받은 것이나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이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교회가 따로 있거나 이방인 교회가 다른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같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이들은 아직도 선택받은 민족과 불결한 이방인으로서의 구분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더 이상 특별한 선민이 있을 수 없고 더 이상 함께 식사도 할 수 없는 이방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이 놀라운 능력과 섭리가 우리를 한 형제와 자매로 맺어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그래서 한인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처럼 키위 교회도 사모안 교회도 그리스도의 교회요, 장로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처럼 성공회와 감리교회도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요,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