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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출사표 (엡 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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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출사표 (엡 6:10-13)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전쟁이 있어왔습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두 집단 간에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상대방이 미워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쟁을 해서 많은 이익을 얻는 수도 있겠지만, 평화가 정착되고 전쟁으로 인한 부담과 두려움이 없이 살아간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내가 하기 싫다고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쪽에서 전쟁을 걸어오면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맞붙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전쟁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전쟁에는 은메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패망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무슨 수단이라도 다 동원해서 우선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래서 비열한 방법도 동원되고 무자비한 상황도 전개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전쟁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국가는 전쟁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제가 군대를 갔었습니다.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고 끌려갔지요. 국가를 보호하는 국민의 신성한 의무인데 영광스럽게 생각해야지 끌려갔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죠. 그래서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면제를 받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군대에 가니까 그래도 월급을 주더군요. 억지로 끌려갔는데 월급을 주니까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 월급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처음에 한 40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하사로 진급해서 13000원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군대생활을 지독히 싫어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군대체질이 아니었어요. 군대가 체질에 딱 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군대생활이 즐거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졸병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훈련이 힘들고 엄격한 규율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은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내 의사와 의지가 완전히 무시되는 곳이 군대였단 말이죠. 밖에를 나갈 수가 있습니까? 어디 가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가 있습니까? 늦잠을 한번이라도 실컷 잘 수가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습니다. 한번은 산에 올라가서 보초를 서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지금 얼마나 자유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뭔가 하면 바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지요. 자유를 지키는 자의 부자유, 참 대단한 모순이지만, 대단한 발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 대비해야 할 것이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군대 안가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아주 박살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자유가 없는 생활을 감수하고라도 군대를 가야 하고 전쟁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느닷없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쟁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다 군대에 가라 이거죠.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변화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하는 말이 전쟁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고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준비를 해야 하는가, 그 이유와 의미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황제가 되긴 됐는데 전쟁을 지휘할 능력도 없고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기개도 없는 유선에게 제갈공명은 두 차례에 걸쳐 출사표를 올립니다. 나가서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갈공명이라고 평화보다 전쟁을 좋아했겠습니까?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에베소 교인들이 준비해야 하는 전쟁은 어떤 것입니까?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 말은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목은 내란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떠들며 따랐는데, 뻔뻔스럽게도 그 환호와 칭송을 한 몸에 누렸다는 것이지요. 지금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치하에 있으면서 틈만 있으면 독립을 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는 것은 그 로마의 지배를 뒤엎고 독립해서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는 것이라고 몰아부칠 수 있는 일이지요.

그 말에 빌라도가 묻습니다. '흠, 반란 모의를 했다 이거지? 그게 사실이냐? 그래, 네가 정말 유대인의 왕이냐?' 만약 예수님이 그렇다고 시인한다거나 고발자들이 증거를 들이대면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 자체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지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맞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 그러나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만약 세상에 속한 나라였으면 나의 군대가 너의 군대나 혹은 나를 붙잡아온 유대인들과 싸우지 않았겠느냐? 지금이라도 구출작전이 벌어지고 있지 않겠느냐?' 이 말에 빌라도는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왜냐하면 빌라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인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세운다면 빌라도의 권력이나 로마 정부에게는 아무런 도전이나 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란이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비록 예수께서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오셨지만, 예수님은 그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다른 당사자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사탄은 무자비한 공격을 개시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재빨리 피신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얼마간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또 한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후 계속해서 예수님과 사탄과의 전쟁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최후의 일전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두 나라 사이에 총력을 다 동원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빌라도가 속한 로마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거두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전쟁을 제자들의 손에 맡기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전쟁에서 큰 타격을 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사탄은 제자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라면 얼마든지 해볼 만하다며 덤벼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라는 제자가 어이없이 전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3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도 그만 맥없이 사탄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 사탄 진영의 용맹한 장수가 한 사람 나와서 제자들의 진영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이라는 사람이었지요. 일이 급하게 되니까 하늘에서 예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굴복시키셔서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 후 사울은 예수님 편이 되어서 이번에는 사탄의 군대를 상대로 종횡무진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보기에 이 바울이 얼마나 눈에 가시 같았겠어요? 바울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옥에 갇히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배가 세 번이나 파선했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 등등 안 당한 위험이 없습니다. 또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사탄의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그러니까 아직도 사탄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험 많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장군으로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 전쟁에 올바로 대비하도록 출사표를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 역시 사탄의 집중적인 공격대상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베소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2장에서 그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자들, 즉 사탄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을 배반하고 그리스도의 진영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볼 때 얼마나 열받겠습니까? 먼저 손을 봐야 할 대상이 되지 않겠어요? 만약 에베소 교인들이 군대 가는 것 귀찮고 힘들다고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는 큰 일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탄은 누구를 주로 공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가장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물론 예수님이었습니다. 왕만 붙잡으면 나머지 군대는 더 이상 싸울 것도 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열심 있는 지도자들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또 사탄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믿음이 자라나는 사람들이 우선 공격 대상입니다. 믿음이 쑥쑥 자라고 있는데 사탄이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겠어요? 예수 믿고 나서 금방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놔두고 믿는 둥 마는 둥, 그래서 건드리기만 해도 툭 넘어질 사람들을 공격하러 가겠어요?

만약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의 교훈대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게 된다면, 맨 먼저 겪게 될 일이 바로 사탄의 집중공격일 것입니다.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난이 닥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사탄이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가하게 평화를 즐기고 있을 그런 때가 아닙니다. 전쟁중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탄과의 전쟁을 피하려면 슬슬 사탄의 비위를 맞춰주고 적당하게 타협하면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어도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의 50%로만 사랑하고 나머지 50%는 다른 것을 사랑하고, 이렇게 살면 사탄과 전쟁을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길 때 고난이 닥칩니까?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낙심되는 일이 생깁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믿음을 공격목표로 삼은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격을 당해서 그 믿음이 무너져야 되겠어요? 우리도 나가서 싸워야지요. 나가서 전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왕국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웃과 아옹다옹 다툴 때도 있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대적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켜서 멸망으로 끌고 가려는 사탄입니다. 이 사탄과의 전쟁에 올바로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생존을 좌우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에 있습니다. 전쟁 중에 있는 병사가 한가하게 휴가를 가거나 늦잠 못잔다고 불평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이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입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자신의 경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나서십시오. 이 전쟁은 피할 수도 없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믿음을 굳게 해서 전쟁에 나서는 용사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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