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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완전군장 (엡 0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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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완전군장 (엡 6:14-17)

제가 군대 있을 때 제일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는 비상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비상은 시와 때를 구별하지 않고 걸립니다. 일단 비상이 걸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만두고 신속히 전투태세를 갖추어 연병장에 집합해야 합니다. 한참 자고 있는 밤중에 비상이 걸리기도 하고, 식사시간이나 빨래하고 있을 때, 또는 화장실에 있을 때도 비상이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출동인원과 장비가 파악되어 보고되느냐 하는 것으로 전투력의 한 부분이 측정됩니다. 그러니 비상이 걸리면 정신이 없지요.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맨몸으로 뛰어나갈 수는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전투를 할 수 있는 복장과 무기를 모두 챙겨가야 합니다. 그 상태를 완전군장이라고 하는데, 차후에 보급될 물품은 제외하고라도 현재 지급되어 있는 장비들 중에서 규정된 것들을 빠짐없이 챙겨 나가야 합니다. 실제상황이 아니라 훈련으로 비상이 걸린 것이라면 집합 후 군장검사를 합니다. 군장이 튼튼하게 잘 꾸려졌는지, 빠진 장비는 없는지 검사를 하는데, 지적사항이 나오면 그만큼 대가를 받게 되겠지요.

이렇게 완전군장을 한 군인과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두 사람이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힘이 좋고 날쌘 사람이라도 맨몸을 가지고 총과 실탄, 수류탄, 심지어는 야간조준경, 방독면을 갖추고 철모를 쓰고 군화를 신은 사람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무장을 한다는 것은 전투력을 몇 배로 증강시켜 주기 때문에 전투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생활이 바로 전쟁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성도가 왜 전쟁에 나서야 하는가 하는 얘기를 했었지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집어삼키려도 달려들 때, 그대로 앉아서 당할 것이 아니라 나가 대적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 마귀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전투력을 증강시킬 수 있을 것인가? 늘 고민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지도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앞에서 늘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누구였겠어요? 바로 로마의 군인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군대는 발달된 장비와 전술로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그 로마 군인들이 무장한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바울은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구나! 그리스도인이 마귀와 싸우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바로 이것이구나! 그래서 그는 펜을 들어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무장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지요.

맨 먼저 말하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옷에서 허리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복장에서는 허리띠가 중요하지요. 특히 군인들의 복장에서는 겉옷 위에 매는 커다란 허리띠가 있습니다. 그런 커다란 허리띠를 매면 활동하기에 불편할 것 같지만, 중무장을 해야 하는 군인으로서는 이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면 이 허리띠를 풀어 던져야 하겠지만, 무장을 한 군인으로서는 이 허리띠가 무장의 기초입니다. 이 허리띠에다 여러 가지 장비나 무기를 매달기도 하고, 또 허리띠를 매야 복장이 정돈되고 허리가 힘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허리띠는 어떤 허리띠여야 하는가 하면 진리여야 합니다. 진리로 우리 무장의 기초를 삼아야 합니다. 또 진리가 우리 무장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집을 짓고 값비싼 것으로 치장을 해도 기초가 헛된 거짓이라면, 그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무장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맨 먼저 진리 안에서 이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꼭 붙잡아 매야 흔들리지 않겠지요.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버클을 찰칵! 하고 채운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버클 채우는 것을 생각하면,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생명줄에 버클을 채우는 것이 연상됩니다. 또 자동차에 타서도 안전벨트의 버클을 찰칵 채웁니다. 암벽을 기어오르다가 실수로 발을 헛딛었을 때 생명줄에 연결이 되어 있다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는 한 그 생명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전혀 다치지 않았던 것은 안전벨트를 맸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전벨트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한 안전벨트를 맨 사람은 안전한 것이지요.

마귀와의 싸움에 나가는 성도가 진리를 허리에 버클 채웠다면 그 사람은 진리에 매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예수께서는 '너희가 진리를 알기만 하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실 때 '내가 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다'고 하시니까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이겠지요. 더 나아가 요한은 자신이 진리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요 14:6). 그렇다면 진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사실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진리를 알고 확신하면 의심할 것도 없고, 궁금해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회의와 불안, 불확실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진리 안에 확실히 서는 것, 이것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첫 번째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 사도가 말하는 것은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는 가슴에 붙이는 보호대입니다. 가슴은 특별히 보호해야 할 곳입니다. 팔이나 다리를 다치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가슴을 다치면 치명적이지요. 가슴 속에 중요한 기관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사격연습을 하면 어디를 조준합니까? 바로 가슴입니다. 또 가슴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가장 맞기 쉽습니다. 물론 방패를 확실히 들고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전투가 치열해지다 보면 방패를 놓치는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럴 때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가슴에 흉배를 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곳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으로 하는가 하면 바로 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우리가 의로울 때 마귀는 우리를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습니다. 성도가 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의가 완전하다면 그 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되지요? 우리가 욥만큼만 의로워도 그 의를 내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이 의를 행하기 위해 마땅히 힘써야 하겠지만, 우리의 의를 가지고 흉배를 붙인다면, 우리의 가슴은 벌써 벌집처럼 구멍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의를 힘입어 그것으로 흉배를 붙여야지요. 그리스도의 의를 나의 가슴에 붙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가슴에 붙였으니까 이제 나는 안심이다 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불의가 행해진다면, 누가 그 흉배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가 당장 그 가짜 흉배를 알아보고 공격을 해 올 것입니다.

그 다음의 무장은 군화입니다. 군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군화만 신으면 무조건 태권도 1단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샌들을 신고 나갈 수는 없지요. 그런데 성도의 군화는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안 또는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준비된 상태, 바로 그것이 성도의 군화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있을 때 캐나다에서 온 어떤 단기선교팀이 일정을 다 마치고 공항으로 갈 때 그 중 몇 명을 제 차에 태워서 데려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국말이 서투른 고등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한참 운전을 해 가는 중에 뒤에서 이 학생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발바닥은 아름다워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지요. 이게 무슨 소리야? 얘가 언제 내 발바닥을 봤나? 그러자 옆에 있던 전도사님이 말했어요. '이 녀석아, 발바닥이 아니라 발이야.'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라는 구절을 인용한다는 게 그 모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 웃었지요.

바울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글에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라는 구절을 로마서에서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 개념을 여기에 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즉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이것이 성도의 발에 요청되는 무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태권도 1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복음은 왜 평화의 복음입니까?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평화조약을 맺고 더 나아가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가서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싸우신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이처럼 안 해도 되는데 하면 더 좋은 성격의 일이 아니라, 성도가 싸우게 되는 영적인 전투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슬리퍼를 신고 전쟁에 나간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이것들 외에 추가로 가져야 할 것이 있는데 방패입니다. 이 방패는 적군의 불화살을 막는 데 사용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향해서 불화살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댑니다. 그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마귀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시험하고 참소합니다. 사탄과의 전쟁에서 이 믿음이 필요한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이 불화살 하나를 날렸습니다. 그들도 믿음의 방패를 갖고 있었겠지만, 갈대로 엮은 방패였는지, 사탄의 불화살은 그 방패를 뚫고 들어와 여지없이 그들을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보다 사탄의 제안이 훨씬 좋아보였던 것이지요. 사탄이 큰 마음먹고 또 하나의 불화살을 날렸습니다. 이번에는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향해서 날린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메시야라는 믿음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패는 튼튼하고도 남아 연속 세 발의 불화살을 꺾었습니다. 불화살은 당시의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였을 것입니다. 그 불화살에 맞으면 살아날 수가 없지요. 지금 같으면 사탄이 대포를 쏜다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바울 사도가 묘사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믿음의 방패 뒤에서 안전하십니까?

또 하나의 장비는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았다는 확신과 그 소망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군이 칼로 나를 내리칠 때, 투구가 내 머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을 때 나의 지성과 의지가 보호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떠나서 머리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자칫 마귀의 공격목표가 되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되어 있는 무기는 칼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방어용 무기였는데,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가 등장하고 있지요? 사탄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리치기 위해서는 공격을 해야 하는데, 그때 사용되는 무기가 바로 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도 사용하셨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했지요? 책 속에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단순히 종이에 기록되어 있는 글이나 어떤 사상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구원을 이루시고, 또 사탄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듣는 사람에게 구원의 약이 되고, 사탄에게는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한 무기가 되어 그를 물리치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알아야 사탄을 대적해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전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뎌져서 때로는 총소리도 잘 안들리고 화약냄새도 맡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 편하게 군화를 벗고 방패도 내려놓은 채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적 마귀는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려 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늘 정신을 차리고 단단히 무장을 해서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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