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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군사전략 (엡 0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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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군사전략 (엡 6:18-20)

바울은 예수를 믿고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저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늘 공격과 도전에 직면해야 하는 전투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공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서 성도는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그 전쟁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무기들에 대해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적군의 공격조짐을 파악하고 무기까지 준비했다면 이제 남은 일은 전쟁에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무기를 준비한 것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이끌어갈 전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무기의 성능이 좋아도 좋은 전술이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에게 번번히 패한 주유가 이렇게 탄식하지요. '하늘이 주유를 내셨거늘 어찌하여 또 공명은 내셨나이까?' 삼국지는 전술 중심의 전쟁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전술에 따라 갈리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좌우하는 것은 관우 같은 장수가 아니라 뒤에서 작전을 세우는 제갈공명 같은 전략가입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 나가면서도 좋은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싸움에서 승리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제 그 싸움을 어떻게 싸울 것인지, 어떤 전술을 가지고 전쟁에 임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전술은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지요? 모든 기도라는 것은 모든 종류의 기도라고 이해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한두 가지의 기도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면 다같은 기도지, 기도에도 무슨 종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요. 기도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공적인 기도가 있고 사적인 기도가 있겠지요. 여럿이 함께 합심해서 하는 기도가 있고 혼자서 비밀리에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가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기도가 있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해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기도와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의 기도가 있습니다. 또 기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죄의 고백이고, 그 다음은 자비의 간구, 그리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키위들 기도하는 것을 보면 다 감사뿐이지요. '땡큐 로드'로 시작해서 땡큐로 끝납니다. 반면에 우리 한국 교인들 기도하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옵소서'뿐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주시옵소서'가 될 수밖에 없지요. 과거에 우리 조상들의 종교적 행위에서,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달밤에 신령님께 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신령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신령님이 복을 주셔서 감사하기 위해서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뭔가를 요구하고 그것을 허락받기 위한 도구로 기도라는 종교적 행위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발견되는 기도의 개념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입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에는 우리의 요구가 당연히 포함되지요. 그러나 쌍방의 의사소통 속에 이 일방적인 요구만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가 없겠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요구사항을 말씀드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을 귀담아 들어야지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해 주시면 듣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렇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생각은 어떠세요?' 이런 식으로 대화가 되고 쌍방의 의사가 교환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기도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요.

이 기도를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전술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도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무시로'라는 말은 '모든 때에'라는 말입니다. 헬라어로 '판티 카이로'인데, 판티는 '모든'이라는 말이지요. 영어의 pan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Pan America라고 하면 범아메리카라는 말이지요? '카이로'는 '카이로스' 우리가 잘 아는 단어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어떤 특정한 때를 말하는 단어지요. 그러니까 '판티 카이로' 하면 '모든 경우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기도는 전천후 전술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술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때가 있고, 사용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게 된 오나라와 촉나라 연합군은 화공법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육계를 써서 조조의 함대를 모두 묶도록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배에 불만 붙이면 끝장이 나는 거지요. 그러나 계절이 화공법을 쓸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동남풍이 불어야 화공을 할 것인데, 계절이 겨울이라 북서풍만 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유는 그 고민으로 병이 들어 눕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말하기를 모든 경우에 기도라는 전술을 사용해서 전쟁에 임하라고 합니다. 이 기도는 동남풍이 불 때나 북서풍이 불 때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도 기도할 수 있고 병들었을 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즐거울 때도 기도해야 하고 슬플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있을 때나 낙심되었을 때나 언제나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말 번역처럼 무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 채널이 항상 열려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호흡은 잠시도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늘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바울 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도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잘하고 상받을 일이 아니라 기도 안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하루 24시간 항상 기도만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이 늘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투에서 기도를 전술로 삼는다는 것은 이 전쟁을 우리의 능력이나 힘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싸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와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며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많은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전쟁에 참전하시도록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전술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한편이 되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가 어찌 기도를 안하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내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면 기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승천하신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성령께서 오셨고 지금도 성도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가 효과가 있게 하시고 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혹은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니 성령이 없이는 기도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처럼 기도는 우리 성도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우리 교회에서 부족한 부분이 기도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에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성도가 각자 전투에 임하는 군사라고 한다면, 교회는 군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군대에 전술이 없다면 어떻게 군사들에게 나가 싸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이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열심이 있어도 기도가 없다면 성도의 삶이 메마르고 결국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성능이 좋은 무기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을 예비한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기도가 없으면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전략부재의 부실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자기 힘만 믿고 이리저리 날뛰다가 지쳐 쓰러지는 꼴입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이 기도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여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군사력은 두 배, 세 배로 증가되지 않겠어요? 모든 사람이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것은 작은 수류탄 터지는 것과 커다란 핵폭탄이 터지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면서 그 중 자신을 언급합니다. 자신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으로 백전노장으로서 수많은 전투에서 셀 수 없는 승리를 거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복음을 증거하는 자신의 사역은 성도들의 기도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가 얼마나 말을 잘했던지 루스드라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허메, 즉 제우스 신의 대변인인 헤르메스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서든 말을 못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직 그는 자기 입술에 말씀을 주셔서 담대히 증거할 수 있게 되도록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야말로 복음 전하는 이 영적인 전투에서 기도를 전술로 삼고 있는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들고 선교지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분들이 수행하고 있는 전투의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지요. 목사가 신령한 말씀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헛소리나 하고 엉뚱하게 잘못 가르치면 교회의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지요. 우리 교인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싹트게 되고,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도의 삶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가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물론 기도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성도가 기도로 모든 일에 임할 때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늘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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