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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엡 04: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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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에베소서 4:13-15)

요즘 세상은 온통 컴퓨터에 관련된 이야기들뿐입니다. 신문을 보아도 맨 컴퓨터 광고뿐이고 인터넷이니 e-비지니스니, 네티즌, 인티즌, ⓝ세대, 거기다가 무슨 닷컴이니 하는 생소한 용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모르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신문화원에서도 최신형 컴퓨터를 몇 대 구입해서 인터넷을 비롯해서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컴퓨터 반을 개설했습니다. 신청자가 밀려서 상당한 빽을 쓰지 않으면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화요일과 수요일 컴퓨터 강사인 백목사님이 중국 출장을 가는 바람에 강사가 없어서 제가 강의를 했습니다. 수요일 같은 경우에는 오전 성경공부 한 시간 반, 오후에는 컴퓨터 강의 한 시간 반, 그리고 수요예배 한 시간, 모두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었더니 목이 잠겨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생한 만큼 얻은 것이 있습니다. 컴퓨터를 강의하다 보니 누가 IQ가 높고 누가 낮은가 하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한 시간만에 파악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새 학생들이 들어오면 제가 한번씩은 꼭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컴퓨터가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다보니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앞으로 사이버교회라는 것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 즉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컴퓨터 안에만 존재하는 공간 속에 교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날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사이버교회로 들어가면 멋진 예배당 광경이 나타나고, 사이버목사, 즉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람이 그림으로 그려서 만든 목사가 나타나서 멋진 설교를 하고, 그 다음에는 사이버성가대가 나타나서 성가를 부르고, 그리고 헌금은 그 자리에서 크레디트 카드로 결재해서 송금을 하는, 그런 교회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차를 타고 시간에 맞추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보다는 아무 때나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이버교회가 곧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 징조가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는 참으로 개탄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골프를 즐기는 분들이 주일 날 교회는 가야되겠고, 골프도 쳐야되겠고,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골프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학교 교목이라든가 주일 날 별로 할 일 없는 목사를 초빙해서 주일날 아침에 골프장 클럽 하우스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시합에 들어갑니다. 예배도 드리고, 골프도 하고, 일석이조입니다. 이런 풍조들이 점점 밀려오고 있는데 앞으로 사이버교회가 안 생긴다고 누가 장담을 하겠습니까?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 중에도 벌써 '아니,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나? 왜 진작 그걸 몰랐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표정을 보면 다 압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교회의 본질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네 가지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 교육, 전도, 봉사입니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성경말씀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복음을 들고 나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곳입니다. 이 네 가지, 즉 예배, 교육, 전도, 봉사가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는 일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주일날은 온전히 예배하는 날입니다.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수요예배와 기타 성경공부 시간들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시간들입니다. 이때에는 성경 구절 하나 하나에 담겨진 뜻을 세밀하게 공부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는 선교위원회가 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홍콩의 지역 특성상 전도라는 개념보다는 선교라는 개념이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위원회에서는 중국은 물론이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셔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여러 가지 조직들이 있습니다. 남선교회, 여전도회, 청년회와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참여해서 바자회도 하고, 교회 청소도 하고, 또 이웃을 돕는 일도 하고, 이렇게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예배, 교육, 전도, 봉사, 이 네 가지를 균형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하면 누구나 그 신앙이 골고루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는 순간에 바람같이 사라지는 분은 아직은 제대로 된 교인이 아닙니다. 예배만 드릴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또 열심히 봉사만 해서도 안됩니다. 성경말씀을 배우는 일이 동참해야 합니다. 내 믿음만 잘 지켜서도 안됩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자라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 말씀했습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과, 그 분의 인내와, 그 분의 낮아지심과, 그 분의 희생을 닮아 가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디서 이 훈련을 받습니까? 어디서 원수를 사랑하는 훈련을 받고, 어디서 못 볼 것을 참아내고, 어디서 남보다 나를 낮추는 훈련을 받습니까? 어디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훈련을 받습니까? 교회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교회에서만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앙수준이 어디에 와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제 2남선교회에서 볼링대회를 했습니다. 제가 시구를 했는데 멋진 스트라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공이 옆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하네, 오늘은 왜 이렇게 안 맞지? 오늘은 잘 안되네.' 이러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높은 점수 한번 나오면 평생 그것이 자기 실력인 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그 생각만 하고 '내가 이래봬도 몇 점을 치는 사람인데 오늘은 안되네.' 그러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자기 실력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수준에 와있는가를 알고 거기에 맞게 계획을 세워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쩌다가 좋은 일 한번하고, 훌륭한 일 한번 한 것 가지고 자기 믿음이 그 수준에 와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적인 수준이 어디에 와있는가를 알아봅시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잘 속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도 어린아이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흔들린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궤술'이라는 말은 본래 주사위 놀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가끔 서양영화에서 보듯이 돈을 걸어놓고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높은 숫자가 나오는 사람이 가지는 놀이가 있는데 이것을 '궤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력 없이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노력은 안하고 손쉽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면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우동을 사먹고 있으면 꼭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금번 저희 회사가 부도가 난 관계로 재고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모시기 위해 이렇게 나왔습니다.' 이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사기꾼입니다. 싸다고 샀다가는 반드시 후회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쉬운 방법으로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은 사기꾼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번 집회에만 참석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 기도원에 와서 일주일만 기도하면 소원 성취합니다.' 심지어는 '십일조를 먼저 백만 원 드리면 천만 원을 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궤술이라고 합니다. 주사위 한번 잘 던지고, 화투장 한번 잘 뒤집어서 큰돈을 벌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쉬운 길은 없습니다. '나 장로 시켜주면 잘할게' 이런 법은 없습니다. 서리집사부터 시작해서 잘하네 못하네 온갖 욕도 다 들어야 하고, 남선교회 임원 하다가 안한다고 사표도 써봐야 하고, 안수집사 되게 해달라고 교인들에게 온갖 아양도 떨어야 하고, 안수집사가 왜 그 모양이냐고 목사한테 욕도 수없이 들어야 하고, 장로 선택을 받아놓고도 장로고시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이 있고, 이렇게 모든 과정을 다 거쳐서 장로가 되고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의 말씀대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이런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야 합니다. 매일매일 열심히 성경을 읽으셔야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도 해야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인내하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가 성숙한 사람이 되었더라.' 이런 것은 없습니다. 내가 애쓰고 노력한 만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로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잘합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은 주로 자기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이냐, 자기가 사는 집이 몇 평이냐, 이런 것을 비교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대학 교수다.' 그러면 다른 아이가 '야 대학교수면 뭐하냐? 돈이 많아야지, 우리 아버지는 돈 많은 사장님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야, 돈 많으면 뭐하냐? 우리 아버지는 키가 190cm다.' 그러면 다 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모처럼 결혼 기념일을 맞아서 남편이 큰맘먹고 진주 목걸이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구역예배에 갔는데 누가 다섯줄 짜리 진주 목걸이를 하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빼버리고 왔다는 것 아닙니까.

보석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 마디 더하고 넘어갑니다. 남편이 자꾸만 다이아 반지, 진주 목걸이, 이런 것을 사다 주거든 일단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남자들이 부인에 대한 애정이 식으면 이런 것으로 대신 때우려고 합니다. 어디 가서 다른 여자가 생겼을 때는 특별히 비싼 반지를 사다줍니다. 미안한 마음을 선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저같이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은 뭘 사다주는 것으로 점수 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안 사다 주는 남편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아시고, 일평생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 있다가 없어질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면 아직은 멀었습니다. 아직은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 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느냐? 나는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하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서 당대 최고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따지면 사도바울은 자랑 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바울은 세상 것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분 안에 있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의 지식과, 세상의 재물과, 세상의 지위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사신다면 아직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입니다. 이제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내가 그 분 안에 사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뜻대로 살았다. 오늘도 주님의 뜻대로 사랑했고, 오늘도 주님의 뜻대로 참았고, 주님의 뜻대로 용서하며 살았다. 나는 오늘도 주님 안에 살았다.' 이런 자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어린아이는 자기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부모들이 저녁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가면서 아이들보고 '야,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라.' 그러면 아이들이 '네'하고 대답을 씩씩하게 잘 합니다.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고 저희 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갔다와서 '어디 보자. 어느 만큼 공부했니?' 물어보면 하나도 안 해놓고 있습니다. TV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해서 그것만 보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그만 잠이 와서 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꼭 옛날에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아무 소리 안하고 '그래, 들어가서 마음놓고 자라.' 하는데 제 아내는 마구 야단을 칩니다. 아마 제 아내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상당히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해야되는 줄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처럼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따져보면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보다는 헐뜯고 깎아 내리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랑해야 할 이유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미워해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기 감정대로 살면 안됩니다. 내 감정은 미워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사랑해야 합니다. 내 감정은 깎아 내리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높여주라고 하셨으니 높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의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이유가 감정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경 읽을 분위기가 아니야.' '오늘은 기도할 기분이 아니야.' 그래서 일평생 성경 한 장 못 읽고 기도 한번 못하고 간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감정을 내세우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구구단을 외울 때 왜 삼삼은 구인지, 사구는 삼십 육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외우셨습니까? 그냥 외워두니까 평생 써먹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실천하십시오. 감정 따지지 말고, 왜냐고 묻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시면 사랑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낮아지라고 하시면 낮아지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기를 써본 일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일기장의 첫 장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 때문입니다. 처음 쓰는 일기인데 그래도 첫 장은 근사한 사건이 있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기다리다가, 정작 근사한 사건이 생기면 정신없이 다니다가 잊어버리고, 그래서 아직까지 첫 장을 못쓰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미루다보면 기회가 다 지나갑니다. '언젠가 내가 한번 멋있게 시작하리라.'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 평생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마시고 오늘부터 한 걸음씩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발걸음을 내디디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열심히 말씀을 읽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때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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