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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자도 천국에 간다 (딤전 0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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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 천국에 간다 (딤전 6:17-21)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여쭈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계명들을 열심히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인증을 받으러 온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증 받기는커녕 그렇지 못하다는 것만 확인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폭탄선언을 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에 제자들이 심히 놀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놀래키려고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장난삼아 한 농담이 성경에 기록되었을 리도 없습니다. 그 사실 때문에 그 젊은 구도자는 근심하며 돌아갔고,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전혀 놀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젊은 관원처럼 근심하지도 않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감동을 주지 못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무시하며 삽니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모두들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설령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말씀을 마치 예수님의 재치있는 농담쯤으로 받아넘깁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우리 인생이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 청년처럼 근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 그렇게 심각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냥 이렇게 모르는 체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괜히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그 문제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 편하겠지요. 솔직히 여러분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나 사실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약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거대한 혼란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우선 교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오른 예배당들은 폭파되든지 아니면 국가에 반납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계상에 나타나지도 않는 교회의 재산들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안수기도 한방에 백 만원씩 받았다는 목사님과 거대한 사설왕국처럼 되어 있는 대형교회들은 낙타보다 훨씬 큰 몸집으로 바늘구멍보다 작은 하늘나라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요?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가겠다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포기한다면 국가의 경제가 일시에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기독실업인연합회, 말하자면 부자 기독교인 모임 같은 집단은 그 존재 자체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모조리 재산을 내버리고 가난하게 되면 국가에서는 기독교인 관리부를 신설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이 양심적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할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되기 위해서 자기 몸에 걸치고 있던 옷가지마저 다 벗어던지고 그렇게 빈 몸으로 집을 나갔던 프란체스코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프란체스코처럼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의도도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모든 소유와 재산을 버리고 거지가 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소수의 부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랬거든요.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천국에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큰 부자가 아니라 해도 좀 넉넉하게 사는 사람은 낙타는 아니라도 아마 돼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정도일 테니까요.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라도 어쩌면 토끼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정도는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소유가 전혀 없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구리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은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바늘구멍 통과하지 못할 것은 낙타나 개구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보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사람의 재주로는 개구리도 바늘구멍에 들어가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낙타라도 바늘구멍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부자들이 정말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 할 말씀입니다. 물론 부자들만 읽어야 할 말씀이 아닙니다. 낙타도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면 이 말씀을 읽어야 하고 개구리도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면 이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는 재산이 많은 부자들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교회에서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까 헛수고하지 말고 아예 일찌감치 포기하시오. 그럴 수는 없지 않겠어요? 오히려 그 부자들도 회개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목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부자들을 이렇게 가르쳐서 구원받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 디모데는 부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높인다는 것은 교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낮추어본다는 것이지요. 돈이란 인간의 마음을 태우고 다니는 구름과 같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마음도 낮아집니다. 그러다가 돈이 조금 생기면 마음도 그만큼 높아지지요. 돈이 많아질수록 마음도 더 높아집니다. 이것은 성품이 나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수현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즉 돈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고, 그래서 돈이 많은 부자는 대체로 교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잠 16:18)이라고 했어요.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한 것이 바로 이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데 무얼 못하겠어요? 그러나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사탄 역시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그렇게 높아지겠다는 교만 때문에 그렇게 타락한 것이었지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자기 분수를 알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다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도전이지요. 하나님으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같은 인간 사이에서, 같은 피조물끼리 누가 누구를 멸시하고 스스로를 높인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고,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 자신이 겸손의 모범을 보이셔서 종의 형체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겠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그 겸손함을 품으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겸손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이고,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돈이라는 것이 그러한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파괴한다면, 돈이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전혀 높아지지 않고 겸손하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그 돈을 믿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디모데가 부자들을 가르쳐야 할 내용은 그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먼 길도 걸어다녀야 했는데, 돈이 많아지니까 편안하게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됩니다. 돈이 없을 때는 남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는 멸시를 당해야 했는데, 돈이 많아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굽실거리고 내 눈치를 봅니다. 돈이 있으니까 아무리 어려운 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돈이 너무나 좋은 거예요. 돈만 있다면 이 세상을 천년 만년이라도 살고 싶어집니다. 즉 돈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행위는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이 되는데,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갈등도 어디서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불안할 때는 내세에 대한 소망이 깊어지고, 그래서 경건에 힘쓰게 되어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지면 이제 내세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게 됩니다. 한국이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부흥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국민들의 희생 위에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정부의 시책에 의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형편에서, 그리고 말 한 마디 잘못하면 큰 죄인이 되어야 하는 살벌한 폭력적인 권력 아래서 민중이 기댈 곳은 내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허리를 펴고 좀 쉴 만해지니까, 그리고 돈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조금 맛보게 되니까 내세라는 것이 별로 매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돈이 없을 때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돈이 우리의 소망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돈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게 되면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 다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하나님의 가치와 돈의 가치가 서로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즉 둘 다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이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만일 돈이 많으면서도 돈을 의지하거나 돈에 소망을 두거나 돈을 사랑하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부자가 되어도 좋은 사람이고, 이 사람은 부자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런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에게 돈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이냐? 왜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게 돈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부자라면, 아니 꼭 부자가 아니라도 우리에게 돈이 있다면, 그것은 그 돈으로 우리 배를 채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배를 채우려고 할 때 마음이 높아지고 그 돈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돈으로 천국에 가기 위한 길을 예비할 수 있습니다. 낙타에게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그 바늘구멍을 낙타가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대문처럼 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돈으로 내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돈이 주어진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그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차피 일시적인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만 있는 일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재산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는 동안에는 그 돈을 가지고 그 돈이 주는 든든함을 누리다가, 죽게 되니까 죽을 때는 어차피 그 돈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기왕이면 좋은 일이나 하자면서 내놓는다면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절대로 돈을 내놓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나를 위해 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선한 일을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돈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뭐가 됩니까? 공금횡령죄를 범하는 것이지요? 돈이 많으면서도 인색하지 않고 자기보다 남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그 돈이라는 낙타를 타고 대문처럼 넓어진 바늘구멍을 지나 천국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모든 교훈과 충고가 끝을 맺습니다. 그 마지막 내용이 돈에 관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돈에 관한 교훈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아무리 다른 부분에서 인정받았어도, 돈 문제에 걸리면 천국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돈은 천국가는 데 우리의 발목을 잡는 덫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돈으로 천국가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돈은 여러분이 천국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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