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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와 함께 죽어야 주와 함께 왕노릇 (딤후 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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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영어를 배울 때 자주 등장하던 속담은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이었습니다. Cross는 고통스러운 것이고, crown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Crown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인 반면에 cross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cross는 없고 crown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no cross, no crown'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crown은 고통스러운 cross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그러나 cross가 고통스럽고 너무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cross를 거치지 않고 crown에 도달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게 되고,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cross를 피해 crown을 얻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No cross, no crown이 아니라 no cross, only crown의 현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땀흘려 수고해서 평생 돈을 모아보아야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는 반면에,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주식을 재주있게 굴리면 쉽게 큰 돈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cross 없는 crown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cross 없는 crown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쁨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속이고 등쳐먹고 탈취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인간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일향 미쁘신 분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별로 상관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비겁한 수단으로라도 crown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향 미쁘신,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그래서 부정이나 거짓을 결코 용납할 수 없으신 하나님의 지배영역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cross 없는 crown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런 시도가 용납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요?

사도는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기억하는 것,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그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삶을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cross는 지나쳐버리고 영광스러운 crown만 얻으려고 하는 우리의 욕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어떻게 사셨는가를 기억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은 즐거움에 앞서 고통을 당하셨고, 기쁨보다는 슬픔을 먼저 겪으셔야 했습니다.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셨고, 존중되기 전에 먼저 핍박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 먼저 죽음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고, 하늘에서 경배를 받으시기 전에 땅에 계시면서 많은 증오를 견뎌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crown에는 cross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사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cross 없는 crown을 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종인 우리가 주인이신 주님보다 더 위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규칙은 cross를 거쳐서 crown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디모데에게 cross 없는 crown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디모데가 현재 당하고 있는 cross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cross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한 이유를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말라야 하는지, 그리고 이 땅의 거민이 악하여 짐승과 새들까지 멸절하게 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한번 논쟁을 벌일 참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슬픔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세요? '그래, 얼마나 슬프니? 얼마나 고통스럽니? 조금만 더 참아라...' 이렇게 위로하셨을 것 같지요?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한번 보세요.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렘 12:5). 무슨 말입니까? '고난은 이제 겨우 시작이야. 그 조그만 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서 어쩌자는 거냐? 너는 앞으로 말과 경주해야 할 만큼 큰 시련과 고난을 앞두고 있는데, 겨우 걸어가는 사람들과 경주하면서 힘들다고 불평하고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가지고 무슨 큰 일을 하겠다는 거냐?'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하시는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cross도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린이 길을 가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제가 업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나 한솔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짜증을 내며 업어달라고 했다가는 오히려 한 대 얻어맞을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에게는 감당해야 할 cross가 더 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고난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허용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웬만한 고난 앞에 못하겠다고 드러눕지 마세요. 쥐 한 마리 때문에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하지 마세요. 우리가 종종 시험에 들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뭐 올바른 용어의 사용을 아니지만, 사실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죽는 시늉을 하는 수가 많아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 지 생각해 보세요. 그것 좀 가지고 뭘 그렇게 엄살이냐? 그래가지고 무슨 큰 일을 하겠다는 거냐? 어떻게 너를 믿고 큰 일을 맡기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벌떡 일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cross를 허용하시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깔려 죽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사도 바울 자신이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고전 10:13).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cross는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의 그릇이 작고 믿음도 충분하지 않다면 작고 가벼운 cross만 주어질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또는 우리 교회가 성숙했고 믿음도 그만큼 자랐으면 그에 합당한 cross가 주어질 것입니다. Cross가 크고 무겁다는 것은 불평하고 쓰러질 일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자랐음을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싸인이라고 생각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지금 디모데는 교회 안에서 이단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고, 교회 밖으로부터의 박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목회자로서 그가 겪고 있는 cross는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 디모데의 그릇이 컸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는 계획이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가르치는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평생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대가로 지금 춥고 어두운 지하감옥에서 생명의 촛불이 꺼져가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의 사형집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초시계의 째깍거림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가 그러한 큰 cross를 담당해야 했던 이유는 그의 믿음이 더 위대했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그의 역할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정직하게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가운데 겪게 되는 커다란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피하고 도망치고 또는 절망하거나 불평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동반하는 cross임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cross의 대가가 crown이라는 사실입니다. 미쁨이 없는 우리 인간의 영역에서는 cross만 있고 crown은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Only cross, no crown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있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향 미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cross가 반드시 crown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법칙이 나옵니다. 작은 cross에는 작은 crown이 따르고, 큰 cross에는 큰 crown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작은 cross를 감당한 사람에게 큰 crown을 주시고, 큰 cross를 감당한 사람에게 작은 crown을 주실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큰 시험과 고난은 그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릇의 크기를 말해줌과 동시에 그 사람이 얻게 될 영광의 crown의 크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감당해야 할 cross를 몇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주와 함께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cross의 절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주님은 죽는 데까지 복종하셨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은 가장 낮아지셨다는 것이고, 가장 큰 cross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을 각오하면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그 주님처럼 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이것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최후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돈 몇 푼 더 벌 궁리를 하겠습니까? 만약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것도 두려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게 될 때, 그것은 모든 시험과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주님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죽음, 주님의 값있고 고귀한 죽음에 참여함으로써 그 죽음에 합당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의 감격과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시지 않았더라면 그 감격과 영광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죽을 각오로 고난을 참고 cross를 감당할 때에, 주님의 부활처럼 커다란 영광과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고난을 참으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을 참으면, 주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왕되심에 참여하고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되면 무엇을 다스리고 지배한다는 것입니까? 주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면 됐지, 또 우리가 뭐가 잘났다고 왕 노릇을 하고 다스린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저는 왕 노릇 한다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에서 내가 누군가를 다스리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나뿐만 아니리 모두가 다 왕 노릇을 하게 될 터인데,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한다는 것은 우리의 비천한 신분이 고귀하게, 그것도 황송하게도 주님의 왕되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왕 노릇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주님의 왕되심이라는 crown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주님의 죽으심이라는 cross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겪고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왕 노릇에 대한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격려와 위로에도 불구하고 디모데가 계속 헤매고 있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이러한 약속이 주어졌고, 이것이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생애를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제시되었는데도, 우리가 고난을 두려워하고, 쉽게 절망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 지치고, 그러면 곤란하겠지요? 모두 힘을 내라는 얘기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담대하게, 약속을 붙잡고, 우리 앞에 닥치는 시련의 파도와 고난의 폭풍을 뚫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렇고, 우리 교회의 일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지불하는 cross만큼 우리에게 crown도 주어질 것입니다. 그 crown의 영광과 감격이 능히 우리로 하여금 cross의 고통과 슬픔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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