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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날에 생각하는 아버지 (엡 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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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버지날이군요. 아버지날이니까 아버지의 은혜를 상기시키고 아버지의 수고를 위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다만, 오늘 저는 다른 각도에서 아버지를 조망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그 아버지가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모습으로 여러분의 기억에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아버지가 엄격하면서도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시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면,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 심지어는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천 년 전에 이미 사도 바울이 아버지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기 쉬운 자리에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모르겠어요, 제가 요즘 카운슬링을 배우면서 또 실습을 하고 하다 보니까 맨 그런 사람들만 보이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어머니들도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바울이 ‘아비들아’라고 말할 때 사실은 어머니도 포함된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1절과 2절에서는 분명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언급했거든요. 만약 바울이 아버지라는 단어로 어머니까지 포함하는 부모를 염두에 두었다면 1절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아비를 순종하라,’ 또 2절에서는 ‘네 아비를 공경하라.’ 이렇게 말을 했어야지요. 그런데 1절에서는 부모(parents)라고 말했고, 2절에서는 분명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같이 언급했단 말이지요. 그래놓고서 4절에서는 아버지(father)만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녀를 노엽게 하는 사람으로 바울이 어머니를 포함해서 말하고 있다고 하기는 곤란하게 됩니다.

제가 이것을 발견하고 나서 충격이 좀 컸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버지니까요. 이 말씀을 ‘부모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이해했을 때는 아내와 제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는데, 자녀를 노엽게 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만 지적을 당하니까 정신이 없네요.

어쨌든, 만일 여러분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아직도 품고 있다면, 정말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제 그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 때입니다. 아버지를 여러분의 그 분노 속에 붙잡아놓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지 말자는 거예요. 나를 정말 노엽게 했던 그 아버지, 나에게 너무나 함부로 하고 소홀히 했던 그 아버지를 이제 용서함으로 보내드리세요.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요. 마음 굳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용서하든 용서하지 않든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설령 살아 계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것보다 나 자신을 그 분노에서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내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노엽게 했던 아버지를 용서하는 방법 밖에는 없단 말이에요.

만일 나의 아버지가 나를 노엽게 하는 아버지였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입니다. 나는 내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있습니까? 나도 내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아버지는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구요? 그렇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지 아닌지는 자녀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딸을 키우면서 딸을 잘 키워보려고 너무나 애를 쓰는데, 딸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자기 생각과 달라서 얼마나 힘들어요. 엄마는 딸을 노엽게 하려는 의도도 없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기를 너무나 노엽게 하고 있어요. 이 딸의 입에서 만약 엄마만 아니라면 줘패주고 싶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듣고 얼마나 제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어머니는 빼줄 것처럼 얘기하다가 갑자기 딸을 노엽게 하는 엄마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자칫 방심하면 우리도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가 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맨날 아이들 눈치만 보면서 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자녀를 배려하지 못하거나 또는 부모 자신의 세계를 자녀에게 억지로 투영시키는 데서 일어나는 수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교훈은 궁극적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정직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녀를 양육할 때 거기에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아버지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하기보다 자녀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 자녀들과 의사소통도 되고 하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오늘 아버지날을 맞아 우리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한번 각오를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란 어떤 것인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를 요구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좋은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을 복되고 아름답게 세워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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