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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 (요삼 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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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이야기입니다. 궁실에서「왕비를 뽑는다」는 방이 붙자 전국에서 미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나와서 각인에게 쌀 한 되씩 주어 '이것으로 한 달을 산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쌀 한 되로 한 달을 사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몸이 뚱뚱한 어떤 여인은 이번 기회가 나에게는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쌀 낟알 하나 하나를 세어서 삼십 등분하여 현대판 다이어트에 들어갔습니다. 가난과 싸워 오면서 굶기를 부자 밥먹듯이 해 온 여인은 25일간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3일간은 보호식을 하고, 마지막 이틀을 잘 먹어 아름다움을 선보일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지혜로운 여인은 쌀 한 되를 가지고 떡 방아간으로 갔습니다.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장사를 했습니다. 쌀 한 되로 장사를 하니 남은 것을 먹고도 쌀 두되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달을 했더니 매 끼마다 맛있는 것을 사 먹고도 살 한 가마니 이상 남길 수 있었습니다. 왕과 약속한 날이 되어 다시 왕실로 모였는데 모든 여인들이 피골이 상접해서 기력을 잃고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고,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지경입니다. 이때 쌀 한 가마니를 떡을 해서 수레에 싣고 온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왕이 불러서 물으니 여인이 대답하기를 '왕이 준 쌀 한 되로 떡을 만들어 한 달을 장사하니 한 달 동안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라 오늘 궁실의 잔치에 베풀기 위해서 가져왔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때 왕이 말하기를 '너야말로 만백성의 지어미이다'하고는 왕비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인가? 지금 내게 있는 쌀 한 되를 헤아리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절약이 경제를 일으키는 비결인 줄로만 알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기로 작정했는가?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내게 있는 것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배를 남기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러한 자를 지혜로운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태복음 25:21)고 했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해야 할 것이 조금 더 빨리 변하는 것이 발전입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받아 들여야 할 것을 남보다 먼저 수용하는 것이 앞서가는 진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요 복음입니다. 이 진리에 기초하여 세워진 것이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입니다. 준비된 바탕 위에 꿈을 가진 자가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성경에 가이오라는 이름이 몇 곳에 나옵니다. 1.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입니다(사도행전 19:29).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에베소에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통해서 희한한 능력이 나타났고 에베소에 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을 극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 흥분된 에베소 군중에 의하여 바울과 함께 극장까지 끌려간 사람입니다. 2. 데베 사람 가이오입니다(사도행전 20:4). 그는 드로아에서 바울을 기다렸다가 예루살렘까지 동행한 사람입니다. 3. 고린도 사람 가이오입니다(고린도전서 1:14). 그의 집에서 교회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섬기는 식주인이 되기도 했으며,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때 그 집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로마서 16:23). 혹은 그의 이름을 유스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사도행전 18:7). 4. 사도요한의 수신자 가이오입니다(4). 본문의 유사성을 인정하여 위의 어떤 사람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으나 하나의 추측일 뿐입니다. .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내 자녀들이'(4)라고 한 것을 보아 사도요한에 의하여 복음을 받고 자란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1. 사랑받은 자입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1)고 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이오'(1)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1) '사랑하는 자여'(2, 5, 11)라고 부릅니다. 목회를 해 보면 가이오 같은 성도를 만나게 됩니다. 양무리들 가운데 특별히 사랑스러운 가이오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행하는 사역이 아름답고 귀해서 목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양무리를 두고 하는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가슴에 새겨진 양이었습니다. 우리 밀알 목장에는 가이오 같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2. 목회자의 특별한 기도를 받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향하여 한 기도는 특별합니다. 1. 가이오를 향한 칭송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의 기도에서 나타남 같이 그는 영적으로 모자람이 없는 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신앙과 믿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2. 균형잡힌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의 기도 내용이 이를 증명합니다. 영과 육과 범사가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간혹 한 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은 자들을 많이 봅니다. 3. 기도의 열정입니다. 가이오를 향한 기도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간구였습니다. 목자가 가슴에 품고 항상 기도를 받는 양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3. 성도들에게 칭송을 받는 자입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 초대교회 시절에는 순회 전도단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는 가이오에 대한 칭찬이 많았습니다. 1. 내적인 믿음입니다.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3)라고 한 것은 가이오는 내면적으로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내적으로 자기 관리를 잘 한 성도입니다. 2. 외적인 행함입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라고 한 것은 내면적으로 소유한 믿음이 외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언행이 일치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3. 칭송받는 생활입니다. 자신의 양육을 받은 양무리가 이웃에게 사랑과 귀염을 받을 때 양무리를 치는 목자로서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인천 백마장 교회를 섬기는 황영철 집사가 있습니다. 간혹 그 교회 성도들과 교역자들에게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면 '황집사는 우리 교회 금집사이다'고 합니다. 그러한 칭송을 들을 때 목회를 하는 저의 마음이 너무도 흐뭇합니다.

4. 섬기고 대접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5) 초대교회 당시 '나그네'란 복음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당시는 부패하고 타락하여 여관은 음란한 행위가 많이 저질러지기 때문에 전도자들이 머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이 전도자들을 모셔 와서 대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이오였습니다. 가이오는 주님의 종들을 섬기는 대접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성도들 중에 특별히 가이오 같이 대접하는 섬기는 은사가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가 없는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타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한 때 슈퍼마&50523;을 경영했습니다. 목회자가 심방을 갔는데도 음료수 하나도 대접하지 않고 보냅니다. 그 여인은 대접하는 섬기는 은사가 없었습니다. 후일에 하나님의 은혜로 엄청난 큰돈을 얻게 되었는데도 동전 한푼도 감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이오같은 성도에게 섬기는 은사를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영국 경험주의자 베이컨의 말입니다. 이 땅 위에 세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1. 거미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만든 올무에 무엇이 걸리기만 바라고 사는 무의도식하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타나는 강도와 같은 자로서 이 땅 위에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2. 개미같은 같은 사람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한 근면하여 위기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저축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웃이 없습니다. 철두철미 이기주의자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할 제사장과 레위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아쉽지 않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입니다. 3. 일벌같은 사람입니다. 남을 위하여 수고하여 꽃 가루를 묻혀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게 하고 노력의 대가로 꿀을 얻어 와서 자신이 먹고 인류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자입니다. 이러한 자는 없어서는 안되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디오드레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대접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의 부족하여 형제들을 대접치도 아니하고 대접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붸는도다'(9-10)고 했습니다. 1. 그는 말씀의 훼방자입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라고 한 것을 보아 사도 요한이 아마 일전에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가 그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전하는 훼방자입니다. 2. 그는 교만한 자입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했습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항상 앞장 서기를 좋아했습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첫 아담은 으뜸되려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주님은 섬기는 자로서 구원사역을 완성했습니다(마가복음 10:45). 3. 그는 입술이 부정한 자입니다.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대는대로 선한 말을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29)고 했습니다. 입술은 마음에 품은 것을 밖으로 품어 내는 수로요 굴뚝과 같습니다. 주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태복음 12:34)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청결하게 하라고 합니다(마태복음 5:5, 8). 4. 그는 대접하지 않는 자입니다. '형제들을 대접치도 아니하고 대접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자신이 대접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대접하고자 하는 자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11) 오늘 본문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가이오 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와 디오드레베 같은 불의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바로 배우고, 나쁜 것은 역으로 배우면 됩니다. 그래서 가이오 같이 충성된 종이 될지언정 디오드레베 같이 불의한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밀알 목장에는 수많은 가이오들이 있음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충성된 가이오가 많이 일어나서 이 시대의 어두움을 밝히는 밀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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