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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성도,건강한 가정,건강한 교회 (요삼 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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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시면 요한이라는 사도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를 하면서“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이렇게 먼저 축도 형식의 간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그의 영혼과 육체는 물론 그의 만사가 잘되고 형통하기를 축복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강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될 뿐만 아니라 또 우리가 이루고 있는 우리 믿음의 가정이 영육간에 강건하고 건강한 가정 또 우리가 이루는 이 교회가 영육간에 강건하고 튼튼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그랬습니다. 이 사도 요한은 자기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하면서“사랑하는 가이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가이오라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이오라는 사람이 세 사람 등장합니다. 이 가이오라는 이름은“기쁨”“환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전도해서 세례를 주고 그리고 데살로니가의 감독이 되었다고 하는 고린도 교회에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6장이나 고린도전서 1장 14절에 나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가이오는 바울의 동역자이면서 데살로니가와 에베소에서 고난을 함께 받았던 마게도냐의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9장 29절에 나옵니다. 그 다음 마지막 세 번째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하면서 그리스에서부터 마게도냐로 또는 터키의 드로아까지 함께 동행했던 더베의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4세기의 사도적 관행이란 문서를 보면 이 세 번째 더베의 가이오가 바로 이 요한 삼서를 수신했던 주인공 가이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인공 가이오는 나중에 바로 이 편지를 썼던 요한에 의해서 버가모라는 터키의 중서부 지방에 있는 도시에서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이 되어집니다. 지금도 그 도시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록은 사도적 관행이라는 문서에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이 요한은 가이오를 부를 때“나의 참으로 사랑하는자”이렇게 지칭을 합니다. 그래서 이 가이오와는 아주 밀접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2절에서 가이오에 대한 축복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혁판 성경에서는“내 영혼이 잘 됨같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새 번역 성경을 보시면“그대의 영혼이 복을 받은 것 같이..”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또 그 반면에 현대인의 성경에서는“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내가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하기를 원한다.”이렇게 건강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현대판 독일어 성경에서도“당신의 내적인 생활이 건강한 것처럼 모든 일에 건강하기를 축복한다.”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건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건강하십니까?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서 영육간에 건강한 사람이 만사 형통한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요한이 빌고 있는 장면을 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건강한 성도
여러분 2절을 보시면“겅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그랬는데 결국은 3절에“네가 진리안에 행한다니 내가 심히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를 받은 가이오에게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요한에게“가이오가 지금 이런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요한이 무척 기뻤습니다.“아, 가이오는 정말 영육간에 강건하고 영육간에 건강한 사람이구나.”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아직 이 성경이 체계적으로 엮어지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 66권 중 물론 구약 성경은 그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신구약 성경이 체계적으로 완성되어진 것은 3세기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편적인 성경만이 그 당시에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그런 형편들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요한이 복음을 전하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 그 뒤에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가서 이들이 전한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그런 일들이 그 당대에 아주 흔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과연 누구말이 옳은지 어느 말이 진실인지 어느 것을 믿고 따라야 될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속에 빠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에 지금 유행하는 것이 목사님들의 설교 테이프들입니다. 유행한다기보다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신학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인 원리에 입각한 설교가 아닌 그냥 인간적인 생각들을 막 발설하는 그런 설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교인들이 과연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성경적으로 옳은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은 깊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입각한 이 말씀의 원리를 따른 말씀의 터 위에 세워진 신앙이 아니고서는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거 같고 저말 들으면 저 말이 옳은거 같은 그런 혼란속에 빠지고 이끌려 다니다가 우리의 믿음을 상실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초대 교회당시는 이런 문제가 더욱더 심각했습니다.

오늘 바울이 이 가이오를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판단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서있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자 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는 가이오를 건강한 신자라고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그 믿음의 기초는 이 성경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아닌것에서 원리를 찾고 성경 아닌 것에서 우리 신앙의 기준을 찾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실패하는 신앙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신앙, 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가이오였기 때문에 요한은 가이오를 이렇게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5절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이 가이오는 그 당시에 복음 전도자로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아주 신실하게 대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나그네 된 자들의 나그네는 그냥 단순한 표현이 아니고 초대 교회 당시에 베드로나 바울이나 바나바나 빌립같은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 다른 지역의 교회나 믿는 성도들의 가정에 가서 그 가정에서 묶고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교회가 조직화되어서 교회에서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규칙적이고 조직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의 사도들이 추천서를 써줍니다. 성경에 보면“천거서를 가지고 다녔다.”이렇게 나오는데 소위 말하는 추천서를 써 가지고 어느 지역에 가서 믿는 사람에게 추천서를 보이면 그 지역에 있는 교인들이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복음 전도자들의 생활과 거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다 뒷받침했습니다. 지금 가이오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되지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많은 문제를 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바로 오늘 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을 했던 것 같은 이 축복이 바로 여러분 자신을 향한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스스로를 건강하고 튼튼하고 큼직하고 넓은 축복의 그릇으로 만들어 나가야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성경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성경공부 열심히 참석하십시오.”하면서 성경공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진리 안에 올바로 선 교인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많이 강조하고, 성경 아닌 것을 많이 읽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2단 종파들이 다 성경을 인용합니다. 문선명도 성경을 인용하고 박대선도 성경을 인용하고 다른 모든 이단들이 성경을 인용했지만 성경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였고 성경 아닌 자기들 교파에서 나온 다른 책자들이나 어떤 교리서를 강하게 성경 위에다가 놓았던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우리의 신앙에 표준이 되고 성경이 우리 신앙에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CANON이라고 합니다. 이 CANON이라는 것은 자 또는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 생활의 기준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건강한 가정
여러분 4절을 보시기바랍니다.“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지금 가이오와 요한의 관계는 어쩌면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인지 모릅니다. 요한이 복음을 전했고 가이오가 복음을 받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믿음의 자녀 믿음의 아들,딸임을 이렇게 가족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지칭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어제 논산 훈련소 세례식이 거행되는 동안에 훈련소장이 거기에 참석을 했는데 제가 봤을 때 훈련소장이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 전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과정까지 매끄럽게 예배가 진행되지 못함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훈련소장이 나와서 훈련병들을 향해 인사를 하면서 아마 군목이 써준 축사를 가지고 나왔던 모양입니다. 참 표현이 적절했습니다.“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그런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입니다. 한 자매된 자들입니다.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됨을 확인합니다. 이런 영육간에 강건함을 가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이 이루는 혈통적이고 육신적인 가정도 영육간에 강건할 수 있도록 이어나가야 되겠고 그들이 이루는 교회도 영육간에 강건해질 수 있어야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영적으로 건강하십니까? 아니면 육적으로 건강하십니까? 여러분 가족들 가운데 육신의 질병으로 말미암아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그런 가족이 없습니까? 영적으로 여러분 가족들 간에 문제가 있는 그런 가족들이 없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되겠고 육적으로도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가정에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의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에 가장이 되고 우리 가정에 주인이 되어질 때 그 가정은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은 온 식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가정입니다. 가족들간에 서로 비난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서로 멸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그런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그런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온 식구들이 각자 자기의 역할들을 잘 감당하는 그런 가정을 건강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각자 각각 서로의 짊을 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주고 그들의 짊을 져주어야합니다.

가족 상호간에 내 자신은 다른 식구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그러나 연약한 사람들의 짐을 내 자신이 대신 져주는 그런 자세가 되어질 때 그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착각을 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가족 상호간에“우리 주변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아빠만 그 나쁜 버릇을 고치면 우리집은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어, 우리집 엄마만, 우리 자녀들만...”이렇게 서로를 향해서 책임을 전가합니다.“우리집은 아무 걱정 없는데 요녀석 공부만 잘 하면, 요녀석 아프지만 않으면, 우리 아빠가 술만 안드시면, 나가서 엉뚱한 짓만 안하면...”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가족 각자 각자가 바로 내가 바뀌면 내가 변화되면 우리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 자세를 우리가 분명히 회복해야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네 탓이 아니고 바로 내탓 때문에 내 탓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지금의 문제는 바로 내 탓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인식한다면 그 가정의 문제는 빠른 시간내에 회복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목회자들이 심방을 할 때 교인들에게 복 받는 이야기를 하면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심방을 가서 어느 가정에 말씀을 소개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면서 서로 영이 통하는 가정,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 그런 가정에 가서 기도를 할 때면 목사의 기도가 술술 나오고 기도의 막힘이 없이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문제가 막 꼬여있는 가정에 가면 목사가 기도하기가 그렇게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런 가정을 몇 가정 심방을 하면 나중에는 등에 땀이 나고 머리가 띵해질 때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정이 그런 가정이 아닙니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가고 싶은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열려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하나님을 향해서 열린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건강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그러면서 아름다운 가정에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집 내실에 있는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상에 둘린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세워지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이루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가이오라는 사람이 이루는 가정은 바로 이런 가정이었습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그런데 3절은 우리말 번역 성경에서는 접속사가 빠져있습니다. 성경 원문에는“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왜냐하면 가이오는 진리안에서 행하기 때문이다.”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2절과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싸구려 축복이 판을 치고 있습니까? 비 복음적인 것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다 상실해 버리고 껍데기만 잡고 기독교인 것처럼 예수 믿는 것처럼 이렇게 흉내만 내고 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복 받을 수 있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이 되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향해서 축복을 아끼지 않고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루는 건강한 가정이 정말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런 온전한 축복의 가정들이 다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건강한 교회
그 다음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람들 이러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가이오는 신실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이오와는 아주 대조적인 한 인물을 성경은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어떤 어떤자 였습니까?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라는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건강을 잃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성품은 으뜸되기를 좋아했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불순종했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는 그런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숨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으뜸되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세웠습니다. 디오드레베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 디오드레베와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 디오드레베와 같은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결단과 여러분의 신앙적인 자세에 따라서 우리가 교회에서 가이오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디로드레베와 같은 존재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교회당 안에서는 내가 이 교회를 설립했던 설립 멤버라는 이유 때문에 으뜸이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돈이 많다고 해서 으뜸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으뜸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으뜸되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으뜸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 교회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교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낮아지고 모두가 겸손하고 모두가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 그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 영적으로 온전하게 세워진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바로 요한의 사도적인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교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시면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악한 말로 사도를 폄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사도들을 돕는 복음 전도자들을 접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복음전도자를 접대하려는 자들을 교회에서 내어 좇는 그런 횡포를 부리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시험에 빠지고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목회자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지만 또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인정받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어떤 문제를 지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시험에 빠지는 경우에 목회자들을 공격하면 그 교회는 서서히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바로 요한의 사도성을 인정하지 않고 목회자를 누르고 감독을 누르고 장로를 누르고 자기 자신이 으뜸되려고 하는 이러한 자기 과시적인 기질을 가진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교회가 시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자기 손아귀에 넣어서 죄지 우지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회자들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그런 과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한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지체들이 각자 자기의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갈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나는 우리교회의 아무쓸데 없는 존재다. 우리 교회는 열심히 일하는 김집사가 있고, 박집사가 있고, 이집사가 있고, 누구누구가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이것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존귀함을 받아야 될 그리스도 한분 만을 머리로 하고 교회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등 모든 직분자들은 다 섬기는 자로써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섬김을 받으려고 높은 자리에서 우쭐거리면 그 교회는 고질적으로 병든 교회인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적인 직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일 위에는 로마 교황이 있고 그 다음에는 추기경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교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일반 신부들이 그 다음에는 일반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인들과 신부들 사이에는 신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개신교회 개혁되어져 가는 교회는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모든 교회 직분자들, 교회 사찰집사님 까지도 같은 횡적인 관계에서 섬기는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아랫 강단 윗 강단을 없앴습니다. 교회를 지으면서 없앴습니다. 누구는 위에서 설교하고 누구는 밑에서 설교하고 똑같은 설교인데 누구는 사회하면서 위에서 하고 누구는 아래에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만들어낸 계급주의 적인 사고가 교회 건축 구조 양식 속에서도 베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21C교회에서는 이런 것은 다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섬기는 자로써 모두가 다 헌신하고 모두가 다 봉사하는 자리에서 우리 자신들을 세우고 우리가 받은 각양의 달란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양의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더 유익하게 해 나가는 그런 지체들이 되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발행되는 크리스챤 헤랄드라는 잡지에 당신의 교회는 건강한가? 라는 특집 기사 가운데 건강한 교회의 열 가지 조건이라는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들으시면서 우리 교회는 여기에서 몇 가지가 해당 될 것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으면 100%건강한 교회라고 볼 수 있지만 그중 일곱 가지나 여덟 가지 이렇게 된다면 좀 부족하고 다섯 가지 이하로 떨어져 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교회 중에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1)말씀 앞에 충실하려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는 교회 즉 원리와 원칙을 존중하려는 자세를 가진 성도들 그런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
2)책임감에는 충실하면서 열정적인 그런 성도들의 수가 많은 교회,
3)확실한 영혼 구원에 대한 목적을 가진 교회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바로 이해하는 교회,
4)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제거하고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조직화된 교회,
5)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담임 목사를 가진 교회,
6)내적인 그리고 외적인 시험이 올 때 흔들림이 없는 교회,
7)새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만큼 주인행세를 하는 교인들이 없는 교회 여기에 제가 중요성을 두겠습니다. 여러분 교회들 보면 열심을 내는 주동세력 즉 거의 주측을 이루는 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교인들이 겸손한 자리에서 교회를 섬길 때는 문제가 없는데 그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새신자들을 깔보고 업신여기고 새신자들에게 거만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진다면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8)지나친 교파 주의나 교리를 내 세우지 않는 교회, 여러분 지나친 교파주의를 또 교리를 내세우는 것은 바로 집단적인 배타주의에 빠져있는 교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원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기 교파 자기 교회 그들의 교리 이것만이 절대 진리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에 대해서 너무 비판적이거나 배타적인 그런 입장을 취할 때 바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9)주장하는 직분자들이나 섬기며 순종하는 직분자들이 많은 교회
10)목회자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 그룹이 있는 교회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주는 기도그룹이 교회 안에 있을 때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크리스챤 헤랄드지에 소개된 이 열 가지가 절대적인 조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한번쯤은 참고 해봐야 될 그런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그런 가이오와 같은 모습으로 선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한밭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고 오늘 여기에 소개되어져 있는 것 같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교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교회는 고질적인 암세포를 가지고 있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어떤 신앙인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강건하고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서느냐, 서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교회가 건강해질 수도 있고 허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우리 가정이 병든 가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영혼과 육체는 물론 범사에 있어서 강건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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