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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혀, 그 무서운 잠재력 (약 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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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능력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입니다. 말과 언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셨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나름대로 의사소통 수단이 있습니다.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위협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언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동물들은 문화를 만드는 법도 없고, 발전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어를 통해서 사상을 전하고, 교육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회에서 나온 좋은 자료가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관한 것입니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진화론자들은 유인원의 뼈를 조사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가장 오래된 뼈가 나왔는데, 최근에 그 뼈가 사람의 뼈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유인원과 사람의 턱 뼈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구조가 흡사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고 합니다. 유인원의 턱 뼈는 단순해서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결정됩니다. 외모는 그럴듯한데 사용하는 언어때문에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모는 시원치 않은데 그의 언어때문에 돋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5백 단어 정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의사 소통을 하는데 별로 어려움은 없지만, 사상을 전달하고 깊은 대화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단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선진화되고 문명화된 나라는 사용하는 단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개발되지 않고 발달하지 않은 나라일수록 사용하는 언어가 단순합니다. 그만큼 언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말과 우리의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말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말은 우리 생활에 밀접해 있고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21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자살하려는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심지어는 자살하게 합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본인은 ‘실수’라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말로 위로를 얻습니다. 말로 힘을 얻습니다. 각자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신앙생활의 기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만큼 말은 우리에게 위로와 능력이 됩니다. 축복도 말로하지만 저주도 말로 합니다. 내적치유 사역을 해 보면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상처는 대부분 말 때문에 받은 상처입니다. 몽둥이나 체벌은 육체에 흔적을 남기고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잘못된 말 한마디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들은 말 한 마디가 평생 한 사람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말의 위력과 능력입니다.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 잘한 것도 많지만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습니다. 나쁜 짓 한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더라도 말로 실수한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믿는 사람들은 큰 죄는 별로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로 실족하고 넘어집니다.

먼저 자기를 가르치십시오
1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되지 말라

선생이 되는 것은 좋습니다. 특별히 한 영혼을 양육할 수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교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교사가 대접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부모와 랍비가 위험에 빠지면 당연히 랍비부터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나를 낳았지만 랍비는 내 미래를 결정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랍비’라는 말 자체가 ‘큰 자’, ‘위대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랍비를 그만큼 존경했습니다.
우리는 평생에 위대한 스승 한 분만 만나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불행은 스승의 날에 진심으로 찾아갈 스승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사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야고보는 교사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말은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론은 얼마든지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기 자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대로 자신이 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죽은 믿음의 대명사가 되기 쉽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함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남은 가르치고 간섭하면서도 자신을 가르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 들이었습니다. 남은 가르치려는 사람, 남 일에 참견하는 사람도 교사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자격증이 없어도 스스로 교사가 되어서 간섭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남을 가르치려고 하고 먼저 말하려고 하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만약 말에 실수가 없다면 그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다스릴 수 있다면 자기 인생 전체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이야기 하면 자기 말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 전체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에 후회가 없이, 상처주는 일 없이, 지혜롭게 말을 해야 합니다.

누가 오해 하더라도 오해하게 한 책임은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 말한 것은 부주의한 것입니다. 다른 의도가 없었을 지라도 듣는 사람이 상처를 받았으면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합니다.

‘혀’에 대한 세 가지 비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믿는 대로 살 수 있는 비결 중의 하나가 언어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말이 씨앗이 됩니다. 말을 바꾸면 인격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은 인격의 반영입니다. 속의 것이 나오는 것이 말입니다. 말하는 대로 인격이 형성됩니다. 교만한 말, 더러운 말, 악한 말들을 고쳐가면서 인격을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말을 잘 길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3-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우리의 혀를 ‘재갈’과 ‘키’, ‘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길들이지 않으면 탈 수 없습니다. 말은 길들이고 재갈을 물렸을 때에만 사람이 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침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말 할때 항상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무심코 하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항상 준비되고 기도한 말이 나와야 합니다. 불쑥 불쑥 내뱉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지혜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언어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고, 말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시간을 투자해서 길들이십시오. 몸을 다듬는 것 이상으로 길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혀를 제어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혀를 ‘키’에 비유합니다. 키는 배에 비하면 너무나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문제는 키가 조정이 안되는 것입니다. 조정이 안되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의도한 대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말이 나오면 자기도 그 말에 화를 입고 상대방에게도 고통을 주게 됩니다. 여러분이 던진 말 한마디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이웃에게 영향력을 줍니다.

아무리 큰 불도 작은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1871년 미국 시카고에 화재가 났습니다. 그 화재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7만5천개의 건물이 불에 탔습니다. 1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 불은 시카고의 작은 농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불이 온 도시를 태워버렸습니다.
건조한 밀림에 불이 붙으면 아무도 끌 수 없습니다. 큰 비가 와서 스스로 꺼질 때까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불이 되고 맙니다. 이 불과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혀입니다.
말로 망한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평생 쌓았던 경력이 말 한마디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41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자기의 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입술을 지키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혀 길들이기
6-8절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혀를 잘 길들여야 합니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배의 키를 잡듯이, 불을 다스리듯이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6절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모든 악과 더러운 것이 말로 나옵니다. 가족간의 불화가 생기는 이유도 말 때문입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혀는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 전체를 불사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혀로부터 출발합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짓는 모든 죄에는 반드시 혀가 있다’.

잘못된 말이 우리의 인생 전체를 불사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말은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영적 전쟁의 도구가 뭘까요? 바로 ‘말’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는데 그 불화살은 우리를 참소하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길들여지지 않은 말들이 마귀의 도구가 되고 지옥 불처럼 우리 생애 전체를 망치고 맙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은 혀는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동물들을 길들입니다. 심지어는 맹독이 있는 코브라도 길들입니다. 그런데 세 치도 안되는 이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혀가 얼마나 무서운지 8절을 보십시오. 마치 독사의 입에서 나오는 독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혀를 길들일 수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안됩니다. 입술을 깨물어 보십시오. 혀를 깨물어 보십시오. 그런다고 할 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하고 맙니다.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입니다.

혀를 길들인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오순절날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사건입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나서 가장 먼저 더러워 진 것이 바로 입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바벨탑에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믿음의 말을 하던 입이 싸우고 원망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입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에서 단 하루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귀담아 들을 말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 친구도 만나 보십시오. 남 모르는 정보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영혼을 시원케 하고, 내 마음에 쉼을 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입술을 제단 숯불로 지지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고 거듭나게 하실 때 우리 입술을 길들여질 수 있습니다.

‘입술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 제일 먼저 말이 바뀌었습니다. 방언의 주제는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가장 먼저 말이 바뀝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말이 바뀌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가짜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거듭나면 말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언어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군대의 언어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만의 언어문화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각 집단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훈련을 받다가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한 마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말은 바로 ‘형제님’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병, 일병이 아닌 형제님이라고 불러주는 교회가 바로 천국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바꾸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찬송과 저주를 한 입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찬송이 나왔으면 축복도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찬양을 했으면 축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 문 밖을 나가자마자 욕을 하고 저주를 한다면 되겠습니까?

무화과나무에서는 무화과가 열립니다. 무화과나무에서 감람열매나 포도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에서 감람열매가 맺히면 그것은 감람나무입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저주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술로 남을 비판하고 상처를 주고 판단하는 말을 한다면 우리는 아직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육신의 속한 사람입니다.

짠 물이 단 물을 결코 낼 수 없습니다. 말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경우는 있습니다. 분명히 거듭난 사람이지만 아직 말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불쑥불쑥 악한 말이 나오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믿은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말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들으시는 하나님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을 받으십니다. 예배시간에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만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기도와 같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이 복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아직 말이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은 내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듣는 대로 말하게 됩니다. 욕을 듣고 자랐으면 어느 새 자기 자식에게 욕을 합니다. 더러운 말을 듣고 자라면 더러운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더러운 말을 차단하십시오. 그리고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청소하십시오. 회개하십시오.
혀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은혜로 충만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항상 찬양의 말, 격려의 말,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혀를 관리하는 것이 여러분의 일생을 관리하는 것이요, 여러분의 축복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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