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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툼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약 0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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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의 원인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연초에 ‘새해에는 꼭 이런 일을 해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것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모두들 열심히 사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때로 이루지 못한 소원과 계획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분노하고, 속상해하고, 다툽니다.

누가 싸우며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누가 다투며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세상을 보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언제나 사건이 있고 사고가 있습니다. 세상만 그렇습니까? 가정을 보십시오. 형제간, 부부간, 고부간의 갈등도 많습니다.

세상엔 항상 전쟁이 있었습니다. 한 연구가에 따르면 지난 5천년동안 1만4천5백31번의 전쟁이 있었답니다. 1년에 2번이 넘는 전쟁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가장 심각한 분쟁지역은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지금은 모슬렘이 기도하는 ‘라마단기간’이기 때문에 조금 잠잠합니다만 이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분쟁이 전개될지 모릅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도 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싸우기를 좋아하는지요. 인류의 역사는 다툼과 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남에게 지지 않고 이기는 것을 누구나 좋아합니다. 양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아이들은 얼마나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뿐만 아닙니다. 어른들도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성경도 많은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싸워서는 안될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인간의 타락 이후 가인과 아벨이 싸웠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모태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싸움은 우리의 본성이고 인류의 모습입니다.

일상적인 것에도 싸움은 있습니다. 교회 올 때부터 주차전쟁이 시작됩니다. 수능시험 성적이 발표되면 우리 자녀들은 입시전쟁을 치뤄야 합니다. 요즘은 직장을 얻는 것도 전쟁입니다. 구조조정의 한파 때문에 우리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총과 칼로 싸우기보다 경제로 싸우고 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파산하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냥 싸우겠습니까?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습니다. 다 싸울만 하니까 싸우고 상대방이 잘못하니까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싸움과 다툼의 원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싸움과 다툼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그 안에 정욕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 이기심, 시기심, 정욕과 욕망 때문에 싸움과 다툼이 시작됩니다. 명분은 좋지만 따지고 보면 ‘밥그릇 싸움’일 때가 많습니다.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2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싸움과 다툼은 먼저 내면의 전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과 싸우는 이유는 우리 속에 평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욕과 시기와 질투로 인해 내 속에 평화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싸움과 다툼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2절을 보십시오. 욕심을 낸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소원일지라도 다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2절을 보면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마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볼 때가 많습니다. 내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은 것, 그것이 살인하는 마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얻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다투기도 하고, 상대방을 매장시키기도 하지만 점점 내 인격과 성품이 파괴되고 영혼까지도 무너집니다.
세상에서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싸우는 것에 지쳐서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서도 싸웁니다. 교회가 싸울 때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11,12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물론 우리가 교회에서 싸우는 것은 잘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형제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교만입니다. 상대방이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고쳐주십시오. 우리는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없애려고 합니다. 잘못했다는 것을 명분삼아 사람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목사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충고의 말씀을 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싸우고 다투고 비난하는 일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마귀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서로를 세워주고, 기도하고, 격려하고, 충고하고, 권면을 하는 것은 좋지만, 싸우고 다투는 것은 안됩니다. 이것은 교만이요 성숙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한 해는 매우 힘들면서도 감사한 해였습니다. 힘들었던 이유는 하용조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고, 감사한 것은 성숙한 성도님들 때문입니다. 저희들이라고 잘못하는 것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고 기도하고 격려해주는 성숙한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계셨습니다. 특별히 교회 리더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교회 리더 사이에 다툼이 없고 갈등이 없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바르게 기도하십시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위해 싸울줄은 압니다. 내 소원을 이루고 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웁니다. 그러나 기도할줄 모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지혜롭게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모든 일을 하지만 한 가지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구하라’고 합니다.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도 얻지 못한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다는 것입니다.
정욕은 다툼과 모든 싸움의 근원입니다. 기도 생활을 방해하는 것도 정욕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마음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 자기 뜻을 이루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기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기도는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차라리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쉽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행동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행동이 없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행동은 하는데 기도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동을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 사도의 별명은 ‘낙타무릎’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다가 돌에 맞아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성도들은 낙타같이 굳어진 무릎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야고보는 기도의 힘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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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7절에서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얻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그것은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구해야 합니다. 기도야말로 우리 믿음의 태도입니다. 그가 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정욕으로 구하고 욕심으로 구하면 그는 아직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달라고만 합니다. ‘건강을 주십시오’, ‘물질을 주십시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게 해 주십시오’, ‘사업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마음은 ‘기도만 들어 주시면 잘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우선 잘 되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구하는가’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이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제게 쌀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올바른 것 같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자기 것을 내 놓으십시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바르게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선한 동기와 뜻을 가지고 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누구의 벗인가?
우리가 정욕을 품고 있으면 기도가 막히고 다툼이 생깁니다. 그리고 심각한 일이 생깁니다. 4,5절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여기서 말하는 간음은 영적인 간음을 말합니다. 소속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과 벗되어 있습니다. 교회에도 나옵니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더 좋아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봉사를 하라고 하면 본인은 바빠서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빠서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하지 않습니까?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연말에 교회 행사가 왜 그렇게 많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연말에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휩쓸려 다니기 쉽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삶이 형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정욕은 하나님과 원수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별 볼일 없습니다. 그 사람이 뭘 하든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사람이 다른 짓을 하면 온 세상이 다 캄캄해 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다고 하나님께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더 친하게 지내면 시기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아들을 줄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호세아는 간음한 여인 고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너도 나만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정말로 좋은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품고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타까워 하십니다.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최상의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큰 은혜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언제나 처음보다 나중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삶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찰랑거리는 얕은 물가에서만 지내려고 합니다. 깊은 데로 가십시오. 더 가까이 가십시오. 세상에 한 눈팔지 마십시오.

7-10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일곱 가지 실제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이것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이 다투고 싸워도 얻지 못했던 것, 노력하고 서원해도 얻지 못했던 것을 이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7절을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순복하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항복하십시오. 우리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 지십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우리 마음에 독한 시기와 질투를 일으키고 다투게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의 세력입니다. 내 안에 정욕이 일어날 때마다 그 뒤에 있는 사단을 물리치십시오. 사단을 대적하십시오.

8절을 보십시오. 세상 즐거움을 구하는 자리에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세상 즐거움을 누리면서 은혜도 받기 원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반드시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을 더 좋아합니다. 두 마음을 버리고 성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은혜의 보좌로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을 늘 적어놓고 연말연시에 기도할 때마다 생각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은 겸손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십시오. 슬퍼하고 애통하며 우십시오. 회개하십시오. 낮추어야 기도도 하고, 순종도 할 수 있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툼을 일으키고 더 많은 욕심을 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십시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불화와 정욕으로 자기 자신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욕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욕심과 정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찹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순복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 모든 독한 시기와 정욕은 떠나가고 깨끗하고 정결해 집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올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습니까. 연말연시에 만나서 마음껏 웃고 편안하게 만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이제라도 세상 즐거움을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정결하고 거룩한 심령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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