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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들의 소중한 의미 (히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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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탁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셨고 모세도 하나님 앞에 충성했습니다. 같이 충성했지만 영광이 같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이 더욱 크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집을 지은 자가 집보다 영광이 큰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3절).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6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으면 그리스도의 집에 됩니다(6절). 그분의 집이 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맡아주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일꾼으로 충성하는 자가 되지 말고 아들로 충성하는 자가 되자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분들의 모습 속에 믿음의 형태에 따라 3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1) 매매 관계로 믿는 사람입니다
장사꾼의 거래관계처럼 하나님과 거래하는 식으로 믿으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보상이 바로 없으면 배반의 길로 가기 쉽습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이런 관계를 가지고 주님을 믿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2) 일 관계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뜻은 귀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 이상의 존재로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주님을 위해 일하는 마르다'와 '주님 앞에서 말씀 듣는 마리아'를 보고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3) 아들 관계로 믿는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고한 믿음과 가치관과 의식 속에서 하나님은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일꾼으로 충성했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선진들은 사실상 일꾼으로 충성한 것입니다. 그 일꾼 중에서 최고의 일꾼은 누구일까요?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늘로 이끌려 올라간 에녹일까요?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아브라함일까요? 유대인의 조상으로 도덕적으로는 부족했지만 하나님 붙잡는 것은 탁월했던 야곱일까요? 유대인의 해방을 주도했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일까요? 모세의 후계자로 가나안 정복전쟁의 영웅이었던 여호수아일까요? 이스라엘의 기초석을 든든히 세웠던 '이스라엘의 광개토대왕'으로 여겨지는 다윗일까요? 하늘의 불을 끌어내렸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여기는 긍휼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일까요?

그런데 주님께서 제일 위대한 사람으로 본 구약의 사람은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만에 나타난 선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길을 직접 대면하며 예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계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 11:11)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계속 하신 말씀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 사실상 천국 백성이 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세례요한보다 크다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일꾼으로 최대로 충성했던 최고의 일꾼이었지만 우리는 아무리 작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나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여러분이 모세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일꾼의식보다 하나님의 아들의식이 더욱 굳건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한가지 메시지를 더 줍니다. 일꾼은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계약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 구약의 율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부자관계이기 때문에 계약보다 은혜가 항상 앞섭니다. 그러므로 아들로 살라는 것은 하나님께 아들 됨만을 주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원리보다 은혜의 원리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형제 자매를 율법보다는 은혜로 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아 그리스도의 집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인데(6절),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인내해야 합니까? 피 흘리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랑은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랑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신앙생활의 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자녀가 된 자랑을 잊어버리고 다른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자세입니다. 특별히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자랑은 내가 약할 때 더 드러납니다. 사도 바울처럼 약한 것도 자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고후 12:9-10).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틀림없이 수치를 당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집에서 끝나지 말고, 그리스도의 집을 세우는 자가 되자는 교훈입니다.
집보다 집을 짓는 자가 더욱 영광스럽습니다(3절). 여기서 집은 교회요, 집을 짓는 자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즉 교회를 세워 가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더욱 영광된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워 가는 자가 되면 더욱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주도적이 아닌 보조적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회의 기초석의 터를 닦을 수는 없지만 교회의 각 부분과 교회에 속한 사랑하는 성도들을 세워 가는데 우리는 충분히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요 정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교인들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욱 영광스런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항상 교회를 세우고, 교우를 세워주는 귀한 주님의 자녀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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