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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견고히 붙잡으십시오 (히 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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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세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광야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얼마나 완고하고 악하게 행동했습니까? 40년 동안 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배반했습니까?

여러분! 40년 동안 일어났던 만 번 이상의 기적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적 중심의 신앙이 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만이,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를 변화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본문 8-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이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습니까?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 그러한 이스라엘의 완고하고 악한 모습을 닮지 말라는 것을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록자가 호소합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의 때와 같이 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의 안식을 얻을 수 없다. '(7-11절)

그리고 12-19절에서 '형제들아!' 하면서 새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4가지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12절).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함이요. '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악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짜증, 우리의 정욕, 우리의 욕심, 우리의 이기심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가장 악한 죄악으로 보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연약성과 우리의 죄성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므로 가장 악한 마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우리 형제들이 불신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죄는 인간이 연약하기에 지을 수 있더라도 최소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2. 매일 '오늘은 이렇게 살자!'라는 새로운 다짐을 하며 살라고 합니다(13절).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함으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매일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권면도 중요하지만 성도끼리의 권면이 때로는 더 중요합니다.

때로는 목회자의 권면보다 '집사님! 우리 같이 전도합시다!'라고 하는 성도들의 권면이 같은 입장에 있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성도들이 피차 권면할 때 성숙한 삶의 가능성을 점차 커지고 또한 죄의 유혹으로부터 강퍅(剛愎)하게 될 가능성은 점차 줄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매일 아침 새벽기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우리 영혼을 죄로부터 지켜주는 파수꾼의 역할을 합니다. 새벽기도를 해 보십시오. 매일 새벽기도를 해도 죄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해도 우리는 그날 과거와 똑같은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기도를 하면서 즉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면 한기지 놀랍고 위대한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유혹은 받지만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아침 이 새벽에 목자로부터 '오늘은 이렇게 삽시다!'하는 새벽의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정말 여러분의 인생의 가장 위대한 축복으로 아십시오. 그러므로 항상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하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합니다(14절).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여기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문법상으로 어법이 이상하지만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 따르다가 조금씩 조금씩 의심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리고 다른 복음이 틈타서 자꾸 유혹을 합니다. '메시야라면서 왜 십자가에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어!' 자꾸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오늘도 그런 소리가 수시로 우리의 마음에 파고들 것입니다. '왜 믿는데 문제는 끊이지 않을까? 왜 기도했는데 응답은 없을까? 정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실까? 나의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때에 왜 침묵하실까?' 어떤 경우에는 죄는 자기가 지으면서, 짜증은 자기가 내면서, 유혹은 자기가 초래하면서,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죄에 빠지도록 합니까? 하나님! 왜 내가 이런 유혹을 받아야 합니까?'
죄와 유혹은 자기가 초래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의 믿음까지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유혹에 넘어가도 다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긍휼의 손길로 이끌어주십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를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복 중에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와 참예하는 복을 잊지 마십시오. 대통령이 파티에 초대했다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거의 참석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교계지도자를 초청하면 그렇게 바쁜 분들이 100퍼센트 참석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를 그분의 파티에 초대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초대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아들로 대접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를 그분의 아들로 대접만 할 뿐 아니라 생활비도 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세세히 사랑의 손길로 돌보아 줍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에 참예한 자가 되리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 그리스도와 함께 끝까지 축복의 전에 참예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라고 합니다(15-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나오는 '오늘날'이라는 말씀은 어떤 뜻을 내포합니까? 해야 할 일을 자꾸 지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새벽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정말로 교회와 성도를 위해서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요?' 몇 가지 생각나게 해 주셨는데 그 일은 빨리 할수록 바람직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14절).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19절). 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요?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1)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셨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2) 구원 자체에 무슨 결함이 있었기 때문도 아닐 것입니다.
3) 구원을 받아들이는데 나에게 어떤 무능력이 있기 때문도 아닐 것입니다.
4) 내가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요? 성경은 오직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19절). 그러한 불신앙이 틈타지 않고, 그 불신앙이 불순종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더욱 하나님을 붙드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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