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자와 불신자의 죽음 (히 09:27-28)

첨부 1


1683년 영국의 애국자 윌리암 럿셀경이 처형될 때 형장에 동석한 의사에게 시계를 꺼내주면서 말하기 를 '이 시계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이제 나는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므로 이런 시계는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줄 알거나 또 누구나 자기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며, 나와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엄숙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의 재림이 우리가 살아서 이루어진다면 구원받은 신자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번데기가 변화되어 나비 가 되듯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림받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나 여러분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죽을 것입니다.

1963년에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고 이어서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죽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 이 그렇게 죽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또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실 줄 아 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여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음에 대한 준비 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을 위해 준비한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보람있고 가치있고, 영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에 다 성공했어도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계속됩니다.

많은 목회 경험을 가진 어느 목사님의 간증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멸시하던 불신자의 죽음은 분명히 다르다고 했습니다. 어느 의사와 간호원의 말을 들어보면 교인과 불신자의 죽음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같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보아 왔다고 합니다.

1. 불신자의 죽음
불신자의 죽음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므로 큰 공포와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1778년에 죽은 무신론자 볼테르(Voltaire)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입니다.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오 주님! 예수님!' 그러면서 '나의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 면 나의 재산 절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1679년대 죽은 홉스(Hobbes)는 임종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면 나의 생명을 단 하루만이라도 더 연장시켜 주는 자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 나는 지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캠베타(Gambetta)라는 불신자는 죽으면서 '나는 잃어버린 자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부인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케사르 보르지어는 '나는 살아서 모든 것을 예비하였으나 죽음에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죽게 되었는데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라고 후회하며 죽었습니다.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라는 나쁜 책을 쓴 토마스 페인은 죽어가는 자리에서 '내가 쓴 '이성의 시대'가 출판되지 않았다면 그 책을 모두 거두어 들일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겠 습니다. 오 주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시여, 나를 구원하시옵소서! 나와 함께 있어 주 시옵소서! 홀로 있으면 지옥같이 무섭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신자가 죽을 때는 흑암의 사자들이 어둠 속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자는 주님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을 얻고 수고와 선행에 따라 상금과 면류관을 받지만 불신자는 천년왕국시대가 지난 후에 심판의 부활을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 영원히 슬피울며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두번 태어난 사람은(육신과 영혼의 거듭남) 한 번 죽고,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번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음이란 육신과 영혼이 분리(Separate)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2. 신자의 죽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음 후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되고 주님 재림시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어린 소녀가 그만 죽게 되었을 때 죽는 것을 무서워 하는 것을 보고 그 부모가 뭐라고 말해야 위로가 될지 몰라서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고 나서 그 소녀에게 물었 습니다. '너 밖에서 놀다 들어와서 아래층에서 잠이들면 아빠가 팔로 안아서 이층의 좋은 방에다 눕 혀 주는 것을 경험했지? 죽음이란 바로 그와 같단다. 죄와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데려 가시려 고 잠들기를 기다린단다' 하고 설명해 주니까 환하게 웃으면서 하나님 품으로 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시에 살아있던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은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요한복음 14:2-3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 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한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요 3:16; 5:24; 3:36). 그러므로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죽는 사람은 얼굴이 천사같이 빛나며 승리감에 넘치게 됩니다.

우리 금란교회를 개척해 주신 고 김활란 박사님은 평생 믿음으로 생활하다가 임종시에 유언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승리의 행진곡을 불러다오' 제가 김활란 박사님 돌아가신 후 몇 십명 모일 때 부임해 왔는데 오늘날까지 계속 부흥되어 오고 지금 수천명의 예배당을 짓게까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김활란 박사님이 하늘나라에서까지 당신이 세운 금란교회가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분이 하늘 나라에서 이화대학이나 이화여고, 금란여고, 영란여고보다 금란교회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이 있 으실 것입니다.

마틴 루터 (Martin Luther)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그로 인하여 나는 죽음을 면하였습니다'고 하였고 죤 녹스(John knex)는 임종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니 내 육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고 하였고 죤 웨슬리(John Wesley)는 '최상의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했고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 '나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나에게 평화가 있습니다'라고 했고, 죠셉 에베레트는 '영광! 영광! 영광!' 하면서 임종시 마지막 25분 동안을 기쁨이 넘쳐서 영광만 외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는 죽지 않고 살면 너희들을 볼 수 있고 복음을 더 전할 수 있으니 좋고, 죽으면 고난의 생활은 그치고 주님 곁으로 가니 더 좋다는 뜻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입니다.
빌리 그레함(Billy Geaham) 박사님의 할머니는 임종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보았어. 예수님이 친히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 주셨어. 그 곁에는 두 눈, 두 다리가 성한 벤(Ben)이 서 있단다'(Ben은 남편인데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한쪽 다리와 한쪽 눈을 잃었다 함)고 말했습니다.

어느 식품점을 경영하던 노인이 죽을 때 '프랭크 저 음악소리 들려요? 생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예요. 저 오케스트라, 저 찬양대 아! 천사들의 노래'하면서 숨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5:17-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 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스펄죤(C. H. Spurgeon) 목사님은 자기는 살아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변화를 받겠느냐, 죽었다가 부 활하겠느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죽었다가 부활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 면 예수님이 죽음을 거쳐 부활하셨으니 자기도 예수님 거치신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 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그러면서 그는 '차라리 죽읍시다. 우리 대장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를 통과하셨으니 군병들도 즐거이 따릅시다' 했습니다. 두려움이 문을 두드릴 때 믿음의 대답을 보내십시요. 그러면 문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나침판의 바늘이 북쪽에 자리잡기까지는 떨리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혼 도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안식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시는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십니다. 가난하게 살다 죽어도 귀중히 보시고, 교통사고로 죽든지, 불치의 병으로 죽든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전쟁터에서 외로이 죽든지, 이역만리 타국에서 죽든지 하나님은 다 귀중히 보십니다.

3. 지혜로운 삶
그러므로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 때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며 또한 나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C. T. 스터트는 캠브리지 대학에 다닐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그러나 그것도 덧없이 지나가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일, 그리스도를 위해 바친 시간, 그리스도를 위해 쓴 물질,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것만이 영원히 남는 것이요,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 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 15:58)고 했으며,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의 죽음에 대해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좀 더 바르게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김홍도 목사
예수님의 피(히 9:11-15)

우리의 몸은 모든 부분에 피가 있습니다. 피는 우리의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피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는 우리의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근육과 뼈와 신경조직과 피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고정되어 있는데 피는 온 몸을 돌아다닙니다. 피가 온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모든 지체가 다 피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는 심장에 의해서 산소를 공급하게 됩니다. 피는 온 몸에 양분을 공급합니다. 피는 몸에서 만들어지는 노폐물을 처리하는 역할을 또한 하게 됩니다. 때문에 피가 세포나 신체의 기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세포들은 파괴가 되고 피가 돌지 아니하면 생명은 죽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피가 돌지 아니하면 신체의 노폐물인 세포쓰레기가 몸에 쌓여서 결국 죽게 됩니다. 피는 온 몸에 쌓여있는 노폐물을 콩팥 피부 장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다시 산소를 싣고서 매 25초 마다 온 몸으로 피가 순환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피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고 피를 조사하면 그 사람의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이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 발전되면 피를 통해서 더 많은 건강이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지금부터 1600년 전에 기록이 된 성경에 이미 생명은 피에 있다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피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최초의 피에 대한 기록은 '창 3:15 여자의 후손을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하게 한다는 말은 피를 흘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인의 후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주제가 바로 피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수많은 제사가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을 고백하는 예배제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제사는 피를 바치기 위한 제사였습니다. 피를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께 생명을 바치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소와 양과 염소의 피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바치는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담의 피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말은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담의 생명은 영적으로 볼 때에 이미 사망이 선고된 생명입니다. 아담은 죽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실제로 죽음 앞에 굴복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죽었던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인간 생명의 공통점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그 보배로운 피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요 기독교 교리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러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예표적 제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제사제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하는 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월절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에 흠이 없고 일 년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해가 질 때에 잡고 그 피로 양의 고기를 먹을 집 문 좌우 기둥과 위쪽 기둥에 바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날 밤에 애굽 땅을 두루 다니시며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모든 생명을 죽이게 될 터인데 그 양의 피를 문기둥에 바른 집에는 내가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그 구원을 기념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3-58)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어서 주님께서 다시 사신 것과 같이 그도 주님이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사신 것처럼 주의 보혈을 믿는 그 사람을 주님이 다시 살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먼저 흠 없는 피라고 했습니다. 요한 1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깨끗한 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흠 없는 짐승의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 없는 피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백혈병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건강한 골수를 받는 길뿐입니다. 병든 골수는 아무리 많아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생명은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거목이라도 죽은 나무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이라도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구원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피를 바쳐도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다 죽은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는 한 생명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생명만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렘 2:22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고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는 표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는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속죄의 제물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짐승 제사는 예표이기 때문에 반복이 필요했습니다. 예표는 아무리 반복해도 그것이 실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표는 반복을 통해서 실제에 대한 필요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표는 실제가 올 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없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콩팥의 기능이 없는 사람이 신장 투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장 투석은 신장의 기능을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에 신장과 같은 역할은 하지마는 신장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밭은 사람은 신장 투석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구원을 온전히 이루신 분이십니다.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다는 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음이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과 방법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하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구원을 위한 우리의 공로가 전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도덕이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열매입니다. /조병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